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라는 '미생'에 남다른 애정을 쏟았다.(사진=윌엔터테인먼트 제공)
최근 종영한 tvN 드라마 '미생'. '갑'이 판치는 세상 속 '을'의 고군분투기를 그리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가슴 속에 진한 울림을 전했다.
방송 기간 내내 신드롬을 일으키며 숱한 화제를 뿌려왔던 만큼 '미생'을 떠나보낸 시청자들의 아쉬움은 크다. 배우들은 오죽했을까. 4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신입사원 안영이로 살아왔던 강소라도 마찬가지다. 그의 마음속에 진한 아쉬움이 남은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23일 늦은 오후 서울 이태원의 한 카페에서 마주한 강소라는 작품을 성공적으로 끝마쳤다는 뿌듯함보다 섭섭함이 훨씬 큰 듯 보였다.
"뭐랄까. 드라마가 끝나고 나니 마치 '직장에서 잘린 기분'이 들더라고요. 매일 출·퇴근하는 기분이었는데…. 촬영을 다 끝내고 기념사진을 찍으려고 했는데 이미 사무실 책상 위에 소품들이 다 치워져 있더라고요. 그걸 보고 얼마나 속상하던지. (웃음)"
그는 "나만 아는 이야기가 참 많다"며 '미생'에 남다른 애정을 쏟았다고 전했다. 머리끈, 슬리퍼, 책상 밑에 놓아둔 하이힐 등 스스로 디테일한 부분을 챙기려고 노력했지만, 실제로 드라마에 노출된 부분이 많이 없어 아쉽다고 했다.
그만큼 열정을 쏟은 후 이제 긴장이 풀려버린 탓일까. 이날 강소라는 지독한 목감기에 걸려 컨디션이 좋지 못한 상태였다. 또 '미생'과 함께 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갑작스럽게 눈물을 뚝뚝 흘리기도 했다.
"이런 작품을 또 만날 수 있을지…. (눈물) 드라마 종방연 때도 안 울었는데 4개월 동안 애정을 너무 쏟았다 보니 감정이 북받쳐 오르네요. 원래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같은 영화를 봐도 잘 울지 않는 스타일인데 요새 눈물이 많아진 것 같아요."
비록 아쉬운 마음은 남았지만, '미생'은 배우 강소라를 성장시킨 작품임은 분명하다. 이젠 집에서 잠도 푹 자고 강아지들과 산책도 다니며 여유를 즐기고 싶다는 그와 함께 '미생', 그리고 신입사원 안영이를 되돌아봤다.
강소라는 '미생'에서 자원 2팀 신입사원 안영이로 분했다.(사진=CJ E&M 제공)
▶ '미생'이 큰 성공을 거뒀다. 이 정도의 인기를 예상 했었나.= 이렇게 많은 분이 좋아해 주실 줄은 몰랐다. 사실 성공 여부보다는 '이 작품을 지금 안 하면 후회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내 나이가 아니면 신입사원 역할을 할 수 없으니까. 또 과거 힘든 시기에 웹툰 '미생'을 보며 위로를 많이 얻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번 작품을 하면서 스스로 힐링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 드라마를 끝낸 소감은.좋은 작품에 잘 묻어간 것 같다. 또 워낙 대본이 좋았다. 드라마를 촬영하면서 '어떻게 이걸 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잘 표현할까'를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미생'을 통해 성장했다고 느낀다. 배우로서 즐겁게 고민했던 시간이었다.
▶ 간접적이지만 연예인이 아닌 사회인으로 살아본 소감이 있다면.= 연예인은 승진도 없고 어느 날 갑자기 잊힐 수도 있다. 하지만 직장인들은 시간이 지나면 연봉이 오르고 아무래도 하루의 일과가 정해져 있으니까 굉장히 안정적일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그런 생각이 가장 먼저 깨지더라. 많이 치열했고 안에서만 움직이는 게 아니라 밖에 있는 시간도 많았고,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일도 많았다. 또 조직사회이다 보니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고 하는 것도 쉽지 않더라.
특히 아버지에 대한 이해를 많이 하게 됐다. 왜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시는지. 집에 들어오면 수염도 깎지 않은 얼굴을 들이미시는지. 왜 하필 치킨을 사오는지 등 옛날 생각도 많이 났다. (웃음)
▶ 실제로 촬영 전 종합상사에 찾아가 견학도 했었다던데.= 신입사원이 대리에게, 대리가 과장에게 여러 가지 상황에 따라 그들의 행동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일일이 관찰했다.
실제로 극중 안영이처럼 해외 자원 사업을 관리하는 신입사원도 만났다. 워낙 평소에 미팅이 많다 보니 늘 옷걸이에는 재킷이 걸려있었고, 하이힐을 신지 못하고 그냥 책상 밑에 놔두더라. 또 해외 업무를 하는 특성상 지도를 굉장히 많이 보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막상 드라마에서 그런 디테일한 부분들을 보여줄 수 있는 게 많이 없더라. 그냥 서류작업하고 인터넷하고 전화 받고 뭐 그런 게 전부였다. 나만 아는 이야기가 참 많다.
