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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1세대를 대표하는 인기작가 강풀(본명 강도영)은 충무로가 특히 사랑하는 만화가다.
서른살에 데뷔해 올해 마흔이 된 그는 그동안 10편의 장편만화를 발표했다.
그중 '아파트'(2006), '바보'(2008), '순정만화'(2008), '그대를 사랑합니다'(2010)가 영화로 만들어졌고 지난 22일에는 '이웃사람'이 개봉됐다.
현재 촬영 중인 '26년'과 원안을 제공해 완성된 '통증'(2011)까지 더하면 총 7편이나 된다.
비단 영화뿐만 아니라 연극, 드라마로 만들어져 그 인기를 입증하고 있다.
이웃사람을 제작한 무쇠팔의 석재승 피디는 "강풀은 무궁무진하고 매력적인 콘텐츠 상자"라고 비유했다.
"특히 그의 모든 작품이 영화화를 염두하고 그리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영화적"이라며 충무로 제작자들이 그에게 주목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 충무로의 러브콜을 많이 받을텐데, 판권을 주는 기준이 뭔가? "처음에는 영화화를 할 의향이 있는지를 최우선으로 따졌다. 일단 판권만 확보하려는 제작사가 많아서였다. 두 번째는 어떻게 만들 것인지를 봤다. 몇번 하다보니까 영화는 결국 감독의 예술이더라. 그래서 요즘은 감독이 누군지를 본다. 일단 영화화하면 절대 관여하지 않는다. 캐스팅도 마찬가지. 감독이 물어봐도 얘기하지 않는다. 다만 몇개 안을 보여주며 누가 좋냐고 물으면 그때는 내 의견을 말한다."
- 26년 제작사인 청어람과 각별해보인다. 순정만화로 맺은 인연이 26년, '당신의 모든 순간'(기획단계)까지 총 3작품을 넘겼다. 몇년전엔 '괴물2' 시나리오도 썼다."최용배 대표는 제가 좋아하는 형님이다. 순정만화는 청어람에서 투자배급한 것이었고 최 대표와는 26년으로 처음 만났다. 당시 13군데서 러브콜을 받았다. 다들 어렵겠지만 열심히 해보겠다더라. 하지만 최 대표만이 "이거 충무로에서 나 아니면 못한다"고 하셨다. 확신에 찬 그 말이 좋았다. 저도 26년을 그릴 때 용기가 필요했다. 최 대표가 했기에 지금이라도 촬영에 들어갔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제가 쓴 괴물2 버전은 엎어졌다."
- 그동안 영화화된 작품은 흥행에서 재미를 못봤다. 이웃사람이 오랜 징크스를 깰것 같은데? "한 작품 빼고는 손익분기점 다 넘겼다던데(웃음). 그걸 떠나서 개인적으로 영화화된 내 작품은 다 좋다. 배우들이 연기해서 생명력을 얻는 게 마냥 좋고 신기하다. 그 자체로 선물같은 느낌. 아파트는 원작과 완전히 다르다고 했지만 전 그것도 나름의 미덕이 있다고 본다."
- 가장 많이 영화화된 웹툰 작가로서 조언을 한다면?"만화 그릴 때부터 영화화를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단 한 번도 그렇지 않았다. 일단 자기 만화에 몰두해야 한다. 그래야 그 다음이 이뤄진다. 어떤 만화가를 보면 나중에 책으로 낼 것을 생각하면서 만화를 그린다는데 전 그것도 동의하지 않는다. 만약 웹툰을 그린다면 웹에 최적화된 연출을 해야한다."
- 대단한 이야기꾼이다. 어린시절 독서가 밑거름이 됐나? "책은 지금도 좋아한다. 단편보다 장편을, 그중에도 막 10권씩 이어지는 장편을, 또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것을 좋아한다. 요즘 '영웅문'과 고우영 만화전집을 다시 보고 있다. 사실 난 특별히 만화에 관심없었다. 소설 만화 영화 구분없이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 만화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대학시절 박재동 화백의 만평을 보고서다. 만평이 이렇게 재밌구나 생각했고 학내 만평가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졸업할 때쯤 만화가 아주 좋아져서 직업으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시사만화가가 될 생각은 없었다. 난 이야기를 창작하는게 더 좋다. 지금도 연재에 앞서 이야기를 구상하는 그때가 가장 즐겁다."
