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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독립운동가' 번번히 유공자 탈락…유족들 불만 팽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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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건국동맹 일원이었던 황운 선생, 죽산 조봉암 선생 등 줄줄이 탈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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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 독립운동을 한 인사들 가운데 사회주의 노선을 걸었던 이들이 독립유공자 선정 과정에서 줄줄이 탈락하면서 심사 잣대가 불공정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또 일제 때 만들어진 사료(史料)를 심사 기준으로 삼는 것도 타당치 않다는 비판이 나온다.

몽양 여운형 선생을 중심으로 1944년 8월 10일 조직된 '조선건국동맹'에 참가한 조동호, 현우현, 이석구, 김진우 등과 더불어 핵심 일원이었던 황운(黃雲).

황운 선생은 1945년 5월 경인지구 군수품 공장 비밀지도를 입수해 연합군 제공 목적으로 여운형 위원장에게 전달하는 등 이 비밀결사 조직의 외무 위원으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유족들은 지난해 10월 국가보훈처에 독립유공자 선정을 신청하고 관련 사진 및 서류 자료 등을 보훈처에 제출했지만, 지난 11일 '탈락' 통보를 받았다.

국가보훈처가 지난달 31일 공개한 7월 심사현황에 따르면 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지원대상 51건 가운데 심사완료 된 32건 중 비해당 3건에 황운 선생도 포함됐다.

유족 측은 보훈처가 내세우는 이유가 타당하지 않다며 반발하고 있다.

황운 선생의 며느리 이종년(61)씨는 "서대문형무소에서 독립운동으로 복역한 사실이 확실한데 기소유예 받고 3개월 만에 풀려났다는 이유 만으로 증거가 불충분하다 한다"고 비판했다.

이씨는 서대문형무소에 황운 선생의 얼굴이 담긴 사진이 게재돼 있고, 여운형 선생의 구술을 기록한 책, 조선건국동맹터 기념비, 건국동맹 위원 명단 등에 이름이 명시된 점 등이 무엇보다 확실한 '독립운동의 증거'라고 강조했다.

보훈처 측이 유족들에게 보낸 '2011년도 광복절계기 독립유공자 공적심사결과 안내'에는 '적극적인 독립운동 참여 여부 불분명'이라고 불포함 사유가 적혀 있다.

보훈처 관계자는 "1차적으로 인정하는 기록들은 1945년 이전 기록인데 1937년에 복역하다 기소유예로 풀려난 기록 외에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 이것 만을 직접적인 증거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해방 직전까지 사회주의 계열 노선을 걷다 해방 이후 공산당과 결별한 죽산 조봉암 선생의 경우도 일제 때 행적을 이유로 이번 독립유공자 선정에서 제외됐다.

유족 측은 "지난 1월 대법원에서 정치적 사형이었다는 점을 인정하는 차원의 무죄 판결까지 받았는데도 확실한 증거 없이 제외됐다고 들었다"며 황당해 했다.

이어 "아직 (탈락 통보) 공문을 받지 않아 입장 표명이 조심스럽지만 가만히 있을 일은 아닌 것 같다"며 "가족간 협의를 거쳐 추후 입장을 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회주의 계열 인사들의 잇단 탈락 소식에, 일각에서는 현 정부 들어 사회주의 노선을 것던 인사들을 독립유공자로 선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한 유공자 단체 관계자는 "노무현 정부 때 사회주의계열을 대대적으로 서훈해 준 적이 있지만, 현 정부 들어서는 자꾸 이렇다할 핑계를 들어 탈락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또 "조봉암 선생처럼 응당 독립유공자로 선정해야 할 분들이 되지 않는 건 정말 어이없다. 이렇게 해서 2만 명 가량이 적체돼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보훈처 측은 김영삼 정부 이후부터는 이들에 대해 해방 이후 북한과 관련이 없다는 전제하에 독립유공자로 서훈하고 있다며 사회주주계열 독립운동가를 유공자로 인정하는 데 소극적이라는 비판은 말이 안된다는 입장이다.

보훈처 관계자는 "독립운동을 한 사실을 토대로 공적을 판단하는 것이지 다른 뜻으로 구분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며 "그런 식이라면 정권이 매번 바뀌는데 공직에서 어떻게 일하겠냐"고 반박했다.

하지만 보훈처가 내세우는 심사 '자료'라는 것이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에 의해 작성된 재판 기록에 한정되는 등 한계가 있는 점도 문제점으로 꼽혔다.

보훈처는 독립운동 사실을 입증할 만한 당시 재판 기록 등을 심사 참고 자료로 활용하고 있지만, 전문성이 부족한 유족들이 확보해 제출하는 자료인데다 일본인들이 작성한 '일제 잔재 기록'에 의존하는 것이 타당하냐는 지적이 나온다.

한 유족 단체 관계자는 "해방이 된 이후에도 여전히 일본인들에게 서훈이 달려 있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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