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속사정이 궁금하다. 뉴스의 행간을 속 시원히 짚어 줍니다. [Why뉴스]는 CBS 라디오 <박재홍의 뉴스쇼="">를 통해 들을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박재홍의>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작성된 '정윤회 문건'에 대한 검찰수사가 속도를 내고 있지만, 문건에 담긴 내용이나 유출 경위 어느 것도 시원스럽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검찰내부에서는 "'정윤회 문건'이 검찰로 넘어오는 순간 사약을 받은 것과 같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곤혹스러운 분위기다. 검찰이 어떤 결론을 내리더라도 의혹을 명쾌하게 해소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청와대나 여권에서는 '정윤회 문건'이 '찌라시'라며 유출경위에 대한 수사를 조속한 마무리를 촉구하고 있다. 그렇지만 야당이나 국민 여론은 문건의 유출 경위보다는 문건의 내용에 더 높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검찰로서는 수사를 빨리 마무리하고 싶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처지에 빠진 것이다.
그래서 오늘 [Why뉴스]에서는 "'정윤회 문건' 검찰수사 왜 쉽게 끝낼 수 없는가?"라는 주제로 그 속사정을 알아보고자 한다.
[권영철의 와이뉴스 전체듣기]▶ '정윤회 문건'에 대한 검찰수사가 조만간 마무리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던데?
= 일부언론에서는 '이르면 이번 주 내에 수사가 끝날 것이다'거나 '늦어도 20여일 남은 올해 안에 수사가 끝날 것'이라는 전망들을 보도하고 있다.
그렇지만 검찰내부에서는 누구도 자신 있게 올해 안에 끝날 것이라는 언급은 하지 않고 있다. 검찰의 고위관계자도 수사종료시점과 관련해 "그걸 누가 알겠나? 있는 대로 원칙대로 수사를 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검찰의 한 검사장급 간부도 "수사는 생물이다. 누가 단정해서 뭐라고 얘기할 사안이 아니다"면서 "지금 상황에서 누구도 수사를 빨리 끝낼 것이라거나 아니면 수사가 길어질 것이라는 얘기를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내일 정윤회 씨가 소환되는 만큼 수사가 급진전될 가능성도 완전 배제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지금으로써는 피해자인 고소인자격이지만 수사과정에서 어떤 신분으로 바뀔지는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 수사가 끝나려면 김기춘 비서실장이나 이른바 문고리 3인방에 대한 수사가 이뤄져야 하는 것 아닌가?
이재만 비서관과 정윤회 씨 (자료사진)
= 그게 검찰수사를 바라보는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문고리 3인방은 정윤회 씨와 십상시의 정기 모임 의혹을 보도한 세계일보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고소인이다. 검찰은 이들의 법률 대리인만 조사한 상태다. 이재만 비서관은 검찰의 소환에 불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기춘 비서실장은 '문건작성은 김기춘 비서실장'이라고 보도한 동아일보의 기자를 고소했다. 문건의 내용에는 김기춘 비서실장의 교체설이 나돈 배경에 대한 것이 핵심이니까 김기춘 비서실장이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있을 수밖에 없다.
특히 조응천 공직기강비서관으로부터 문건에 대한 보고를 받은 뒤 묵살했다고 주장하고 있고, 문건이 유출됐다는 사실을 인지한 뒤 어떤 조치를 했는지를 밝히기 위해서는 홍경식 전 민정수석이나 김기춘 비서실장에 대한 조사가 필수적이다.
여기에 정윤회 씨에 대해 검찰이 압수수색 같은 강제수사를 할지 여부도 핵심 쟁점이다. 아직까지는 고소인 자격이어서 검찰이 강제수사를 동원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렇지만 검찰 고위관계자의 말처럼 수사가 생물이라면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는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 대통령이 문건을 '찌라시'라고 말했는데 수사에 영향이 있는 거냐?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7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새누리당 지도부 및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특별 오찬에서 '정윤회 문건'에 대해 "찌라시에나 나오는 그런 얘기"라고 발언했다. (사진=청와대 제공)
= 박근혜 대통령이 "찌라시에나 나오는 그런 얘기"라는 언급을 했다. 검찰로서는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검찰내부에서도 부적절한 발언이었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한 중견간부는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했고 또 다른 중견간부는 "수사에 도움이 되지 않는 발언"이라고 말했다.
검찰수사를 지켜보라고 하면서 '찌라시'라고 규정을 하거나 문건유출은 '국기문란' 사건이라고 규정하는 건 오히려 검찰수사에 장애가 될 따름이다. 특히 대통령의 단정적인 언급들은 검찰을 더욱 곤혹스러워하게 만들고 있다.
