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복지지원재단이 지난 2012년 전 공무원 아들이 운영하는 인테리어 업체에 매각한 레포츠센터. (부산CBS/송호재 기자)
1970~80년 대 참혹한 인권유린이 빚어졌던 옛 형제복지원이 재건 과정에서 사들인 수십억 원대의 건물을 부산시 전 고위공무원의 자녀에게 헐값에 매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공무원은 2000년대 들어 형제복지원이 부산시로부터 각종 특혜성 허가를 받을 당시 담당부서 책임자였던 것으로 확인돼 유착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 50억 건물을 25억 원에…2세들 간의 '은밀한 거래'옛 형제복지원의 제왕으로 군림했던 박인근(84) 씨가 노환으로 일선에서 물러나고 아들인 박모(38) 씨가 재단 이사장으로 있던 2012년 2월.
당시 형제복지지원재단은 부산 사하구 장림동에 위치한 재단 소유의 장림빅월드레포츠센터를 매각한다.
연면적 4천1백여㎡의 5층 건물인 이 레포츠센터는 찜질방과 불가마, 사우나, 헬스 시설 등을 갖추고 있으며 매각 이전까지 재단 수익사업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었다.
취재결과, 이 레포츠센터의 매수인은 다름 아닌 형제복지원의 각종 인허가 서류에 도장을 찍었던 부산시 전 고위공무원 A 씨의 아들 B 씨가 운영하는 C 인테리어업체인 것으로 확인됐다.
C 업체는 앞서 형제재단이 소유한 사상해수온천과 장림빅월드레포츠센터의 인테리어 공사를 수의계약으로 따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사상해수온천 인테리어 비용 중 일부인 12억 원이 제 때 지급되지 않았고, 이를 명목으로 양측 간의 장림빅월드레포츠센터 매매 계약이 성사된 것이다.
C 업체는 빅월드레포츠센터에 잡혀 있던 채권 10억 원과 전세보증금 7억 5천만 원을 떠안고 현금 8억 원 등 계약서상 매매 대금(50억 원)의 절반인 25억 5천만 원에 건물을 넘겨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단, C 업체 측이 건물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서 남은 잔금을 지급하고, 재단은 이를 통해 공사비를 우선 변제한다는 내용의 조항을 덧붙였다.
부산시가 수 차례에 걸쳐 형제재단에 장기차입허가(대출 허가)를 내줬던 점을 감안하면 이해할 수 없는 계약이 진행된 것이다.
여기에다 재단은 C 업체가 1년 동안 직접 운영을 하면서 발생하는 적자분을 잔금에서 제외한다는 내용을 추가해 사실상 건물을 헐값에 넘기는 근거를 마련했다.
계약 후 3년이 다 되어가는 현재까지 건물 소유는 C 업체로 되어 있으며, 해당 건물의 시가는 100억 원에 육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각종 인허가 물꼬 터줘…1세들 간의 '은밀한 관계'형제재단과 전 고위공무원 2세간의 건물 거래가 유착 의혹으로 번지는 배경에는 앞서 1세들 사이에서 진행된 각종 특혜성 인허가에서 비롯된다.
지난 1987년 형제복지원의 참혹한 실상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당시 박인근 원장은 감금과 강제노역 등의 혐의를 뺀 횡령 혐의만을 적용 받아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세간의 비난에 비해 짧은 형기를 살고 나온 박 원장은 1992년 재단 이사장으로 복귀한 뒤 부동산을 사들이거나 용도를 변경하는 방법으로 재단의 몸집을 불려 나갔다.
박 원장은 이 과정에서 막대한 비용 지출과 대출로 2000년대 초반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 때 박 원장의 숨통을 틔워준 것이 부산시로, 그 중심에 A 씨가 있었다.
2005년 4월 부산시는 강서구 대저동의 땅을 매각할 수 있는 권리와 함께 형제재단이 수익사업으로 찜질방과 화장품 등 생산사업을 할 수 있도록 허가해준다.
한 달 뒤 부산시는 재단이 미리 구매해 뒀던 사상해수온천의 리모델링 명목으로 15억 원의 장기차입(대출) 허가를 한다.
지자체가 복지재단에 장기차입 허가를 하는 것은 지금까지도 이례적인 결정으로 받아들여진다.
1970~80년대 참혹한 인권유린이 자행됐던 형제복지원. (부산CBS 자료사진)
불과 3개월이 지난 2005년 9월 부산시는 다시 같은 이유를 들며 형제재단에 30억 원의 장기차입 허가를 더 해준다.
일사천리로 진행된 재단의 각종 인허가를 고스란히 받아들인 당시 부산시 사회복지과장에 A 씨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후 승진을 해 일선 구청 부구청장을 지낸 A 씨는 은퇴 후 부산복지개발원장을 지내며 지역 사회복지공무원들 사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A 씨는 "장기차입의 경우 적법한 절차를 거쳐 허가된 것"이라며 "아들의 건물 매입은 나와는 무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 사회복지 전문가들 "비리의 대물림, 참담하다"사회복지단체나 전문가들은 형제재단의 공무원 2세를 상대로 한 건물 헐값 매각이 사실상 비리의 세습이라고 지적했다.
동서대 사회복지학부 김종건 교수는 "복지의 이름으로 인권을 유린한 박인근 원장이 법인을 이용해 비리를 대물림하고, 그들과 결탁한 관계 공무원은 교묘한 수법으로 이득을 취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형제 복지원 사건은 인권 유린과 국가 폭력에 이어 조직 범죄의 모습까지 드러냈다"며 "끝이 안 보이는 비리 사슬에 참담한 심정까지 든다"고 한탄했다.
부산시의 안일한 대처에 대한 비난과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부산사회복지연대 박민성 사무처장은 "부산시가 이러한 사실을 몰랐다면 관리감독을 하는 입장에서 제대로 역할을 못한 것이고, 알고도 눈을 감았다면 적폐와 관피아가 존재하는 심각한 문제다"며 "지금이라도 철저한 조사를 통해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