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장준하 선생의 유골
박정희 정권에 맞서 민주화 운동을 벌이다 의문사한 고(故) 장준하 선생의 검사 소견서가 공개됐다.
16일 소견서에 따르면 장 선생의 사망 원인은 머리 손상으로 보여지며, 가격에 의한 것인지 또는 넘어지거나 추락하면서 부딪쳐 생긴 것인지는 판단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골은 대체로 형태가 유지된 상태로 머리뼈와 골반에 골절 소견을 보였다.
머리뼈에는 뒤통수 오른쪽에 동그란 복잡-함몰 골절이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 안쪽으로 함몰됐다. 이 부위로 뻗어나간 18cm의 기다란 골절 등도 있었다. 오른쪽 볼기뼈는 적어도 4조각으로 분리됐으며, 불규칙한 형태로 미뤄 골절로 판단됐다.
검사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연구소 이윤성 교수가 맡았다. 검사 방법은 이장을 위해 거둔 유골을 훼손하지 않고 맨눈 형태학적인 검사로 이뤄졌다.
장준하기념사업회는 "장 선생의 사망원인은 절대로 추락사가 아니다"면서 "외부적 가격에 의한 사망임을 확신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 교수가 밝힌 두개골 오른쪽 귀 뒤쪽의 함몰모양과 위치는 결코 추락에 의한 함몰이 아니다"며 "추락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모양의 함몰골절은 결코 생길 수 없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국가가 책임을 지고 즉시 장 선생의 사망사건에 대한 전면적 재조사와 진상규명에 착수하라"고 촉구했다.
고(故) 장준하 선생의 유골
사업회는 "국가가 책임을 회피한다면 뜻있는 모든 국민의 힘을 모아 '범국민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 끝까지 장 선생의 죽음의 진실을 밝혀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1918년 평안북도 의주에서 태어난 장준하 선생은 일제 강점기 광복군·임시정부 소속으로 독립운동을 벌였다.
해방 뒤에는 3선 개헌에 반대하는 등 민주화 운동을 벌이다 1975년 8월 경기 포천시 약사봉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검찰은 '등산 중 실족에 의한 추락사'라고 사인을 발표했다.
과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지난 2004년 타살 의혹을 조사했으나 '진상규명 불능'이라는 결론지었다.
유족은 지난 1일 이장하는 과정에서 두개골 뒤쪽에 지름 5∼6cm의 구멍과 금이 간 흔적이 발견됐다며 타살 의혹을 재차 주장하고 나섰다.
장 선생의 유가족과 사업회, 파주시 등은 17일 오전 11시 경기도 파주시 성동리 통일동산에서 각계인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장준하 추모공원 제막식을 연다.
한편 민주통합당은 고 장준하 선생 의문사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