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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언, "미쓰비시와 근로정신대문제 협상 1년, 우리 정부는 전화 한 통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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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관에서 車 한 대 내주는 게 지원인가?
초등학교 6학년 여학생들까지 강제 노역시켰던 일제
근로정신대 문제, 관심 적었던 만큼 피해도 크다
1999년 미쓰비시 상대로 소송 시작
99엔 지급결정, 파렴치하지만 의미는 있다
제대로 된 사과 받는 게 협상의 제1목적
도와주진 않으면서 미쓰비시에 용역 주다니
‘천원으로 동참하는 10만 희망릴레이’로 여기까지 왔다

근로정신대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00~20:00)■ 방송일 : 2011년 8월 26일 (금) 오후 7시 30분■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출 연 :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이국언 사무국장


▶정관용> 시사자키 3부 시작합니다. 일제 강점기 당시에 미쓰비시 중공업 등에서 근로정신대로 강제노역을 했던 우리 할머니들, 일본 후생성이 지난 2009년 말에 1인당 99엔, 우리 돈으로 1,300원 가량을 지급하겠다. 참 어처구니 없어했던 뉴스, 여러분, 기억하시지요? 하지만 그 뒤에 다행히 일본 미쓰비시 쪽이 다소 전향적인 모습을 보여서 보상문제, 사과방식 등을 두고 협상을 하겠다고 나선 게 작년 7월의 일인데요. 벌써 1년 시간이 흘렀는데 이렇다할 소식이 없어서 알아봤더니 협상이 지지부진하다고 합니다. 자, 어떻게 된 사연인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한번 점검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할머니들과 함께 협상 당사자로 참여하고 있는 시민단체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이국언 사무국장, 지금 광주 CBS 스튜디오에 나와계십니다. 이국언 국장, 안녕하세요?

▷이국언> 예, 안녕하십니까?

초등학교 6학년 여학생들까지 강제 노역시켰던 일제

▶정관용> 조금 가물가물하신 청취자분들도 많으실 테니까요, 근로정신대가 어떤 분들이지요?

▷이국언> 일제 강점기 때 이제 일본이 패전이 임박해지자 여러 면에서 노동력이 부족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제 남자들은 징용이나 군인으로 모두 끌려가고, 심지어 이제 초등학교 6학년 또래의 어린 여학생들까지 군수공장으로 데려가서 군수업체에서 강제로 노역을 시켰던 사실이 있는데, 이게 이제 바로 근로정신대입니다.

▶정관용> 모두 규모가 어느 정도, 몇 명이나 됩니까?

▷이국언> 2천여명 정도에는 미치지 못하는데요. 이것은 이제 국내 동원자를 제외하고 일본 등 해외로 끌려간 숫자인데.

▶정관용> 그렇지요.

▷이국언> 여기 계산으로는 미쓰비시 중공업이 약 300여명 정도, 그리고 후지코시 근로정신대라고 또 다른 군수업체입니다만, 여기에는 1,089명, 그 다음에 이제 도쿄 아사이토라고 하는 회사로는 약 300여 명 정도가 끌려가서 고초를 겪었습니다.

▶정관용> 이분들은 그러니까 한국에서 붙잡혀서 일본으로 끌려가서 공장에서 강제노역을 했다, 그거지요?

▷이국언> 예, 그렇습니다.

▶정관용> 그 노역을 하면서 봉급을 받았나요?

▷이국언> 아닙니다. 일본에 끌고 갈 때에는 여러 가지 회유가 있었는데요, 하나는 일본에 가면 돈도 벌 수 있고, 또 하나는 일본에 가면 중학교랄지 상급학교도 진학할 수 있다, 이렇게 이제 말하자면, 속였습니다.

공짜로 강제노역한 할머니들에게 99엔 지급 결정

▶정관용> 학교 보내준다?

▷이국언> 예, 그런데 일체의 임금 지불이 없었고, 처음으로 일본으로부터 받은 것이 바로 2년 전에 있었던 99엔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정관용> 그러니까 그 강제노역 기간에는 한푼도 받은 바가 없다?

▷이국언> 예, 그렇습니다.

▶정관용> 그리고 일본이 패망하고 이분들은 다 돌아오셨나요?

