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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퀴한 단칸방, 거미줄에 바퀴벌레까지…'최악' 외국인 노동자 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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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기획보도①]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뿐이리' (노래 즐거운 나의 집 일부) 누구에게나 편하게 쉴 수 있는 몸과 마음의 안식처인 집. 낯선 이국 땅에서 하루 종일 고군분투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숙소도 과연 따뜻한 보금자리일까. CBS는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외국인 근로자의 숙소 실태와 열악한 주거 환경에 대해 사실상 손 놓고 있는 당국의 태도를 고발한다.[편집자 주]

 

17일 낮 경기도 하남의 한 가구 공장.

실타래 돌아가는 기계 소리가 공장의 넓은 부지를 한 가득 메우고, 제작된 소파를 운반할 대형 트럭이 들락날락하고 있다.

그런 작업장을 마주한 곳에 있는 4평짜리 컨테이너. 사무실인줄 알았는데 가까이 가보니 문 틈 사이로 가득한 살림살이들이 보인다. 얼핏 봐도 단번에 고물상에서 가져온 느낌이 드는 TV와 어른 키보다도 작은 냉장고, 낡은 서랍장, 조립식 2층 침대에 아무렇게 널부러진 옷가지들. 이 공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 5명을 위해 사업주가 마련해 준 숙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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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네 주민 43살 이모씨는 "오다가다 봤는데 저기는 잘 곳이 못된다"며 "공장이 거의 매일 가동되던데 소음이 심해 어디 자겠냐"고 딱한 표정을 지었다.

외국인 근로자가 밀집한 경기도 남양주의 마석가구단지. 5년 전부터 이 곳에서 일하고 있는 몽골 출신 아리옹벌드(가명. 29)씨의 집은 단독 주택 3층 옥상에 있는 조립식 가건물에 들어가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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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봐도 불법으로 설치한 것 같은데 집주인도 있고, 한 달 방세로 무려 16만원을 내고 있다고 한다.

2명이 겨우 같이 걸어갈 수 있는 비좁고 긴 복도를 따라가면 10개의 방이 좌우로 성냥곽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다. 기숙사 복도의 천장은 인터넷 선과 TV 선도 각종 전선으로 뒤엉켜져 있었고, 방문 밖 신발 옆에는 가스통이 버티고 있었다. 복도에 형광등은 설치돼 있었지만 불이 들어오지 않았고, 곳곳에 거미줄이 걸려 있었다.

외국인 근로자들은 보통 1~3명씩 3평 남짓 단칸방에서 먹고 자고 씻는 등 기본적인 욕구를 모두 해소하고 있었으며, 통상 이 가건물을 기숙사로 부르고 있었다.

아리옹벌드 씨의 경우, 아내와 함께 사는 만큼 살림살이가 많다보니 가뜩이나 작은 방이 더 비좁았다. 방 한가운데 가로지르는 빨랫줄에 축 늘어진 티셔츠 몇장이 아리옹벌드씨의 삶을 고스란히 말해주는 것 같았다.

아리옹벌드씨는 "회사와 근로계약서를 작성할 때 월세 절반은 회사에서 부담해주기로 약속하고 얻은 집"이라며 시종일관 "괜찮다"고 말했다. 하지만 단열 공사가 안된 탓에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다"며 "방값이 아깝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아리옹벌드 씨의 집을 빠져 나와 걸어서 3분 거리에 있는 셀림(가명. 31)씨의 집도 색만 바랬을 뿐 구조는 같은 컨테이너. 2년 전 방글라데시에서 왔다는 셀림씨의 집은 문을 연 순간부터 퀴퀴한 냄새로 진동했다. 그나마 작은 창문이 하나 있긴 했지만 환기와 통풍에는 속수무책.

셀림씨는 "이 쪽방에서 3명이 함께 지내다보니 한 번씩 손님이나 친구라도 오면 서로 번갈아가며 나가서 잔다"고 했다. 셀림씨와 이야기하다 나타난 손톱만한 바퀴벌레에 셀림씨는 멋쩍어했지만 이내 "자주 나오지만 괜찮다"고 말했다.

남양주시 외국인 근로자 복지센터에 따르면 이 곳에 거주하는 외국인 근로자는 5백명 안팎이고 이 가운데 60% 정도가 무허가 컨테이너에 살고 있다.

남양주시 외국인 근로자 복지센터 이주민 복지사업부 조은우 팀장은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해 원룸을 내주는 사업장은 극히 드물다"며 "방값 지원을 해주는 사업주도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외국인 근로자들을 열악한 집으로 내몰고 있는 꼴이다"고 말했다.

또 "무허가 컨테이너 거주비로 꼬박꼬박 세를 받고 있는 집주인들은 있지만 보수 관리는 전혀 하지 않고 있다"며 "외국인 근로자들은 이에 대해 잘 모르거나 수리 요청을 해도 간과돼 세입자로서 권리도 박탈된 실정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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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옹벌드씨와 셀림씨의 집을 빠져 나와 다시 한번 동네를 둘러보니 TV 드라마 속에서 묘사됐던 70년대 쪽방촌이 떠올랐다.

1부터 10까지 붉은 숫자가 방문 마다 적혀 있고, 골목길에는 반지하부터 옥상까지 띄엄띄엄 희미한 불빛이 수를 놓았다.

난간에 걸터 앉은 채 고향 노래를 듣고 있는 외국인근로자의 노고를 풀어주는 건 동네 개와 고양이들뿐이었다.

이 곳 외국인 근로자들은 신발, 침대 스프링, 가구 공장 등에서 하루 종일 톱밥과 분진, 페인트, 시너의 독성에 시달렸지만 비좁더라도 깨끗이 씻고 편히 쉴 수 있는 '즐거운 나의 집'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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