곧 임기 종료를 앞둔 류길재 통일부장관이 최근 공무원들의 입길에 올랐다.
“솔직히 통일부장관은 아무나 와도 되는 자리 같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그는 이를 부인했지만 통일부 내에선 틀린 말은 아니라는 자조 섞인 반응이 나온다.
책임을 전가하는 듯한 태도는 문제가 있지만, 현 외교안보라인에서 류 장관의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외교안보라인은 남재준 전 국정원장과 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 김관진 현 국가안보실장에 이르기까지 군 출신 강경파들이 주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 8명은 국가안보실장(위원장), 외교장관, 국방장관, 국가정보원장, 대통령비서실장, 국가안보실 1,2차장 등이다. 순수 민간인 출신은 류 장관이 유일한 셈이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NSC에서 지금 통일부장관의 입지는 굉장히 협소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통일부가 한때 부총리급 부처였고 이름도 ‘통일원’이던 시절을 생각하면 가히 격세지감이다. 그것도 군인들이 득세하던 노태우 정부(1990년) 때의 일이다.
통일부는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에 따른 정부조직 개편으로 다시 장관급 부처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후로도 정동영, 임동원, 이재정 등 쟁쟁한 중량급 인사들을 장관으로 기용하며 부처에 힘을 실어줬다.
이 가운데 임동원 씨는 남북정상회담이란 막중한 임무 때문이긴 하지만 통일부 장관 2번과 국정원장을 역임했고 정세현 씨도 정권 교체에도 불구하고 장관을 연임했다.
앞서 김영삼 정부 때도 나중에 총리 등을 역임한 이홍구 씨나 안기부장이 된 김덕 씨 등을 중용했다.
반면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작은 정부’ 미명 하에 통일부 자체가 아예 사라질 뻔한 위기를 맞았다.
거센 반대여론에 부딪혀 본부 직원 80여명을 감축하는 선에서 명줄은 지켰지만 아직도 깊은 트라우마를 남기고 있다.
여기에다 현 정부 출범 이후에는 통일 정책의 주도권이 청와대나 통일준비위원회로 넘어간 상태다.
북한은 ‘핫바지 통일부’라고 조롱하며 대화 상대로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갓 50세의 나이에 실무경력도 적은 학자 출신의 홍용표 청와대 비서관을 일약 장관에 발탁했다.
홍 후보자가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에 정통하기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뭔가 좀 군색한 해석이다. 오히려 전임자와의 비교우위를 특별히 찾기 힘들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한 통일문제 전문가는 “어차피 다른 장관들도 존재감이 없기는 매한가지여서 (통일장관에) 누굴 갖다놔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