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 (윤창원기자)
16일 국회 인준을 통과한 이완구(64) 국무총리는 지난 정부 때 세종시 수정안 반대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확고한 신임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 2009년 충남도지사 재직시 이명박 대통령이 추진한 세종시 수정안에 단식투쟁으로 맞서다 도지사 직에서 스스로 물러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는 여권의 충청권 대표주자로 떠오르는 계기가 됐고 박근혜 대통령 당선 이후 탄탄대로가 열렸다.
그는 2013년 4월 충남 부여·청양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당선돼 중앙무대로 복귀했다.
이어 지난해에는 새누리당 사상 최초로 충청권 원내대표에 선출됐고 세월호특별법 등의 쉽지않은 여야협상에서 수완을 발휘하며 입지를 더욱 다졌다.
그는 당시 세월호 희생자 분향소를 찾아 유가족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결국 그는 이런 성과들을 바탕으로 박근혜 정부의 두 번째 총리이자 실세총리로서 차기 대권가도까지 넘볼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섰다.
하지만 인사검증 과정에서 치명타를 맞으면서 ‘총리 이후’를 장담하기가 쉽지 않게 됐다.
그는 총리 내정 직후 “대통령께 쓴 소리 하는 총리가 되겠다”고 했지만 이제는 그 말을 믿기 힘든 상황이다.
사실 그는 여당 원내대표이면서도 박 대통령에게 ‘각하’라고 호칭할 때부터 책임총리에 대한 의구심을 낳았다.
경찰 고위직을 발판으로 새누리당의 전신인 민주자유당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을 거쳐 다시 새누리당으로 돌아온 인생역정은 그의 ‘양지지향성’을 보여준다.
그는 1950년 충남 청양 출신으로 양정고와 성균관대 법학과를 졸업했고 1974년 행정고시(15회)를 통해 공직에 입문했다.
홍성군청과 경제기획원에서 근무한 뒤 경찰로 이직해 최연소 경무관 등의 기록으로 충북(1993년)과 충남경찰청장(1994년)까지 올랐다.
1995년에는 민자당에 입당하며 정계에 들어와 15대(1996년) 국회의원을 역임했고 16대(2000년) 총선에선 충청권 맹주 김종필 총리가 이끌던 자민련 소속으로 당선됐다.
그는 자민련 원내총무까지 역임했지만 2002년 대선을 앞두고는 자민련을 탈당했고 미국에서 교환교수로 정치적 휴지기를 1년여 보낸 뒤 2006년 지방선거에선 한나라당 후보로 충남지사에 당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