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태어난 종합편성채널(종편). 출범 당시 다양성 확대, 글로벌 경쟁력 강화, 일자리 창출 등 장밋빛 전망을 내세웠지만 3년이 지난 지금 그 결과는 어떠할까. CBS노컷뉴스가 종편 3주년을 맞아 종편의 현재 모습과 그로 인해 미디어 생태계는 어떻게 변했는지 연속 보도한다. [편집자 주]<기사 순서="">
① 뉴스·시사만 1주일에 5100분…종편 맞나요?
② 시청률과 함께 사라지다? 종편 예능·드라마 실종사건
종합편성채널, 줄여서 종편(綜編). 정의는 다음과 같다.
"뉴스 보도를 비롯해 드라마·교양·오락·스포츠 등 모든 장르를 편성하여 방송할 수 있는 채널이며 케이블TV(유선텔레비전)나 위성TV를 통해서만 송출된다."
그러나 출범 3년을 맞은 지금, 종편은 '종합'이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보도전문 채널로 변질되고 말았다. 24시간 방송 중에 예능프로그램과 드라마는 가뭄에 콩 나듯 편성되고, 초기에 내세웠던 지상파와 선의의 경쟁을 펼칠 다양한 콘텐츠 개발도 유명무실해졌다.
◈ 예능-드라마는 어디에? 멈춰 선 종편의 시계방송통신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종편의 보도프로그램 편성 비율은 TV조선 48.2%, 채널A 43.2%, MBN 39.9%, JTBC 14.2% 등이다. JTBC를 제외하면 절반에 육박하는 보도프로그램이 방송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방송 중인 프로그램 현황을 살펴봐도 예능프로그램과 드라마의 비율은 현저히 낮다. TV조선의 경우, 현재 총 30편의 프로그램 중 드라마는 '최고의 결혼' 1편(약 3.4%), 예능프로그램 역시 5편(약 16.7%)밖에 없다.
다른 종편 채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MBN은 50편의 프로그램 중 드라마 5편(10%), 예능프로그램 9편(18%)뿐이며, 채널A는 28편의 프로그램 중 드라마는 아예 없고, 예능프로그램은 4편(약 14.3%)이다. 그나마 JTBC는 27개의 프로그램 중 예능프로그램이 8편(약 29.6%)을 차지하고 있지만 드라마는 1편(약 3.7%)뿐으로 타 채널들과 유사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종편의 예능프로그램과 드라마 가뭄 현상에 대해 경기대학교 언론미디어학과 윤성옥 교수는 "제작비 문제가 가장 크다. 예능이나 드라마는 제작비가 많이 든다. 드라마의 경우 특히 한 편당 2억까지도 제작비가 소요된다"면서 "신문사에서 방송을 겸하다보니 프로그램을 가장 저비용으로 제작하고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선택한 것이 시사와 보도 장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TV조선 드라마 '한반도', MBN 드라마 '왓츠업', JTBC 드라마 '빠담빠담'. (TV조선, MBN, JTBC 제공)
◈ 차별성 없는 드라마…스타들도 구명 못해드물게 편성된 드라마와 예능들도 좀처럼 맥을 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드라마는 스타 출연자와 제작진으로 높은 관심을 모았지만 기대만큼의 성적을 내지 못해 점점 침체되고 있는 분위기다.
송지나 작가가 집필한 MBN 뮤직 드라마 '왓츠 업'(2011)은 빅뱅 대성의 복귀작이었지만 지상파 애국가 시청률(3%)에도 미치지 못하는 성적으로 종영했다. 채널A는 '굿바이 마눌'(2012)의 배우 류시원, '판다양과 고슴도치'(2012)의 슈퍼주니어 동해, '총각네 야채가게'(2012)의 배우 지동욱 등 다양한 남자 스타들을 기용해 승부수를 띄웠다. 이들 드라마가 저조한 시청률로 막을 내리자 2012년 이후로는 드라마를 제작하지 않고 있다.
TV조선은 제작비 200억 원을 들여 주연을 맡은 '한반도'(2012)를 방송했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상두야 학교가자' 등을 연출한 이형민 PD의 연출력과 황정민, 김정은 등 배우들의 선 굵은 연기에도 1% 안팎의 시청률을 보이며 고전을 면치 못했다.
초반엔 JTBC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첫 드라마 '빠담빠담'(2011)은 김규태 PD와 노희경 작가, 그리고 배우 한지민과 정우성이 뭉쳤지만 끝내 시청률 2%의 장벽을 넘지 못했다.
