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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운전자, 청각장애 음악 기획자…불가능하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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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들 "못한다, 안된다는 인식 속에선 뛰어난 기술도 제대로 발휘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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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29일 미국 플로리다주 데이토나 국제자동차경주장. 파란색 SUV 자동차 한 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자동차는 느릿느릿한 속도로 트랙을 돌며 경주장 곳곳에 떨어진 종이상자를 피해갔다. 경주장과 어울리지 않는 속도였지만 관중석에서는 뜨거운 환호가 쏟아졌다. 2.4km를 주행한 차량이 멈춰서고, 운전석에서 내린 사람은 뜻밖에도 흰 지팡이를 손에 쥔 시각장애인이었다.

미국맹인연맹(NFB)의 간부인 마이크 리코보노는 시각장애인용 자동차 '브라이언'을 2.4km 운전한 뒤 아내를 끌어안고 벅찬 감동을 나눴다.

앞을 볼 수 있는 사람만이 운전을 할 수 있다? 지극히 당연하게 들리는 이 생각에 물음표를 던진 사람이 있다.

시각장애인용 자동차를 만든 미국 버지니아텍 교수 데니스 홍(42). 그는 한 강연에서 "시각장애인을 태우고 달리는 자동차가 아닌, 그들을 위한 자동차를 만들어 시각장애인에게 자유와 독립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국사회는 어떨까. 데니스 홍 교수의 급진적인 아이디어가 우리 사회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다수의 장애인들은 "아직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비장애인이 누리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포기하고 살아야 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장애가 있기 때문에 불편한 삶을 견뎌야 하는 것은 정말 '당연'할까?

◈ 자장면 한 그릇 못 시켜도 "내 장애 때문"…불편함 오롯이 장애인의 몫

15살에 청각을 잃고 40여년을 장애인으로 살아온 이영미(53)씨. 이 씨의 하루는 음악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단원들을 챙기는 것으로 채워진다. 청각장애 2급, 들리지 않는 그에게 '음악'이란 삶의 일부분이다.

"저는 몸으로 진동을 통해 음악을 느껴요. 눈이 보이지 않아도 미술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듣지 못해도 음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음악이 청각장애인과 무관하다는 고정 관념을 깨고 싶었습니다."

서예가인 이 씨는 8년째 청주시노인종합복지관에서 음악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지난해엔 이 씨가 기획한 청노실버앙상블합창단이 전국실버합창단 대회에 충북 대표로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데니스 홍 교수의 시각장애인용 자동차에 대해 "아무리 좋은 기술이 만들어져도 사회 인식이 개선되지 않으면 별 효과가 없을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해주었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니 운전이 꼭 필요해서 면허를 땄는데 아무래도 청각장애인이다 보니 위험할 때가 있어요. 그래서 차 뒤에 '나는 청각장애인입니다'표시를 써 놨더니 차들이 더 끼어드는 거예요. 배려하기는 커녕 위협적으로 운전해서 더 위험했죠."

이 씨는 "이같은 인식 속에선 장애인을 위한 뛰어난 기술이 나온다고 해도 환경과 사회적 인식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제대로 사용될 수 없다"고 못박았다.

시각장애 1급인 정모(52)씨도 '스마트'한 기술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사람 중 하나다.

업무탓에 폰뱅킹을 자주 사용하는데, 인터넷 뱅킹용 OTP 카드에 음성 지원이 되지 않아 계좌이체때마다 주위 사람에게 번호를 불러달라고 요청해야 하기 때문.

정 씨는 "스마트폰 하나로 다양한 업무를 처리할 정도로 기술이 발전했지만 장애인을 위한 부분은 찾아볼 수 없다"며 "기술적 문제보다는 시각장애인을 배려하지 않는 인식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청각장애인 이모(25,여)씨는 일상의 불편함을 자신의 몫으로 여기고 견디는 편이다. 홈쇼핑 주문이나 자장면, 통닭 주문도 수화통역사 없이는 불가능하지만 장애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뮤지컬이나 대중음악도 그에겐 그림의 떡이다.

"케이팝 스타 최근에 이슈 됐는데 왜 열광하는지 궁금했지만 알 수 없었어요. 뮤지컬도 보러 가고 싶은데 수화 서비스가 없으니 소외감을 느끼죠."

◈ 장애인들 "소수의 장애인을 다수의 비장애인에 맞추려 하는 것 자체가 차별"

20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2010년부터 '장애인 편익 증진을 위한 기술 개발 8개 과제'를 선정해 추진중이다. 장애인들이 쉽게 탑승해 운전할 수 있는 복지 자동차와 언어장애인의 의사소통을 지원해주는 단말기 등이 과제에 포함돼 있다.

예산도 지난해 55억에서 올해 100억으로 두 배 가까이 증액됐지만 대중화 측면에선 아직 갈 길이 멀다.

산자부 관계자는 "현재는 장애인 지원 기술 개발을 위해 대학과 연구 기관의 지원 체계를 구축하는 단계”라며 "사회적으로 장애인 기술 개발에 대한 관심도가 낮아 정부부터 나서 토대를 닦아 기업의 참여를 유도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장애인단체들은 "장애인을 비장애인의 삶에 똑같이 끼워넣기 보다는 장애를 배려하는 사회적 인식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농아인협회 경기도지부 김상화 사무국장은 "보통 사람들은 내가 정상적인 사람이라고만 생각하고 소수의 비정상적인 사람이 다수에 맞춰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잘못된 것"이라며 "비장애인들은 그걸 차별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어떤 사람의 꿈이 장애로 인해 한계지어진다면 그건 굉장히 큰 차별"이라고 말했다.

김 국장은 "담장이 높으면 키가 작은 사람에게 발판을 마련해주듯, 장애를 극복 대상이 아니라 불편한 몸에 보조를 맞춰서 함께 살아갈 방법 찾아보는 게 어떨까"라고 조언했다.

경기도시각장애인협회 박해술 회장도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을 너무 크고 어렵게만 생각하는 것 같다"며 "어떻게 도와주면 덜 불편할까라는 생각처럼 사소한 것부터 인식이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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