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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의 '재벌觀' 지난 10년의 변천사를 살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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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제도보다 '기업우선'에서 기업도 사법 테두리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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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간 사법부의 '대(對)재벌관'은 어떻게 변해왔을까?

사법부의 '재벌관'은 국민의 '재벌관'보다 항상 뒤쳐져 있었지만, 우리사회 주류세력의 사회관 변화의 흐름을 일정 정도 보여준다는 면에서 매우 흥미로운 대목이다.

"경제발전에 기여한 점을 인정해야 한다"며 재벌 총수들의 경제범죄에 대해서는 범죄사실의 경중에 관계없이 무조건 반사적으로 '솜방망이 선고'를 내려왔던 법원.

오죽했으면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은 헌법보다 위에 있는 재벌 형법이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법원이 최근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 재벌 총수들에게 잇따라 실형을 선고하면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스스로가 극복하고 있다"는 세간의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10년간 사법부의 재벌총수에 대한 선고 변천사를 살펴보자.

10년간 사법부의 재벌총수에 대한 선고 변천사
최태원(2003)
"SK 등 거대 기업이 우리 경제성장에 기여 감안해야…"

정몽구(2008)
"정몽구 사회 격리보다 경제발전 기회 부여가 형벌제도 이상에 더 부합…"

이건희(2009)
"고령·경제 기여도 고려해 집행유예…"

이호진(2012)
"기업인이 경제 미치는 영향 클수록…사법적 잣대로 책임 물어야…"

최태원(2013,1)
"우리 경제 신뢰도 위에서 피고인 법법행위에 엄정대처는 당위적…"

김승연(2013,4)
"대기업 역시 경제주체로 사법제도 테두리안에서 운영돼야…"


◈ 툭하면 '집행유예','사면'…"피해자가 고령", "기업의 경제기여도 커서"

불과 2-3년전까지만 해도 법원은 횡령과 배임 등 경제범죄를 저지른 재벌 총수들에 대해 공식처럼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형법에 따르면 집행유예는 징역 3년 이하의 형일 경우에만 가능하기 때문에, "재판부가 형량을 3년으로 맞춘 뒤 집행유예를 선고했다"는 질타를 받곤 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년전인 2003년. 1조 5천억원대 분식회계 혐의로 불구속기소돼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항소심에서 징역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 받았다.

600억원대 비자금 조성과 횡령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도 2008년 6월 항소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의 판결이 내려졌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증여 혐의와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 저가발행 혐의(조세포탈 및 배임 등)로 기소돼 2009년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집행유예 선고에 대한 이유로 피고인의 나이가 고령이라는 점이나 해당 기업의 경제 기여도, 피해가 회복된 점 등을 들었다.

당시 정몽구 회장의 항소심 재판부는 "정몽구를 사회에서 격리해 경영활동을 금지시키는 것보다는 우리 경제와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걸맞은 수준의 기업의 투명성과 합리성을 제고하고, 건전한 기업 활동을 통해 현대자동차그룹과 우리 사회, 국가경제의 발전에 진정으로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한번 더 부여하는 것이 형벌제도의 이상에 부합한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정몽구를 사회에서 격리하는 것보다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부여하는 것이 형벌제도의 이상에 부합한다는 선고 이유를 불과 5년전 일이라고 상기하면 실로 어처구니가 없다.

최태원 회장의 항소심 재판부 역시 "SK그룹 등 거대기업집단들이 우리 경제성장에 기여한 바가 적지 않다. SK글로벌의 부실 등 SK그룹 전체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피고인 자신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을 뿐 아니라 피고인이 범행 후 과거의 잘못된 경영형태를 단절하고 앞으로 기업지배구조의 개선을 통해 공정하고 합리적인 경영을 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며 집행유예를 선고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한편 정 회장은 선고 73일 뒤, 최 회장은 78일 뒤 각각 사면됐고 이 회장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등을 이유로 특별사면되면서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 과거같은 법 위의 재벌관용 대신, 법원 "법 앞에 재벌 예외없어"

하지만 횡령과 배임 등 경제범죄로 재판에 넘겨진 재벌 총수 범죄에 대한 사법부의 관대함은 이명박 정부 중후반 들어 소득 양극화 현상이 극심화되면서 서서히 변하기 시작한다.