그럼에도 JTBC는 3년 간 26편의 드라마를 더 편성했다. 그 결과 평균 시청률 5.4%를 기록한 김수현 작가의 '무자식 상팔자', 배우 김희애와 유아인의 조합으로 인기를 끈 '밀회' 등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이들 드라마는 모두 2007년 중앙미디어네트워크가 설립한 제작사 드라마스토리에서 제작됐다. 지상파 드라마를 제작하며 노하우를 축적한 드라마스토리가 대다수 드라마의 제작을 맡으면서 JTBC는 다른 종편들보다 우위를 선점할 수 있었다.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제작비를 많이 들여도 이야기가 좋아야 시청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보게 되는데 콘텐츠 질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외면 받은 것"이라면서 "지상파는 이미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채널이고, 일종의 습관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상파 드라마를 뛰어넘는 작품을 선보여야 시청자들이 이동하게 된다. 시청자들에게는 지상파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내용인데 굳이 종편에 가서 볼 이유가 없다"고 진단했다.
이어 "시청률이 좋아야 방송국에서는 광고가 붙고, 그렇게 제작환경이 만들어지는데 그런 것이 안 되다 보니 힘든 부분이 있을 것이다. 제작사 입장에서도 아무래도 지상파 드라마가 더 이슈가 되기 때문에 선호할 수밖에 없다"고 귀띔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MBN 예능프로그램 '신세계', 채널A의 '웰컴투 시월드', TV조선의 '여우야'. 해당 예능프로그램은 모두 스튜디오 제작 방식이다. '신세계'와 '여우야'의 MC는 지난해 프로포폴 상습투약으로 법정에 선 배우 이승연과 방송인 현영이 맡았다. (MBN, 채널A, TV조선 제공)
◈ 스튜디오 예능으로 천하통일…새로운 포맷 출현 미지수그나마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예능프로그램도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여전히 5% 아래를 벗어나지 못하는 시청률은 종편 예능프로그램 콘텐츠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은 천편일률적인 스튜디오 제작 방식. 이들 예능프로그램은 주로 방송국 내 스튜디오에 패널들을 초대해 토크를 하는 형식을 취한다. 타사 예능프로그램보다 인지도 높은 JTBC의 '비정상회담', '썰전', '마녀사냥', '히든싱어' 등도 이렇게 제작된 예능프로그램들이다.
스튜디오 제작은 효율성과 제작비 절감에 있어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고착화된다면 스튜디오 제작 방식을 벗어난 새로운 포맷의 예능프로그램은 기획 단계부터 설 자리가 없어지게 된다. 지상파의 '무한도전', '1박 2일', '런닝맨' 등 다양한 시도로 사랑을 받고 있는 장수 프로그램이 출현할 가능성 또한 낮아질 수밖에 없다.
예능프로그램 PD 출신인 한 방송 관계자는 "한국적 정서를 바탕으로 한 토크 형식의 예능프로그램은 지극히 국내 소비용이기 때문에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장기적으로 보면 콘텐츠가 부실해지고, 포맷 수출이 어려워져서 문화산업적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스튜디오 제작 방식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는 "스튜디오를 벗어나면 인력이 4~5배 늘어나고, 장비가 투입되면서 간접 제작비가 치솟게 된다. 그렇게 투자할 여력이 없기 때문에 그런 제작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위쪽부터) JTBC의 간판 예능프로그램인 '히든싱어'와 '비정상회담'. 두 예능프로그램 모두 스튜디오 방식으로 제작됐지만 참신한 포맷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JTBC 제공)
◈ 종편 예능·드라마의 모범답안은 JTBC? 새로운 시도는 있지만… 이런 상황에서 JTBC의 존재감은 단연 눈에 띈다. JTBC는 지난 3년 간 긍정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확보하고, 채널 인지도를 높이는 데 성공했다.
이 같은 성과에는 손석희 앵커를 중심으로 한 보도프로그램뿐 아니라 대중적으로 사랑 받는 예능프로그램도 한 몫 했다. 그 중 '비정상회담'과 '히든싱어'는 스튜디오 제작 방식임에도 이전까지 없었던 참신한 포맷으로 눈길을 끌었다. 드라마의 성과는 아직 미비하지만 서서히 '웰메이드 드라마'라는 호평이 나오고 있다.
분명히 한계는 존재한다. 아직은 드라마의 콘텐츠 힘이 약하고, 1~2편 편성에 그치고 있다. 또한 예능프로그램들은 지나치게 스튜디오 제작 방식에 머물러있는 상태다.
새정치민주연합 최민희 의원은 "JTBC는 기존 종편의 문제와 분리해,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점에 있어 다른 평가를 받아야 되는 것이 맞다"면서 "지상파가 제작하기 힘든 트렌드 드라마, 참신한 포맷의 예능프로그램을 많이 기획했다는 평가다"라고 답했다.
따끔한 지적도 이어졌다. 최 의원은 "종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드라마와 예능프로그램 등 여러 장르를 골고루 잘 편성해야 한다. 더 다양화되어야 하고, 스케일이 커져야 한다. 아직도 부족한 면이 있다"고 JTBC가 드러내고 있는 한계점을 짚었다.
결국 종편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어느 때보다 예능프로그램과 드라마의 콘텐츠 개발이 절실하다.
CBS노컷뉴스 유원정 기자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