예를 들어 대통령은 정윤회 씨가 '오래전에 내 곁을 떠난 사람'이라고 했지만, 정윤회 씨는 이재만 씨와 통화를 하고 있었고 조응천 공직기강비서관에게도 전화를 했다. 일반 민간인이라면 이렇게 할 수 없는 일이다. 대통령의 말과는 달리 대통령 주변에 머물러 있다는 걸 반증하는 것이다.
문화체육부의 체육국장과 과장이 '나쁜 사람들'이라고 했다는 발언도 민정수석실을 통한 공식보고라인의 보고내용이라고 하기에는 부적절한 표현이다. 정윤회 씨와 관련된 의혹이 있기 때문이다.
검찰로서는 대통령의 이런 발언이 사실이 아니었다는 수사결과를 내놓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수사결과 대통령의 발언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될 경우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이 신뢰를 잃으면서 더 큰 파장을 불러올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의 발언이 자충수가 될 우려가 높다는 그런 관측이 나온다.
또 검찰이 수사를 통해 '문건의 내용이 사실이 아니고 시중에 나도는 풍문을 모은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경우 검찰은 대통령의 지시를 충실히 따른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검찰로서는 최선을 다한 수사였다고 하더라도 언론이나 국민들이 수사결과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검찰의 한 검사장급 간부도 "검찰이 더 곤란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 오늘의 주제로 돌아가서 '정윤회 문건'에 대한 검찰수사가 왜 쉽게 끝나기 어려운가?= 검찰내부에서 '정윤회 문건'수사를 두고 '사약'이라고 표현할 만큼 곤혹스러워 하고 있는데 그만큼 수사가 어렵기 때문이다. 검찰의 한 중견간부는 "정윤회 문건 수사가 검찰로 넘어오는 순간 '사약'을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수사가 쉽게 끝나기 어려운 이유는 크게 세 가지 정도로 분류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정윤회 씨를 처벌할 근거가 없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정윤회 씨와 관련해 거론된 의혹들은 대부분 '국정농단'이다. 공직자라면 권한 없는 일을 하거나 압력을 행사했을 경우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할 수 있겠지만, 민간인 신분인 정윤회 씨에 대해 처벌할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검찰내부에서도 정윤회 씨를 처벌할 근거가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검찰의 한 검사장급 간부는 "정윤회 씨가 문건에 나오는 대로 인사에 개입했다고 하더라도 이를 처벌한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과거 권력형 비리의 대표적인 사례인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 씨 사건이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세 아들 사건,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의원 사건 등은 비리의혹이 제기됐고 제기된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사법 처리됐다. 그렇지만 정윤회 씨는 '국정농단'의 의혹은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비리의혹이 나오지는 않고 있다. 정윤회 씨를 만나려면 7억 원을 준비해야 한다는 그런 말도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이권에 개입했다거나 하는 의혹은 아직 구체적으로 제기되지 않고 있다.
두 번째는 이번 사건의과 관련해 주장과 진술은 있지만 뚜렷한 증거가 없다는 점이다.
문건을 작성한 박관천 경정이나 직속상관이었던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은 문건의 내용이 사실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아직 이를 입증할 구체적인 증거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도 검찰조사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주장을 했지만, 구체적인 증거나 물증을 제시하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고위관계자는 "주장만 있고 구체적인 증거가 없다"고 말했다.
정황상 문건의 내용 중 인사에 개입했다는 부분은 시차는 있지만 그대로 이뤄졌다. 그렇다고 해서 이를 처벌할 근거는 없다는 것이다.
검찰의 한 중견간부는 "이재만 총무비서관이 인사기록을 들고 가서 정윤회 씨와 의논을 했다고 해서 그 자체만으로는 정윤회 씨나 이재만 비서관을 처벌할 근거가 미약하다"고 말했다.
세 번째는 검찰수사의 한계가 너무나 명백하기 때문이다. 정윤회 문건에 담긴 내용의 진위를 밝히기 위해서는 정윤회 씨와 문고리 3인방 그리고 김기춘 비서실장까지 검찰이 수사를 해야 한다. 그렇지만 문고리 3인방이나 정윤회 씨 그리고 김기춘 비서실장까지 모두 고소인 신분이다. 아직 피해자라는 얘기다. 검찰이 피해자를 상대로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를 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이재만 비서관은 검찰의 출두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여전히 현직 청와대 비서실장과 실세 3인방을 강제소환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압수수색을 할 수도 없는 처지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이 객관적 진실을 밝혀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래서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은 정말 떳떳하다면 김기춘 비서실장과 문고리 3인방이 사퇴해야 한다고 말한다. 검찰이 자유롭게 수사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얘기다.