▷이국언> 일본에 가서도, 예를 들어서 연합군의 폭격이랄지, 또는 당시 미쓰비시의 경우에는 1944년도에 나고야 일대에 큰 지진이 있었습니다. 그때 6명이 건물더미가 무너져서...

▶정관용> 사망하고?

▷이국언> 사망하는 그런 안타까운 상황도 있었습니다.

▶정관용> 그러니까 그런 불의의 사고를 당하신 분들 외에는 다들 귀국하셨군요?

▷이국언> 예. 그런데 이분들에 대해서는 조금 이해가 필요한 것이, 일본에서의 고통이야 이제 더 말할 것 없지만, 특히 이제 해방 후에 돌아와서 이분들이 겪어야 했던 고초가 더 컸습니다. 그것은 그 당시 이제 아직 봉건적인 유습이 우리한테는 강하게 남아있었을 때고.

▶정관용> 그렇지요.

▷이국언> 그래서 결혼도 어려웠었지만, 결혼을 하고서도 마치 위안부 피해 할머니인 것처럼 사회적으로 규정이 되어 버렸었지요.

근로정신대 문제, 관심 적었던 만큼 피해도 크다

▶정관용> 그래요.

▷이국언> 그래서 어렵게 가정을 꾸렸더라도 제가 만나본 피해자 분들의 대부분은 결혼 후 파혼의 아픔까지 겪었고, 또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해결 여부와 상관없이...

▶정관용> 높아요.

▷이국언> 높아서 마음으로나마 다소 또 위로가 될 수 있었던 반면, 근로정신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제대로 된 조사나 관심조차도 없어서...

▶정관용> 그렇지요.

▷이국언> 이분들은 이제 피해자이면서도 본인이 피해자라고 하는 사실들을 밝히지도 못한, 또 다른 이중 피해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지요.

▶정관용> 끌려가서 강제노역당하고, 돈도 한푼 못 받고, 또 돌아와서는 괜히 낯뜨거운 시선을 느껴야 하고. 그렇지요?

▷이국언> 예.

▶정관용> 알겠습니다. 지금 뭐 그 사이에도 돌아가신 분들도 많을 테고, 지금 우리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에서 활동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국언> 예.

▶정관용> 모두 몇분 정도가 지금 현재 파악되어 계시고, 한 십 몇 년 소송도 하셨었잖아요. 어떤 분들이 어떻게 활동을 하고 계신지 조금만 소개해주세요.

▷이국언> 미쓰비시로 끌려간 피해자들은 약 300여명 정도였습니다만, 이분들이 사회적인 관심이 미처 미치지 못한 속에서 용기를 내기가 대단히 어려웠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광주 전남 출신 8분의 피해자들이 정말 용기를 내서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해서 소송을 벌였습니다만.

1999년 미쓰비시 상대로 소송 시작

▶정관용> 그게 처음 시작이 언제였지요?

▷이국언> 1999년 3월 1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소송이 10여 년 동안 길게 이어졌었고, 이 과정에 소송의 결과를 보지 못하고 세 분의 할머니가 돌아가시게 됐고.

▶정관용> 아이고.

▷이국언> 현재 생존해계신 분들은 5분만 현재 남아있습니다.

▶정관용> 그 외에 다른 분들, 나는 그 당시 미쓰비시, 아니면 어디에 끌려갔다 온 사람이다, 라고 해서 지금 파악된 분들은 안 계신가요?

▷이국언> 진상규명위원회에 신고한 숫자가 미쓰비시의 경우에는 유족까지를 포함해서 41분이 신고를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생존자는 더 적다고 봐야 되겠고요.

▶정관용> 그렇지요.

▷이국언> 다른 지역까지를 모두 포괄한다고 하더라도 150여 명을 넘지 않은 숫자인데, 이 가운데에서도 피해자 유족들이 계신 것을 감안하면, 생존 숫자는 이제 뭐 80 연세를 생각하면 많이 적다, 이렇게 볼 수 있겠습니다.

▶정관용> 알겠습니다. 아까 말씀하신 소송에서는 결국 패소했지요?

▷이국언> 예, 그렇습니다.

▶정관용> 일본 법원은 왜 패소 판결을 내렸을까요?

