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구초심의 두 야구 영웅' 일본 투수 구로다 히로키(오른쪽)는 2년 전 박찬호처럼 선수 생활의 마무리를 고국에서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둘 모두 돈을 떠나 명예로운 야구 인생을 택했다는 공통점이 있다.(자료사진=황진환 기자, 메이저리그 홈페이지)
일본인 우완 투수 구로다 히로키(39)가 거액을 포기하고 고국 무대를 돌아온다. 그것도 친정팀으로 복귀, 그야말로 '돈보다 으리'의 선택을 했다.
'스포츠닛폰' 등 일본 언론들은 27일 일제히 구로다의 히로시마 복귀 결정 소식을 전했다. 특히 200억 원에 가까운 연봉을 제시한 메이저리그(MLB) 구단들의 러브콜을 뿌리치고 고작(?) 40억 원 남짓한 몸값을 감수한 구로다에 '의협심의 결단'이라고 격찬했다.
구로다는 올해 뉴욕 양키스에서 11승 9패 평균자책점(ERA) 3.71로 건재를 과시했다. MLB 5시즌 연속 두 자릿수 승수를 올린 구로다는 10승이 보장되는 투수. 당연히 구애의 손길이 쇄도했다.
2012년부터 3년 동안 구로다가 몸 담았던 양키스가 재계약을 강하게 추진했다. 내년 재도약을 벼르는 샌디에이고는 최고액을 제시했다. 연봉 1800만 달러(약 198억 원)로 구로다의 마음을 사로잡겠다는 의도였다.
여기에 류현진(27)의 LA 다저스도 연봉 1600만 달러를 제시했다. 다저스는 구로다가 일본을 떠나 첫 미국 생활을 한 팀으로 2008~2011년까지 4시즌 41승 46패 ERA 3.45로 활약했다. 더군다나 LA는 그의 가족들이 머물고 있는 MLB 친정팀이다.
하지만 구로다의 선택은 히로시마였다. MLB 진출 전의 다짐을 실행한 것이다. 구로다는 11시즌을 히로시마에서 뛰고 2007시즌 뒤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은 히로시마 덕분이고 머지 않아 돌아가 보은하고 싶다"면서 "일본에 돌아간다면 히로시마밖에 없고, 열심히 하고 있을 때 돌아가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박찬호도 불혹에 韓 복귀…구로다와 특별한 인연
8년 만에 친정팀에 복귀한 구로다가 있다면 한국에는 비슷한 사례로 박찬호(41)가 있다. 박찬호 역시 돈보다는 자신의 꿈을 위해 고국으로 돌아와 선수 생활을 의미 있게 마무리했다.
1994년 한양대 시절 박찬호는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MLB에 입성했다.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빅리그 무대를 밟은 박찬호는 이후 텍사스와 샌디에이고, 필라델피아, 양키스 등 17시즌을 활약했다. 아시아 선수로는 역대 최다승(124승)을 달성했다.
이후 2011년 일본 오릭스에서 뛴 박찬호는 2012시즌을 앞두고 한국 복귀를 전격 결정했다. MLB 영웅인 자신을 있게 한 고국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겠다는 평소의 뜻을 실천하겠다는 의지였다. 충남 공주 태생인 박찬호는 고향팀 한화 유니폼을 입었다.
'꿈에 그리던 고국 마운드' 2012년 고향팀 한화 유니폼을 입고 한국 프로야구 무대에서 힘차게 공을 뿌리는 박찬호의 모습.(자료사진=황진환 기자)
구로다처럼 박찬호도 돈은 상관이 없었다. 박찬호는 구단에 연봉을 백지 위임했다. 한화는 당시 최저 연봉인 2400만 원에 상징적인 계약을 했고, 따로 박찬호의 이름으로 6억 원을 야구 기금으로 내놨다.
2012년 박찬호는 부상이 겹치면서 성적은 썩 좋지 않았다. 5승10패 ERA 5.06. 그러나 박찬호의 복귀로 뜨거워졌던 한국 프로야구는 그해 역대 최다 관중(753만3408명)의 호황을 이뤘다. 이후 은퇴를 선언한 박찬호는 유소년 야구 등의 뜻깊은 행보를 잇고 있다.
한국과 일본, 두 야구 영웅은 인연의 끈으로도 연결돼 있다. 2008년 다저스에서 한솥밥을 먹은 바 있다. 구로다의 미국 진출 첫 시즌이었고, 박찬호는 7년 만의 친정팀 복귀였다. 둘은 나란히 아시아 MLB 선수로는 최다인 5년 연속 10승 이상이라는 기록도 갖고 있다. 만약 구로다가 내년에도 MLB에 남는다면 박찬호를 넘어설 수 있었지만 일본으로 복귀하면서 동률로 남게 됐다.
박찬호는 39살, 한국 나이로 40살에 고국 무대로 복귀해 활약했다. 구로다도 내년 40살이 된다. 불혹의 두 야구 영웅이 돈을 포기하고 내린 의리의 결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