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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강도 노동과 수수료 횡포에도 매일 아침 위험한 거리에 나설 수 밖에 없는 퀵서비스 기사들. 이들을 '삼중고'에 몰아넣는 것은 다름아닌 '과다 출혈 경쟁' 때문이다. 국내 퀵서비스 업체는 대략 3000~4000여 곳. 이들 업체에 소속돼 생계를 이어가는 퀵기사들은 17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마저도 추정치에 불과할 뿐, 실제 규모는 훨씬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오토바이 면허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무법지대'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당국도 제대로 된 통계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수급의 불균형만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퀵서비스 이용객은 한정돼있지만, 종사자만 하루가 다르게 증가하고 있어서다.
공급의 과다 현상은 결국 노동자들의 처우 악화로 되돌아온다. 과다 경쟁으로 업계 전체가 공멸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올 정도다.
전국퀵서비스노조 한 관계자는 "지금은 아무나 신고만 하면 퀵서비스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며 "일정 자격 요건을 갖춘 사람에게만 설립 요건을 갖출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다 경쟁을 막기 위해선 적정한 수급 조절이 가능한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는 얘기다.
구체적 대안으로는 현행 '자유업'으로 분류돼있는 퀵서비스업을 '운송업'으로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현재의 '신고제'를 '허가제'로 바꿔, 일정 요건과 자격을 갖춘 사업자만 시장에 진입하도록 허용하자는 것이다.
퀵서비스 업계에도 택시나 버스처럼 '라이센스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포화 상태인 시장의 수급 조절 목적은 물론, 퀵기사들의 기본 자질 검증이라는 순기능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실제로 너도나도 퀵기사로 뛰어들면서, 업계 전체가 '범죄의 온상'이란 오명을 입게 된 것도 사실이다.
대표적인 게 보험 사기다. 지난 22일만 해도 상해 수준을 부풀려 병원에 입원한 뒤 보험사들로부터 합의금을 뜯어낸 혐의로 퀵기사 김모(41)씨가 징역 10월을 선고받았다.
지난해에도 수십 차례에 걸쳐 보험금 4000여만 원을 가로챈 50대 퀵기사가 구속된 적도 있다. 심지어 보이스피싱 총책에게 범죄용 통장을 모아다준 40대 퀵기사가 경찰에 붙잡히는 일까지 있었다.
라이더연합회 황정보 사무국장은 "현재 퀵서비스는 직군이 없는 무법 상태"라며 "아무나 차리면 될 뿐더러, 반칙을 해도 제재할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최소한의 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퀵 시장의 균형있는 수급 관리를 위해서는 업주와 기사들간의 관계 정립도 절실하다. 이를 위해서는 절대적 힘의 우위에 있는 업체들의 횡포를 규제할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2011년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한 거래상 지위남용 행위 심사지침'(일명 '특고 지침')을 개정하긴 했지만, 업계 전반에 관행처럼 돼버린 횡포를 막기엔 역부족이란 것이다.
수년간 퀵기사로 일해온 노조 한 관계자는 "특고 지침에는 '출근비 등 기타 부대비용을 받으면 제재하겠다'는 규정이 들어있다"며 "하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규제 대상이 너무 광범위하다 보니, 공정위 직원들이 설사 단속 의지가 있더라도 손댈 엄두를 내지 못한다는 것.
이를 보완하기 위해선 공정위 고시뿐 아니라, 국토교통부나 고용노동부에서도 규제 방침을 담은 법안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는 게 퀵기사들의 한목소리다.
서울 시내에서 만난 퀵기사 A 씨는 "당연히 퀵기사를 노동자로 인정해서 업주가 4대 보험도 책임지도록 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다른 퀵기사 B 씨는 "23%라는 살인적 수수료를 받는 곳은 물류 쪽에선 퀵이 유일하다"며 "몇몇 업체를 편법 탈세 등으로 고발한다 해서 해결될 일도 아니지 않느냐"며 한숨을 쉬었다.
퀵기사 C 씨도 "예전에는 택시처럼 사납금 형태인 '정액제'였는데, 어느 순간 수수료가 정률제로 바뀌면서 매출이 늘수록 수입은 줄어드는 구조가 됐다"며 "정액제로 다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부 당국은 이같은 요구에 대해 사실상 부정적인 분위기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정부가 나서서 경쟁구조를 이래저래 재편하라고 하는 건 맞지 않다"며 "운송업에 이륜차를 포함시키는 방안도 전혀 고려하지 않다"고 잘라말했다.
결국 17만 명 넘는 퀵서비스 노동자들은 오늘도 전국 거리 곳곳에서 '곡예 운전'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재주를 부려야 하는 '서커스의 곰'과 꼭 닮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