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호주 아시안컵에서 '파넨카킥'이 연일 화제다.
이라크와 이란의 8강전 승부차기. 이라크의 베테랑 유니스 마흐무드는 3-4로 뒤진 상황에서 키커로 나섰다. 그는 얼굴에 미소를 띄운 채 공을 향해 걸어갔다. 마흐무드의 선택은 파넨카킥. 이란 골키퍼는 완벽하게 속았다.
아랍에미리트(UAE)와 일본의 8강전 승부차기. 일본의 첫 번째 키커 혼다 게이스케가 때린 슈팅은 '탈아시아급'이었다. 공은 골대 위를 넘었고 아시아도 넘었다. 반면, UAE의 첫 번째 키커로 나선 오마르 압둘라흐만은 감각적인 파넨카킥으로 여유있게 골문을 열었다.
☞마흐무드와 압둘라흐만의 파넨카킥 보러가기(유투브)
압둘라흐만은 혼다의 실축 덕분에 심리적으로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마흐무드는 보통 강심장이 아니면 하기 힘든 도전을 했다. 만약 마흐무드가 실축했다면 이라크는 탈락했을 것이다.
마흐무드는 왜 파넨카킥을 선택했을까.
마흐무드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파넨카킥을 한 이유는 동료들에게 아무 걱정할 필요없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봐라, 얼마나 쉽냐' 이런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마흐무드가 노린 심리전은 100% 성공을 거뒀다. 마흐무드가 승부차기 페널티킥을 성공시킨 이후 이라크 선수 그 누구도 실축하지 않았다. 결국 이라크는 승부차기에서 이란을 7-6으로 누르고 4강 무대에 올랐다.
마흐무드의 슈팅은 2006 독일월드컵 결승에서 이탈리아의 수문장 부폰을 놀라게 한 프랑스 지네딘 지단의 파넨카킥만큼이나 과감했다.
파넨카킥은 공을 가볍게 차 속도를 떨어뜨리고 완만한 포물선을 그려 골키퍼의 방어 타이밍을 빼앗는 슛이다. 상대의 허를 찌르는 것이다. 골키퍼가 한 방향을 정하고 과감하게 몸을 날렸다가는 파넨카킥의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공의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골키퍼가 중심을 잃지 않거나 미리 방향을 정하지 않았다면 쉽게 막아낼 수 있는 슛이기도 하다. 극단적인 양면성을 띈다.
파넨카킥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76년 유럽축구선수권 대회 결승전에서다. 체코슬로바키아와 안토닌 파넨카가 파넨카킥의 원조다. 그는 서독과의 결승전 승부차기에서 공을 가볍게 차는 반전의 슈팅으로 상대 골키퍼를 속였다. 파넨카의 슛은 체코슬로바키아의 우승을 결정지은 슛이었다.
이후 이같은 페널티킥 슈팅은 '파넨카킥'으로 불렸다.
☞1976년 파넨카의 '원조' 파넨카킥 보러가기(유투브)국제축구연맹(FIFA) 홈페이지에 과거 파넨카의 인터뷰가 있다. 자료를 살펴보면 파넨카가 왜 긴박한 상황에서 파넨카킥을 선택했는지를 알 수 있다.
파넨카는 "상대를 조롱하겠다는 의도는 아니었다. 내가 그렇게 슈팅을 한 이유는 그 방식이 골을 넣기 위한 가장 쉽고 단순한 레시피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장 단순한 방식이었다"고 말했다.
페널티킥은 '11m의 러시안 룰렛'이라고도 불린다. 치열하고 복잡한 심리전의 무대다. 키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싸움이기도 하다. 공이 11m 거리를 지나 골문으로 향하는 시간보다 골키퍼의 반응 속도가 빠르기는 어렵다. 그래서 골키퍼는 상대 선수의 패턴, 스텝, 눈빛, 앞선 키커들이 선택한 방향 등 온갖 변수를 고려해 미리 몸을 날릴 방향을 정할 때가 많다(가끔 볼보이의 조언을 듣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