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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례 1번…여 '원자력 박사'·야 '전태일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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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민주통합당 비례대표후보 1번에 전태일 열사의 여동생 전순옥씨(사진 왼쪽)가 공천됐다.

그녀의 파란만장한 삶은 오빠인 전태일 열사 분신에서 비롯된 가족사와 밀접히 연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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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의 분신은 가족 전체의 삶의 전환점이 돼 버린 것이다.

전태일의 분신 당시 16살 중학생이었던 전순옥씨는 이후 중학교를 마치고 미싱사 보조, 이른바 '시다'를 했다.

좁고 먼지 풀풀 날리는 공장 작업장의 근무환경이 좋을 리 없었다.

악조건 속에서도 그녀는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았다.

독학으로 고교 졸업자격을 딴 뒤 신학교에서 교육학을 공부하기도 했다.

'노동자들의 어머니'로 불리는 이소선 여사는 그녀의 어머니다.

이 여사의 노동운동을 돕던 전순옥씨는 지난 1989년 35세 늦은 나이에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언어와 금전 문제가 현실적인 벽이었는데, 언어는 노력으로 극복했고 학비와 생활비는 두레마을 공동체를 운영하는 김진홍 목사가 도움을 줬다고 한다.

10여 년을 훌쩍 넘긴 2001년, 그녀는 노동사회학 분야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해 당시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박사학위 논문은 70년대 여성노동운동사를 다룬 '그들은 기계가 아니다'라는 제목이었다.

노동현장을 발로 뛴 경험이 없으면 쓸 수 없을 만큼 풍부한 자료가 담긴 논문이었다.

유학생활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당시 대사관 직원들은 감시의 눈초리로 지켜봤고, '전태일 열사의 여동생' 딱지가 붙은 탓에 오빠 덕에 산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누구보다 열심히, 이를 악물고 노력했다.

귀국 후 그의 선택은 역시 노동자를 위한 참된 일터를 찾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오랜 만에 찾은 창신동은 예전의 모습과 별반 달르지 않았다고 한다.

적정수준의 생계가 가능하고 환경적으로도 우수한 모범업체를 눈씻고 찾을래야 찾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그래서 약 1년 여 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2007년 10월 재봉틀을 돌리기 시작했다.

모범업체를 만들고 싶은 꿈이 담겼다.

2008년 12월 마침내 '참 신나는 옷'은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을 받았고 그녀는 업체 대표로 활동해 왔다.

한편 이에 앞서 새누리당은 비례대표 1번으로 민병주(54) 원자력연구원 원자력자료개발검증센터 책임연구원을 공천했다.

이화여대를 졸업한 민병주 박사는 일본 규슈대학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서 일본 원자력연구소와 일본 이화학연구소에서 근무했으며, 1991년 한국원자력연구원 여성 해외유치과학자 1호로 원자력연구원과 인연을 맺었다.

2005년에는 원자력연수원장으로 임명돼, '금녀의 집'으로 불렸던 한국원자력연구원 개원 47년 만에 처음으로 여성관리자에 오르며, 주목을 받기도 했다.

제8대 대한여성과학기술인 회장(2010~2011)을 지낸 민 박사는 2000년 11월 한국여성원자력전문인모임을 결성했으며 대전 지역의 초ㆍ중ㆍ고등학교에서 안전한 원자력이라는 주제로 연구현장의 경험담과 원자력에 대한 강연을 활발하게 전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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