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을 앞두고도 소비심리가 살아나지 않는다. 한국은행 '1월 소비자 동향조사 결과'로 소비자심리지수는 3개월 째 떨어지다 멈추긴 했지만 세월호 참사로 소비심리가 위축된 지난해 5월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설을 맞은 기업과 소비자들은 설 선물부터 줄이고 있다. 언론에 보도된 모 대형마트 설 선물 세트 사전예약 실적을 보면 1만~3만 원대 상품 판매가 지난해 설보다 32.4% 늘고, 3만~5만 원대 선물예약도 46% 증가하는 등 선물세트 가격대가 하향조정된 것을 알 수 있다.
간편가정식 선물세트의 판매가 늘었다는 소식도 눈에 띈다. 간편가정식 선물세트라 함은 사골곰탕과 쇠고기육포, 한우떡갈비 등이 해당되는데 모 업체의 경우 매출액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약 40% 이상 늘었다한다. 혼자 살거나 가족친지가 크게 모이지 않는 맞벌이 부부가 늘어난 때문이고, 설 연휴에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도 원인 중 하나일 듯.
차례상 비용도 4인 가족을 기준으로 20만원~30만원은 들어야 한다. 과일류는 지난해 작황이 좋아 가격이 내려갔지만, 도축이 감소한 쇠고기 가격은 올랐다. 시금치, 도라지 등 나물류는 한파와 폭설로 가격이 오른 품목.
중국인 관광객 자료사진. (황진환기자)
설에 10만 요우커가 몰려온다중국도 ‘춘절’이라 부르며 음력설을 쇤다. 백화점, 대형마트 등 우리 유통업계는 요우커라 불리는 중국인 관광객 맞이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중국은 2012년 설까지는 연말연시에서부터 분위기를 이어가며 흥청망청했다. 그런데 2012년 경기가 둔화되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반부패, 비리 척결에 나서면서 공직사회가 눈치를 보느라 뇌물, 선물도 크게 줄어들었다. 지난해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7.4%, 1990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인데 반부패, 비리척결 정책이 경기침체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이 여파가 민간부문에까지 전파되면서 민간도 씀씀이를 줄이고 있다.
중국의 한 고용기관 조사에 따르면 직원들에게 주던 보너스를 없앤 기업들도 많고, 직원들 가정에 보내는 선물도 급을 낮췄다. 중국의 춘절 설에는 기업들이 식품 상품권이나 우리처럼 비싼 먹거리를 선물로 보냈다. 그러나 올해는 작은 식품세트나 조미료, 목욕용품 세트 등으로 바뀌었고 언론 보도에는 대파 2묶음, 비아그라 3알이 설 선물이라는 투정 아닌 투정도 보인다.
그러나 우리 유통업계 입장에서는 문제가 다르다. 불황인데도 일단 해외관광을 나온 관광객들은 씀씀이가 괜찮고 큰손 관광객들은 여전히 통이 큰 소비를 한다는 것. 그리고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춘절 관광객 규모가 2012년 5만, 2014년 9만, 올해는 10만을 넘길 것으로 예상돼 그야말로 대목인 것이다.
이런 대목에서의 소비는 단순한 경제 행위를 훌쩍 넘어 정치이고 무역이고 사회적 운동이 된다. 설 대목 우리의 소비는 어떤 행태가 바람직한 걸까? 크게는 내수를 위해 해외여행을 줄이는 것부터가 필요하다. 또 전통시장 이용은 당연히 착한 소비에 들어간다. 전통시장들은 그동안 시설 현대화와 편리한 접근성, 서비스 개선 등 여러 가지 자구노력으로 부흥을 꾀해 왔고 무척 나아졌다. 이웃들의 그런 노력을 직접 즐기며 확인해보자.
재래시장 자료사진 (윤성호기자)
설은 누군가에게 희망이다전통시장은 지역경제의 기반이다. 지역의 생산물이 재래시장에서 팔리고 이곳의 상인들은 지역금융의 고객이다. 전통재래시장이 되살아난다면 이곳에 물건을 대는 지역의 제조업과 농수축산업, 기초산업과 연계상권을 동반해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다. 신토불이 먹거리를 찾듯이 향토재래시장을 찾는 것도 신토불이 경제활동이다.
시장을 고르듯 상품도 착하게 골라 살 수 있다. 어려운 이웃의 생산품을 우선 구입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가게’나 ‘서로 좋은 가게’ 등 여러 곳에서 준비를 해 놓고 있다. ‘서로 좋은 가게’는 자활기업, 장애인직업재활시설, 노인일자리사업단 등에서 만든 제품의 판매활성화를 위해 2011년 보건복지부에 의해 설립된 기업이다. 중앙자활센터나 서로좋은가게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상품 안내가 자세히 되어 있다. 건강한 재료로 만든 정직한 상품에 합리적인 가격이고 이웃에 희망을 준다 해서 ‘희망상품’이라 부른다.
지방자치단체들도 직거래 장터, 재래시장 이용 캠페인 등을 펼치고 있고, 청주시처럼 노인일자리전문기관 시니어클럽이 설 차례음식인 동그랑땡, 삼색전, 동태전, 버섯전, 나물, 탕국 등을 만들어 파는 곳도 있다. 어르신들의 손맛이 인기 상품으로 등장한 것이다. 이런 것들은 말 그대로 ‘희망상품’이다. 희망은 국민에게 흔히 던지는 정치 구호가 아니다. 어떤 이웃에게 ‘희망’은 그가 가진 모든 것이고 유일한 것이기도 하다. 설을 맞으며 우리 이웃의 희망을 위해 작고 착한 실천에 나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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