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마지막 공석이던 대법관 자리 하나에 김소영 대전고법 부장판사가 낙점되면서 검찰이 '초유의 사변'을 맞았다. 사실상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법관 배출에 실패한 까닭이다.
검찰 출신 대법관의 기원은 광복 직후로 올라간다. 민복기 전 대법원장은 해방 이후 법무부 검찰국장, 서울지검장을 거쳐 제5대 검찰총장을 지낸 뒤 1961년 대법관에 이어 1968년 대법원장이 됐다.
거꾸로 김익진 제2대 검찰총장, 한격만 제4대 검찰총장은 각각 1948년과 1952년 대법관에 먼저 임명됐다가 나중에 검찰을 지휘한 경우에 해당한다.
민 전 대법원장 이후에도 1969~1975년 6년간을 빼고 검찰 출신 대법관은 군사정권과 민주정권을 통틀어 계속 임명됐다. 전두환 정권 때는 1명씩이던 검찰 출신 대법관 수가 2명으로 늘기도 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의 경우 최근 안대희 전 대법관에 이르기까지 대검 감찰부장, 법무부 법무연수원장, 서울고검장, 또다시 서울고검장 출신자들이 차례로 대법관을 지냈다.
검찰 입장에서는 안 전 대법관을 끝으로, 대한민국 최고 사법기관으로의 '명예로운 진출' 기회를 잃은 셈이다. "후임 대법관도 검찰 출신이어야 한다"는 입장이던 법무부와 검찰의 상실감도 클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검찰 입장을 대변하는 청와대가 '검찰 출신자 임명'을 요구하며 최근까지 대법원에 압박을 가했다는 설까지 나온 터였다.
이날 검찰 내부에서 '대놓고 비판'은 없었지만 대법원을 향한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도 않았다. 검사들 반응은 대체로 "대법관 구성의 다양성을 고려할 때 이번 대법관 임명제청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수사 경력이 있는 대법관도 필요하지 않느냐는 지적, 일본 최고재판소가 검찰 출신 재판관을 두고 있다는 사례 등도 제시됐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검찰이 자초했다는 반론이 제기된다. 대법원이 검찰 추천을 받아 앞서 임명 제청했던 김병화 전 인천지검장이 국회 인사청문 과정에서 자진 사퇴했기 때문이다.
대법원이 별도로 검찰 출신자를 검증할 수 없기 때문에 인사검증 책임은 검찰 쪽에 있었다는 점에서, 검찰이 면밀한 검증 없이 무리한 추천을 했다는 지적이 가능하다.
실제로 김 전 지검장 낙마 뒤 법조계 안팎에서 '대법관 구성의 다양성'을 위해, 여성을 한명 더 추천하거나 재야 법조인을 추천해야 한다는 의견이 만만찮게 개진됐다. 대법원 입장에서는 이를 무시하고 '검찰 편들기'를 고집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우리 헌법은 대법관에 판사·검사·변호사가 '임명될 수 있다'고 할 뿐 '검사도 임명해야 한다'고 규정하지 않았다. 검찰 출신 대법관을 뽑고 말고는 전적으로 대법원장이 결정할 문제다.
수도권의 한 지법 소속 판사는 "관행적으로 대법관 자리 하나가 검찰 몫이었다고 해도, 관행이란 것은 꼭 지켜야 하는 게 아니다"라며 "대법관 인적 구성의 다양성은 당연히 추구해야 한다. 하지만 그 자리에 적합한 사람이 앉는 게 중요하지, 특정 직역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