▶ 과거 권력형비리사건 때는 어떻게 했나?
김현철 씨 (자료사진)
= '정윤회 문건'에 대한 검찰수사를 보면서 지난 1997년 한보비리사건으로 시작된 김현철 씨 사건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와대나 검찰은 빨리 수사를 끝내고 싶어 하지만 국민여론이나 언론은 그걸 용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보비리를 수사하던 검찰은 정치인 33명을 사법처리하면서 마지막 카드로 당시 여당에는 홍인길 총무수석과 동교동계 좌장격인 권노갑 의원을 사법처리하는 것으로 수사를 마무리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홍인길 당시 수석이 나는 '깃털'이라는 발언이 알려지면서 '소통령'으로 불리던 김현철 씨가 의혹에 전면으로 떠올랐고 결국 검찰은 대검 중수부장을 교체하는 수모를 당하면서 새롭게 '드림팀'을 구성해서 결국 김현철 씨와 안기부 김기섭 기조실장을 구속했다.
결과적으로 놓고 보면 당시 김현철 씨에 대한 검찰수사는 '표적수사'였다. 살아있는 권력인 비선실세의 비리의혹을 파헤친 것이다.
지금도 박근혜 대통령은 '찌라시'로 규정하고 빨리 수사를 끝내기를 바라고 있지만 그렇게 쉽게 끝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닮았다. 정윤회 씨 관련 의혹이 검찰의 수사대상인지는 지금도 의문이지만 일단 검찰로 넘어온 이상 수사를 마무리 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정윤회 씨가 비선실세라는 점에서도 당시와 비슷하다. 김현철 씨도 공직은 없었지만, 전횡을 했다는 얘기가 많았다.
그렇지만 다른 점도 분명히 있다. 김현철 씨는 현직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실체가 있었고 기업인들을 만나 금품을 받는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반면에 정윤회 씨는 비선실세', '인사 개입', '국정농단' 등의 의혹이나 설은 파다하지만 금품비리 의혹은 아직 제기되지 않고 있고 박근혜 대통령과 혈연관계도 아니다. 이런 점은 분명히 다르다.
▶ 검찰이 과거의 사례처럼 그렇게 철저하게 수사 할 수 있을까?= 수사의지의 문제일 수도 있다. 검찰이 한 점 의혹 없이 철저히 수사하겠다는 원칙을 지킨다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검찰수사는 주로 하이에나에 비유되기도 한다. 무슨 얘기냐 하면 살아있는 권력을 단죄하기보다는 주로 전 정권에서 일어난 일을 처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전 정권의 실세들이 이권에 개입해 뇌물을 챙겼다면 당연히 처벌받아야 한다. 전 정권에 특혜를 많이 받은 기업이 로비를 한 의혹이 있다면 수사를 받아야 한다.
그렇지만 검찰이 위기를 맞게 되는 건 살아있는 권력을 상대로 수사를 해야 할 때이다.
대표적인 사건이 김현철, 김홍업 등 김대중 대통령 3형제 사건 그리고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 사건 등이다.
검찰로서는 살아있는 권력을 단죄하려면 조직의 명운을 걸어야 한다. 한보비리로 촉발된 김현철 씨에 대한 수사는 결국 대검중수부장이 교체되고는 수모를 당한 뒤에야 이른바 '드림팀'을 구성해서 김현철 씨와 김기섭 당시 안기부 기조실장을 구속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검찰이 바로 서고 국민들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정윤회 씨와 관련된 의혹을 한 점 남김없이 규명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대통령이 이미 오래전에 내 곁을 떠난 사람이라고 언급한 만큼 시중에 나도는 의혹들이 사실인지 아닌지 규명하면 될 일이다.
검찰이 과거 김현철 씨 수사처럼 정윤회 씨를 표적으로 해서 수사를 하거나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처럼 먼지 털듯이 수사를 한다면 불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다. 대통령이 오래 전에 내 곁을 떠난 사람이라고 했고 정윤회 씨 본인도 '하나라도 나온다면 감방 가겠다'고 했으니까 검찰로서는 수사에 큰 어려움을 없을 것이다.
정윤회 씨와 관련해 시중에 나도는 의혹은 한둘이 아니다. 그런 의혹들을 철저하게 규명해서 그의 말대로 하나라도 잘못된 일이 드러난다면 단죄하면 그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