▷이국언> 뭐 지금까지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은 어쩌면은 그 시작부터 그 결과가 예정되어 있다시피 했던 것인데, 바로 1965년 박정희 정권 시절에 맺은...

▶정관용> 한일협정?

▷이국언> 한일청구권 협정. 그걸 뭐 계속 빌미로 삼았던 것이지요.

▶정관용> 그걸 통해서 모든 일본의 채무는 없어졌다, 이 주장이로군요?

▷이국언> 예, 그렇습니다.

▶정관용> 그런데 2009년 말에 일본 후생성이 이분들한테 한분당 99엔, 우리 돈으로 한 1,300원 가량을 지급하기로 했다. 이게 일본 정부의 결정이었잖아요?

▷이국언> 예, 그렇습니다.

▶정관용> 우선 왜 이런 결정을 했는지, 그리고 1,300원은 또 뭔 얘긴지 설명 좀 해주세요.

▷이국언> 임금과는 조금 다르고요. 이제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기 위해서 소송의 자료로서 미쓰비시에 근로했다, 라고 하는 증명이 필요했습니다.

▶정관용> 그랬겠지요.

▷이국언> 그런데 이제 당시에는 후생연금이라고 하는 제도가 있어서 우리의 국민연금처럼 5인 이상 사업장에는 의무적으로 납입을 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그 근거를 확보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했었고, 소송 한해 전인 1998년도에 자료를 확인해달라, 라고 신청을 했는데, 후생노동성, 일본 정부는 재판이 10년 동안 이어지는 과정에서 그 자료가 없다, 라고 발뺌을 해오다가 재판이 모두 끝나자 2009년도, 확인 요청 12년 만에서야 그런 사실이 있다, 라고 이야기를 했고.

▶정관용> 후생연금에 가입한 자료들이 남아있다?

▷이국언> 예. 그래서 그렇다고 하면 그 탈퇴 수당금을 달라고 하니까 우리 돈으로 약 1,300원 정도에 불과한 99엔을 지급을 하게 됐습니다.

▶정관용> 그러니까 후생연금에 가입하면서 낸 돈이 99엔이니까, 거기를 탈퇴했으니까 이제 그걸 다 돌려주겠다, 이 말이로군요?

▷이국언> 후생연금은 이제 평균 임금을 근무 일수와 산입하는 계산법이 있습니다만, 원래는 이제 99엔이 맞다고 하면, 의무적으로 강제로 납입을 했기 때문에 45년 해방이 될 때 일본 정부가 사실은 원천적으로 피해자들에게 돌려줘야 할 의무가 있었던 것인데, 그때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66년이 지나서, 예를 들어서 고무신, 일제 당시에 외상을 했는데, 고무신 주인한테 66년 후에 당시 고무신 값을 지불한다고 하면 이해가 되지 않을 것 아닙니까?그런 조치이지요. 액면가 그대로 지급한 것이 문제가 됩니다.

99엔 지급결정, 파렴치하지만 의미는 있다

▶정관용> 하지만 일본 정부가 한일협정으로 인해서 자신들에게는 아무런 채무가 없다, 라고 했다가 공식적으로, 그나마 아주 푼돈이지만, 인정한 첫 사례 아닌가요?

▷이국언> 예, 이건 대단히 중요한 역사적 의미가 있습니다. 그 금액의 적고 크고를 떠나서.

▶정관용> 그렇지요.

▷이국언> 뭐냐면, 지금까지 어떻게 보면 우리 일반 국민도 마찬가지이고,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해가지고 한일협정 때문에 더 이상 제기할 것이 없는 것처럼 기정사실화해왔습니다. 그런데 없는 게 아니고 후생연금처럼 일본 정부가 마땅히 지급해야 될 것이 있다, 라는 것인데, 예를 들어서 양금덕 할머니뿐만 아니라 당시 징용으로 끌려가신 최소 70만에서 80만 명에 달하는 징용 피해 노무자들은 모두 후생연금에 가입되어 있다, 라고 보면 됩니다.

▶정관용> 그랬겠지요.

