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에대한 정당 해산 심판 청구 선고가 열린 지난 19일 오전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판결문을 읽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통합진보당은 '진보'와 '종북'이란 두 개의 키워드로 규정된다. 통진당은 전신으로 볼 수 있는 민주노동당 시절까지로 존속기간을 늘려 볼 때, 정치개혁이나 진보적 정책의 도입에 일정한 기여를 했다.
하지만 3대 세습 등 북한정권의 문제에는 철저히 함구하고, 급기야 내란음모 파문을 일으키면서 제도권에서 퇴출당했다. 이 과정에서 이석기 전 의원을 중심으로 하는 계파 이기주의나 패권주의 양상이 두드러졌다.
◈ 무상급식 등 친서민 정책 이슈화통진당은 2000년 민노당 창당과 2008년 분당, 2011년 통진당으로의 재합당과 2012년 재분당을 거친 끝에 공중 분해됐다. 헌법재판소의 심판 직전까지 통진당을 구성하고 있던 정치 세력은 NL(자주파) 계열이었고, 그 중에서도 경기동부연합이 당권을 쥐고 있었다.
PD(평등파) 계열과 한솥밥을 먹던 시절까지를 통틀어 보면, 통진당 잔존세력들도 중요한 정치적 성과를 내는 데 상당한 기여를 했을 수 있다. 진성당원제, 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제, 비례대표 후보에 소수자 배려 등 개혁적 제도는 일찌감치 민노당 시절 도입했다. 이는 새누리당 등 거대 정당들까지 뒤따라가게 됐다.
무상급식, 무상교육, 무상의료 등 서민의 의사가 대폭 반영된 진보적 복지정책도 민노당에서 시작됐다. 제도 정치권의 신진대사도 기존 판·검사 등의 '엘리트 충원' 일색이던 것이 농민, 노동자, 시민운동가 등 '기층민중 충원'이 대폭 확대되는 변화로 이어졌다.
하지만 딱 여기까지다. 제도 정치권 내 NL의 정치적 성과는 '민노당 시절까지'로 한정되고, 통진당 이후에는 이렇다 할 정책적 성과나 정치사적 업적이 없다. '분당된 민노당' 시절인 18대 국회 때 의원 1인당 법안 발의건수는 매달 1.09건이었지만, 통진당 시기 들어 분당 직후부터 해산 때까지 1인당 법안 발의건수는 매달 0.39건에 그친다.
물론 경선부정 사건 검찰 수사와 내홍,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 논란 등으로 당이 혼란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정치적·정책적 성과를 내지 못했을 뿐이라고 반박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 혼란도 결국 NL이 자초한 것이어서 효과적인 변명은 못 된다.
◈ 시대착오적 대북관…반민주적 정당 운영그동안 통진당 NL세력은 시대착오적 대북관을 비판받아 왔다. 일심회 간첩단 사건에 연루된 당직자들의 제명안이 2008년 당대회에서 다수파 NL에 의해 부결되면서 종북 논란이 불거졌다. 이때 심상정 노회찬 등이 진보신당을 창당해 떠나갔다.
민노당 시절 당권을 쥔 NL은 북한의 핵실험 강행(2006년 10월)에 대해 "미국의 적대정책과 북미 사이의 긴장과 대결이 핵실험으로 이어져 유감"이라는 논평으로 본질을 회피했다. 북한의 3대 세습 논란(2010년 10월)이 불거졌을 때도 "북한의 문제는 북한이 결정할 문제"라는 구두논평이 나왔다.
통진당 들어서도 2012년 대선 TV토론 때 이정희 후보는 대한민국 정부를 "남쪽 정부"로 지칭하는 등 북한정권의 반민주·반평화 행태에 함구해 왔다. 급기야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을 통해 NL 세력들이 "전쟁에 대비해 국가시설을 파괴한다"는 식의 논의를 벌여 온 정황마저 드러났다.
NL 세력 자체의 반민주적 행태도 민심을 등돌리게 했다. 2012년 총선을 앞두고 서울 관악을 민주당과의 야권후보 단일화 경선 과정에서 여론조사 조작을 벌였던 사실이 수사로 확인됐다.
또 당내 비례대표 경선 과정에서도 각 계파에서 여론조사 조작 혐의가 확인됐다. 하지만 이때 NL 세력만 '비례대표 의원직 사퇴' 등 수습방안에 거부하면서, '머리끄덩이녀' 등 NL 당권파가 다른 계파에 폭력을 휘두르는 사태가 빚어졌다.
국회의 한 관계자는 "통진당의 근본적 문제는 '이석기를 절대 보호해야 한다'는 식으로 행동했다는 데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2012년 비례대표 경선부정 수습과정에서 다른 계파와 달리 '이석기 의원' 유지를 노린 NL들만 말썽을 빚었다"며 "내란음모 재판 과정에서도 NL은 이석기를 변호할 목적으로 'RO 모임은 당 활동'이라고 주장했는데, 이게 결국 헌재의 정당해산 결정에 영향을 끼치는 비수가 됐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