특히, 지난 대선에서 '경제 민주화'정신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가 높아진 뒤에는 집행유예 대신 실형을 선고받는 재벌 총수들이 늘고 있다. 과거의 범법 사실에 비하면 죄질이 덜 나쁘더라도 재벌총수에게 '사회적 책임'을 판사들은 더 강조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시대를 잘못 만난 재벌총수들의 '불운'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현실은 어디까지나 현실이다.

부당한 방법으로 얻은 기업수익을 유상증자 등 개인용도로 사용한 혐의 등(횡령과 배임)으로 기소된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은 지난해 12월 항소심에서 징역 4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기업인의 경제발전에 대한 기여를 도외시해서는 안 되지만 이를 양형판단에 유리한 요소로 과도하게 반영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이같이 선고했다.

재판부는 특히 "기업인이 우리 사회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면 클수록 오히려 그의 범죄에 대해서는 더욱 엄격한 사법적 잣대를 들이대 그 책임을 묻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경제기여도'가 양형결정에 유리한 요소로 감안됐던 과거 사법부의 판단기준과는 180도 다르다.

수백억 원의 펀드출자용 선지급금을 유용한 혐의(횡령 및 배임) 등으로 기소된 최태원 SK그룹 회장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한 재판부의 판단도 다르지 않다.

재판부는 "우리 경제체제의 공고성과 성숙도의 신뢰 위에서 피고인(최태원)에 대해서는 관용에 앞서 그 범법 행위에 대한 엄정한 대처의 당위성을 직시하지 않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벌 총수일가 소유의 위장계열사 빚을 그룹 계열사가 갚도록 해 주주들에게 수천억 원의 손실을 안긴 혐의 등으로 불구속기소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도 지난해 8월 1심에서는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지난 15일 항소심 재판부는 김 회장에 대해 형량을 1년 낮춘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대기업집단이 우리나라의 눈부신 경제성장에 큰 기여를 한 점을 소홀히 할 수는 없지만, 대기업도 경제주체로서 법질서를 준수해야 하고 투명한 기업경영을 통해 그 역할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며 "이는 오랜 세월 대기업집단과 함께 해 온 국민들의 시대적 요구이기도 하다"며 대기업 역시 사법제도의 테두리 안에서 운영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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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원의 입장 변화 왜…

재벌 총수 범죄에 대한 사법부의 입장 변화의 이유를 두고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사회가 양극화되고 분배에 대한 요구도 커지면서 재벌의 범죄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이 변화된 것이 주된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성폭력 범죄에서 예전처럼 술을 마신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해서 감형을 해줄 수 없는 것처럼 재벌의 경제범죄에 대해서도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덧붙였다.

양형기준의 변화도 중요한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2009년 7월 대법원은 "중대 범죄와 화이트칼라 범죄의 적정한 양형에 대한 국민적 요청을 반영하겠다"면서 횡령이나 배임죄의 경우 액수에 따라 기본 형량을 정하고 액수가 50억 원 이상이면 집행유예 선고가 불가능한 4년형 이상을 선고하도록 양형기준을 정했다.

한 판사는 "재벌총수들의 경제범죄는 뚜렷한 피해자 없이 대부분 기업 내부에서 벌어진 일인 경우가 많고, 재벌총수들이 전과를 가진 경우도 많지 않아 과거의 판결들이 가능했던 것 같다"며 "하지만 최근에는 법원 내부에서도 재벌 범죄에 대한 양형을 상식적으로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법조계 관계자 관계자도 "재벌에 대한 과거 판결을 두고 국민과 언론의 거센 비판의 목소리가 있었고, 적정한 양형에 대한 고민을 토대로 대법원 양형기준이 바뀐 결과"라면서 "법원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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