▷이국언> 그래서 저희가 정부에 지속적으로 요구를 했던 것은 단순히 99엔이 문제가 아니라, 만약 이 할머니들이 이런 모욕을 받지 못하게 되면, 나머지 70~80만에 달하는 우리 징용 피해자들도 99엔 꼴을 면하지 못한다고 보면 된다.

▶정관용> 맞아요.

▷이국언>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외교적으로 정확히 대응을 해서, 현안으로 삼아서, 만약에 한일협정으로 인해서 일본 정부가 못 주겠다고 한다면, 안 주겠다고 하는 것을 달라고 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움이 있겠지만, 일본 정부도 마땅히 지급해야 될 것으로 아는 사안에 대해서, 다만 비상식적으로 지급하고 있는 것을 상식적으로 지급해달라, 라고 하는 이 요구는 어렵지 않지 않겠느냐.

▶정관용> 그렇지요.

▷이국언> 이 요구를 좀 해달라, 라고 저희들이 요청을 했는데, 정부가 그렇게 좀 하지 않았습니다.

▶정관용> 정부 이야기는 조금 있다가 짚어보고요, 2009년 말에 미쓰비시 중공업에서 그런 어떻게 보면 우리 입장에서는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하고 난 다음에 작년 7월에 미쓰비시 측에서 뭐 협상하겠다, 라고 했지요?

▷이국언> 예.

反미쓰비시 정서 우려로 협상 시작

▶정관용> 그럼 미쓰비시는 갑자기 왜 그렇게 자세가 바뀌었어요?

▷이국언> 그것은 재판 이후에 오히려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미쓰비시 운동이랄지, 불매운동의 여파가 미쓰비시가 생각하기에는 그냥 그대로 놓아두기에는 오히려 방금 이야기했던 99엔 문제랄지, 이런 것들이 촉매제가 되어서 계속 확산되어 가는 것이 두려웠지 않는가,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정관용> 제품불매운동 같은 것?

▷이국언> 예, 그동안 2009년도에 약 3만 명에 달하는 시민들의 서명운동이 있었고요, 지난 해에는 약 13만5천여 명의 서명운동이 있었고, 또 광주에서는 미쓰비시 자동차가 광주에 전시장을 열자, 시민들이 약 200여 일이 넘게 1인 시위를 진행을 하고, 결국 전시장이 광주에서 철수되는 상황에 이르게 됐습니다.

▶정관용> 그렇군요. 그래서 협상에 나서겠다, 라고 자세를 바꿔서 밝혔군요?

▷이국언> 예, 그렇습니다.

▶정관용> 그런데 지금 1년이 넘었고, 협상은 누구랑 어떻게 진행이 됐습니까?

▷이국언> 협상은 미쓰비시 중공업하고 하고 있습니다. 지금 지난해 11월 8일 첫 번 회담이 열렸었고, 지금까지 모두 8차례에 걸쳐서 갖고 있는데, 아직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할 만한 그런 소식은 쥐고 있지 못합니다.

▶정관용> 우리 쪽 협상 주체는 지금 이국언 사무국장과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이분들이 하고 계신 건가요?

▷이국언> 예, 그렇습니다.

▶정관용> 8번을 다 어떻게 일본에 가서 만나셨습니까?

▷이국언> 예, 장소는 일본의 도쿄와 할머니들이 끌려갔던 장소가 나고야인데, 나고야 두 지역을 번갈아가면서 하고 있습니다.

▶정관용> 협상이 그런데 잘 돼요, 아니면은 계속 평행선입니까?

▷이국언> 참 어려운데, 아직은 평행선입니다.

▶정관용> 지금 그러니까 그 협상을 통해서 우리 시민 모임 쪽이나 할머니 분들께서는 아까 생존해계신 5분, 그분들의 문제만 푸는 겁니까, 아니면 어떤 걸 지금 하고 있습니까?

▷이국언> 우선은 원고가 대상이 되겠고요. 원고 중에서 사망을 하셨더라도 그 유족을 포함해서 원고가 대상이 되고 있고요.

▶정관용> 8분?

▷이국언> 예. 저희들의 요구사안 중의 하나는 원고의 문제를 우선적으로 풀되, 나머지 피해자들, 우선 미쓰비시로 끌려간 분들에 대해서도 응분의 조치가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 이렇게 저희들의 요구사안 중에 있기는 합니다.