▶ 본인이 연기한 안영이는 어떤 캐릭터였다고 생각하나.= 만화를 봤을 땐 가장 비현실적 캐릭터가 안영이다. 너무 완벽했기 때문이다. 반면 드라마 속 영이는 일적으로 완벽하지만, 사람을 대하는데 있어서 서툰 친구다.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남에게 폐 끼치기는 것도, 본인이 민폐를 받는 것도 싫어하는 성격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에게 빚 독촉 전화가 올 때도. 보통 사람이라면 상사에게 '술 한 잔 하자'라고 제안 할 텐데 얘는 혼자 속앓이를 한다. 그만큼 내면의 상처를 많이 안고 있다.
(사진=윌엔터테인먼트 제공)
▶ 안영이와 실제 강소라의 모습은 얼마나 비슷한가.= 일단 일 자체를 즐기는 모습은 비슷한 것 같다. 퍼센트로 따지자면 40% 정도다. 나는 주변 사람들과 굉장히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다. 같이 어울리고 이야기하는 걸 참 좋아한다. 또 개인적으로 영이 만큼 독하지 못하다.
만약 내가 원 인터네셔널에 입사를 하게 된다면 장그래와 한석율이 반반씩 섞인 모습일 것 같다. 처음에는 적응 못하다가 나중에 적응을 끝내면 술자리를 압도할 것 같은 스타일이랄까.
▶ 본인이 직장 생활을 한다고 가정했을 때, 하대리 같은 상사를 만났다면 어떻게 대처할 건가. = 원래 종합상사 자원팀은 여자 사원을 기피하는 문화가 있다더라. 일단 안영이 보다는 상사에게 말도 많이 걸고 털털하게 다가갔을 거다. 답답해서 직접 물어도 봤을 것 같다. '내가 어떤 점이 부족한가요. 전 여자이지만 도망가지 않을 자신이 있고, 책임감도 있습니다' 뭐 이런 식으로….
▶ 드라마 속 외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모습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 영어는 어릴 때부터 친숙했다. 외동딸이다 보니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고, 그때마다 어머니가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틀어줬다. 하지만 어둠의 경로로 들어온 비디오는 자막이 없었다. (웃음) 정말 보고 싶은데 자막이 없으면 답답했기에 공부를 했다. 한 50번 정도 반복해서 봤던 것 같다.
러시아어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언어라 고민이 많았다. 발음기호도 직접 적어보고 유튜브 동영상을 찾아보며 공부도 했다.
다른 배우들이 외국어로 연기하는 걸 보면 말을 정확하게 하는 것에만 집중하다 보니 이해가 잘 안 되더라. 그래서 나는 우리가 듣기 보기에 친숙한 느낌을 주기 위해 러시아 특유의 억양을 약간 한국적으로 표현해봤다.
'미생' 포스터(사진=CJ E&M 제공)
▶ '미생' 팀이 세부로 포상 휴가를 갔다. 연락은 주고받았나.= 안 그래도 아까 (한)석율 오빠한테 문자 왔다. '배우들·스태프들 물속에서 많이 놀고 상반신 인증 사진 보내라고 답장했다. (웃음)
배우들과는 평소에도 메신저 대화방을 통해 이야기를 하는 편이다. 거기엔 '인턴 4인방'은 물론 있고, 대리분들까지 포함돼 있다.
▶ '미생' 시즌2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차기 시즌이 만들어진다면 안영이가 어떤 모습이었으면 좋겠나.= 일단 승진을 했으면 좋겠다. 영이가 신입사원을 받고, 하대리의 입장이 되는 모습. 영이만의 대처방법을 그리고 싶다. 직장 동료를 넘어 친구 관계로 사적인 이야기도 많이 할 것 같다.
또 드라마 후반부에 영이가 팀원들과 많이 가까워졌는데 '백미'라고 할 수 있는 회식 장면이 나오지 않아 아쉬웠다. 비록 점심이라도 함께 밥을 먹는 장면이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공항에 마중을 나가는 장면 등 인간적으로 친해진 모습이 그려졌으면 한다.
"다음 작품을 하게 된다면 캐릭터에 강소라만의 색을 입혀보고 싶다."(사진=윌엔터테인먼트 제공)
▶ '미생' 이후 강소라의 행보가 궁금하다.= 아직은 딱히 계획된 바가 없다. 일단 드라마, 영화를 가릴 생각은 없다.
최근 아버지와 관계가 좋지 않거나 내면의 상처가 깊은 역할을 많이 했는데 다음 작품에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매끄럽고 활기차고 표현을 많이 하는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