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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90대 노부부 이야기…"곱디고운 임아 행복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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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물음 "지금 사랑하고 있습니까?"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한 장면. (사진=아거스필름 제공)

 

고대가요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 하얗게 센 머리를 풀어헤친 한 미친 남자가 강을 건너다 죽어가는 모습을 본 그의 아내가 구슬프게 불렀다는 그 노래.

1995년 가수 이상은이 애잔한 목소리로 부른 동명의 곡을 기억하는 이들은 그 절절한 그리움의 깊이를 다소나마 공유할 수 있을 듯싶다.

'공무도하 공경도하 타하이사 당내공하(公無渡河 公竟渡河 墮河而死 當奈公何·임아 물을 건너지 마오. 임아 결국 물을 건너셨구나. 물에 빠져 돌아가시니. 가신 임을 어이할까)'

현대판 공무도하가라 불러도 무방한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감독 진모영·제작 아거스필름)가 눈길을 끄는 데는, 고대가요부터 현대가요에 이르기까지 이어져 온 우리네 특유의 정서가 자연스레 배어나는 까닭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 영화는 76년을 함께해 온 강계열(89) 조병만(98) 부부의 일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조그만 강이 흐르는 강원도 횡성의 어느 아담한 마을. 강계열 할머니와 조병만 할아버지는 어디를 가든 고운 빛깔의 커플 한복을 입고 두 손을 꼭 잡은 채 걷는다.

봄에는 꽃을 꺾어 서로의 머리에 꽂아 주고, 여름이 오면 개울가에서 물장구를 친다. 가을에는 낙엽을 던지며 장난을 치고, 겨울에는 눈싸움을 하는 매일이 신혼 같은 백발의 노부부다.

장성한 자녀 여섯은 모두 도시로 떠나고 서로를 의지하며 살던 어느 날, 할아버지가 귀여워하던 강아지 꼬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 꼬마를 묻고 함께 집으로 돌아온 뒤부터 할아버지의 기력은 점점 약해져 간다.

비가 내리는 마당, 점점 더 잦아지는 할아버지의 기침소리를 듣던 할머니는 친구를 잃고 홀로 남은 강아지를 바라보며 머지 않아 다가올 또 다른 이별을 준비한다.

◈ 아름다운 이별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이 영화의 주인공인 조병만 할아버지는 지난해 이맘때 세상을 등졌다. 할아버지의 타계 1주기를 기념해 13일 CGV원주에서는 이 영화를 특별 상영했는데, 현장에는 반려자인 강계열 할머니를 비롯해 부부가 함께 다닌 노인대학의 지인들, 그리고 이 영화를 연출한 진모영 감독이 참석해 고인의 넋을 기렸다.

영화가 시작되자 객석은 숙연함으로 가득 찼다. 고인의 정정한 모습이 스크린을 채우자 관객들은 눈시울을 붉혔고, 노부부의 아기자기한 일상은 따뜻한 미소를 머금게 만들었다. 스크린에서 고인을 만나게 된 강계열 할머니는 영화가 끝나도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영화 속 부부가 주고받는 존댓말에서는 애정과 존중이 가득 드러난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얘기할 때면 곁으로 바짝 다가가 귀기울인다. 건강이 좋지 않아 걸을 때마다 자주 숨을 고르는 할아버지를 배려해 할머니는 앞에서 끌고 뒤에서 민다. 그렇게 서로 배려하는 법을 말이 아니라 몸으로 익혀 온 부부의 일상은 곱디곱다.

무릎이 좋지 않은 할머니를 위해 할아버지는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마당의 낙엽을 쓸고 무거운 나무 지게를 지는 일은 모두 할아버지의 몫이다.

고통에 힘겨워하는 할머니의 아픈 다리를 주무르고 다정하게 안마해 주는 모습은 할아버지의 일상이 된지 오래다. 그런 노부부의 밤은 낮보다 따뜻하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살결이 닿지 않으면 잠들지 못한다. 오랜 버릇이다.

◈ 고단했던 부부의 삶 "얘들아, 이젠 고운 한복이 입고 싶구나"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한 장면. (사진=아거스필름 제공)

 

커플 한복을 입은 채 서로의 손을 꼭 잡고 걷는 노부부의 모습은 지금 막 사랑에 빠진 연인의 그것과 다름없다.

부부가 한복을 입기 시작한 것은 불과 20여 년 전이다. 이사와 수해, 가난으로 어려운 시절을 살아내야 했던 까닭이었는지도 모른다.

할아버지는 열한 살에 부모를 잃고 스물셋 나이에 데릴사위로 할머니 집에 들어갔다. 그는 동분서주하며 부지런히 일하느라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았다. 할머니도 삯바느질에다 육아, 가사에 쫓겼으니 부부는 젊은 시절 고운 옷 한 벌 입어볼 엄두도 못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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