▶정관용> 혹시 구체적인 요구사안을 공개하기는 좀 그렇습니까? 협상 중이라서?

▷이국언> 예, 조금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만, 다만 이제 골자를 이야기하자면, 저희들은 무엇보다도 사과, 사죄가 먼저라고 생각이 듭니다.

제대로 된 사과 받는 게 협상의 제1목적

▶정관용> 그렇지요.

▷이국언> 바꿔놓고, 예를 들어서 팔순이 넘는 할머니들에게 당장 얼마의 보상금이나 배상금이 손에 쥐어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결코 80년 인생을 되돌릴 수는 없다, 라고 보고, 오히려 그 진솔한 사과, 또 그에 따른 금전적인 지불, 이렇게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정관용> 그런데 미쓰비시 측은 사과도 못하겠다는 거예요, 아니면, 액수에서 차이가 나는 겁니까?

▷이국언> 아직 사과, 사죄에 대해서도 분명한 입장을 아직 듣지를 못했습니다. 금전적인 문제는 아직 의제로 넘어가지 못한 상태입니다.

▶정관용> 그래요? 8번이나 만났는데도?

▷이국언> 예, 그렇습니다. 저는 일차적으로 미쓰비시가 진솔한 태도가 없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하겠습니다만, 아쉬운 점은 저는 정부의 무관심도...

정부는 협상 시작 후부터 무관심으로 일관

▶정관용> 우리 정부?

▷이국언> 예, 그렇습니다. 저는 한 원인이 있다고 봅니다. 뭐냐면, 우리 정부는 지금까지 1년 여 간의 이번 협상이 이루어지는 동안 단 한번도, 현재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지, 또는 협상은 어디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협상 대표는 누구이고, 쟁점은 뭐고, 요구사안은 뭐고, 지금 난제는 무엇인지에 대해서 단 한번 전화 문의 한번 받아본 적 없고.

▶정관용> 그래요?

▷이국언> 와서 설명을 해달라는 요청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면 바꿔놓고 생각해보면, 미쓰비시로서는 한국 정부마저도 이 피해 할머니들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마당에...

▶정관용> 관심도 없는데 우리가 뭐하러 나서느냐, 이거로군요?

▷이국언> 그렇지요. 껄끄러운 미쓰비시 입장에서는 굳이 나서서 머리를 숙일 이유가 있겠는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정관용> 최근에 국회와 정부가 미쓰비시 등 전범기업들의 국내 입찰을 제한하겠다, 이렇게 밝혔지 않아요? 이런 게 좀 압박이 되지 않을까요?

▷이국언> 뭐 뒤늦은 감은 있습니다만, 저는 긍정적 효과가 있으리라고 봅니다. 이제 WTO 규정에 의해서 적용대상이 되는 것은 한계는 있습니다만, 무엇보다도 한국의 국회, 정치권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 전범기업들에게는 적지 않은 압박 효과가 있으리라고 봅니다.

▶정관용> 그렇지요. 우리 강제동원과 관련된 총리실 산하 위원회도 있지 않습니까? 또 외교부도 있고요.

▷이국언> 예.

▶정관용> 그런데 어느 곳에서도 문의나 뭐 이런 게 전혀 없었다?

▷이국언> 예, 어느 곳에서도 없었고요.

대사관에서 車 한 대 내주는 게 정부역할인가?

▶정관용> 도와주는 것도 전혀 없고요?

▷이국언> 예, 없습니다. 저희가 정부에 요청을 한 것이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조금 전에 이야기했던 99엔 문제는 결코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 이것은 피해 할머니들의 문제만이 아니라 7~80만명의 우리 징용 노무자들 전체의 운명이 달려있는 문제인 만큼 외교적 현안, 의제로 삼아서 대응을 해야 한다. 정부, 일본 정부의 대응에 대해서 우리 정부 대응이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 이 요구였었고요. 그런데 그에 대한 대응이 일체 없고. 두 번째로는, 저희들이 협상을 진행하는데 다소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가능한 한 지원을 해달라, 라고 요청을 했는데, 외교통상부에서 이야기를 했던 것은 만약 일본에 도착을 하면 뭐 숙소나 협상장까지 대사관 차 한 대는 내줄 수 있다고 이야기를 했어요. 그런데 저희들이 한국 정부가 이것 차 하나를 내주는 것이 정부 역할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지요. 저희들이 차비가 없어가지고 정부에 구걸하는 것도 아니고.