- 이야기의 소재는 어디서 얻나? "소재는 주변에서 얻는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사회문제가 들어간다. 이웃사람은 2007년도 말에 구상했는데 당시 연쇄살인마에 대한 뉴스가 많이 보도되면서 인터넷에 괴담이 돌았다. 옆집에서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서 항의하러 갔는데 나중에 알고봤더니 유영철이 살던 집이었다, 뭐 그런 괴담. 그걸 접하고 이웃사람들이 조금만 더 관심을 가졌으면 눈치채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연쇄살인을 막을 수도 있었을텐데, 그런 생각으로 쓰게 된 것이다."
- 10년 동안 10편을 발표했다. 다작이다.
"맞다. 하지만 아직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 얼마나 벌었나? "벌만큼 벌었다. 제 나이에 비해서 많이 벌었다. 하지만 더 많이 벌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만화도 대중문화 중 하나인데 제가 웹툰 1세대로서 상위 작가라고 봤을 때 더 많이 벌고 싶다. 누구는 빌딩을 샀다고 하는데 제발 그랬음 좋겠다."(웃음)
- 발표하는 작품마다 인기다. 재미와 완성도를 유지하는 비결이 뭔가? "나를 만족시킬만큼 재밌는 이야기를 쓰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재미있으면 관객들도 재밌다는 맹목적 믿음을 갖고 있다. 일단 스토리가 완성되면 아내에게 가장 먼저 보여준다. 냉정하게 말하는 사람이라서 재미없다고 하면 두 말 않고 접는다. 그리고 만화를 향유하는 층과 세대 차이가 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연재가 시작되면 약속도 안잡고 몰두한다. 1년에 딱 4개월 반, 새벽 4시에 기상해서 4시 30분에 출근해 밤 10시 반에 퇴근한다."
- 이웃사람의 연쇄살인마를 제하면 강풀 만화 속 캐릭터는 참 선하다. 인간이 선하다고 믿나? "그렇게 믿는다. 선악설과 성선설, 둘 중 택하라면 성선설이다. 아마도 행복한 어린시절을 보냈기 때문인 것 같다. 가정형편은 어려웠는데 가정환경은 좋았다. 아버지가 목사였는데 지금은 칠순 넘어 은퇴하셨고, 제가 뭘해도 믿어줬다. 또 사람을 먼저 생각하라고 교육하셨다."
- 이제 곧 아버지가 된다.
"결혼 6년 만에 생겼다. 5개월됐다. 사실 아내와 고양이 두 마리와 재밌게 노느라 특별히 애 생각은 없었다. 근데 아이가 생기니까 너무 좋다. 제 작품이 과도할 정도로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데 더 많아질 것 같다. 아마도 육아만화도 그리게 되지 않을까. 계획없다고 장담 못하겠다."
- 2세가 만화가가 되겠다면? "대환영이다. 난 만화가가 정말 좋다. 다시 태어나도 만화를 할 것이다. 특히 영화하는 거 보니까 만화가 최고더라. 너무 많이 엮어있어서 뭐가 하나 안되면 타격이 크더라. 제 아이도 만화가가 됐으면 좋겠다. 윤태호, 양영순 등 뛰어난 만화가들에게 교육시켜서 최고의 만화가로 만들고 싶다."(웃음)
강풀은… |
1974년생. 대학졸업 후 만화를 그리고 싶어서 수많은 잡지사에 이력서를 냈지만 아무도 불러주지 않아서 지난 2002년 인터넷에 강풀닷컴을 오픈했다.
같은 해 미디어다음에 '영화야 놀자'를 연재하면서 프로작가로 데뷔했고 이듬해 첫 장편 '순정만화'를 발표했다.
강풀은 당시만 해도 캐릭터 중심의 에피소드형 웹툰이 대세였는데 처음으로 서사웹툰 형식을 제시해 주목받았다.
특히 기존 상업만화에 몸담은 적이 없어 처음부터 인터넷을 위한 만화를 그렸다. 웹툰이란 새로운 장르의 개척자로 평가받는 이유다.
강풀은 또한 순정만화풍의 그림체로 로맨스부터 공포, SF, 스릴러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을 뽐내고 있다.
대학시절 국방색 옷을 즐겨입어 강'풀'이라 불렸는데 홈페이지 개설 당시 아이디로 사용하면서 지금은 본명보다 친숙해졌다.
지난 2009년 만화콘텐츠기획사 누룩미디어를 설립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