▶정관용> 아니, 그러니까 지금 일본에 가서 협상하게 되면 숙소문제, 비행기값, 이 모든 걸 다 이 민간단체가 스스로 해결하는 거예요?

▷이국언> 예, 그렇습니다.

▶정관용> 그리고 철저하게 이건 미쓰비시라고 하는 민간 회사와 민간단체 간의 협상으로 그냥 떠맡겨져 있는 거고요?

▷이국언> 예, 그렇습니다. 정부에 저희가 또 요청을 했던 것이 비록 한시적이고 비상설적이나마 협의체를 가동을 시킬 필요가 있다. 정보 공유가 좀 필요하고, 또 첫 사례이니만큼, 더군다나 제1의 전범기업, 일본 굴지 기업을 상대로 하는 것인 만큼 필요한 대목이 있다, 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정부에서는 민간 협상에 오히려 방해가 되지 않겠느냐, 했는데, 그것은 뭐 미쓰비시가 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는 하되, 그걸 지레 정부가 걱정할 일이 아니지요. 결과적으로는 좀 그런 상태입니다.

▶정관용> 글쎄요. 그런데 조금 아까 제가 미쓰비시 등의 전범기업 국내 입찰 제한한다고 했습니다만, 위성 아리랑 3호 발사 용역 미쓰비시가 따내지 않았어요?

▷이국언> 예, 그렇습니다.

도와주진 못할 망정 미쓰비시에 용역 주다니

▶정관용> 그건 어떻게 된 거예요?

▷이국언> 그래서 할머니들이나 저희는 매우 안타까운데, 정부가 도와주지 못한다고 하면, 오히려 훼방을 놓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미쓰비시와 10여 년 재판, 또 패소하고 난 다음에도 정말 이 어려운 싸움을 하고 있는데, 이명박 정부 들어서 2009년도에 아소 다로 총리와 1월달에 서울에서 한일정상회담을 갖는 그 기간, 미쓰비시에 아리랑 3호 위성을 발사하도록 용역권을 줘버렸었거든요. 그러면은 피해자들을 도와주기는 커녕 오히려 전범기업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마당인데, 이 할머니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살면서...

▶정관용> 알겠습니다. 참, 더 가슴이 무너지겠군요. 몇 분 안 되는 분들 모여 계시는데, 비행기값 써가고, 숙소 마련하고, 재정적인 어려움도 크시겠네요.

▷이국언> 예, 저희들이 이제 궁여지책으로, 예를 들어서 지난 해 11월 달에 할머니들 모시고 다섯 명이 이동하는데, 한 사람당 100만원씩 들더라도 500만원 소요가 됐었거든요. 빚이 7천만원까지 넘어가자 시민들에게 차라리 우리 국민들의 힘으로 이번 협상을 돌파하자고 해서 현재 10만 희망 릴레이라고 하는 것을 진행을 하고 있습니다.

‘천원으로 동참하는 10만 희망릴레이’로 여기까지 왔다

▶정관용> 10만 희망 릴레이?

▷이국언> 예, 1인당 천원씩, 일본 정부가 내놓은 99엔 값을 차라리 국민들의 성금으로서...

▶정관용> 그렇군요.

▷이국언> 일본 정부 손을 부끄럽도록 만들고, 미쓰비시를 압박하자는 것인데, 정부는 무관심합니다만, 우리 국민들 이미 6만여 명 이상이 함께 해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국민 여러분들 믿고 열심히 하겠다는 것,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정관용> 아마 미쓰비시도 어떤 전례가 될 것이기 때문에 함부로 자기들 내키는 대로 협상이 쉽게 타결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지난한 싸움이지만, 그래도 끝까지 이걸 계속 이어간다는 것이 소중하니까요. 예,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이국언> 예, 감사합니다.

▶정관용>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이국언 사무국장, 이 모임 이름 좀 기억하시고요, 10만 희망 릴레이도 여러분 기억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월요일날 뵙지요,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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