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억원에 이르는 학부모들의 불법 찬조금이 모금됐다는 고발 사건이 서울광진경찰서에 접수된 건 지난 4월.
경찰은 제출된 증거들이 매우 구체적이어서 수사가 쉽게 끝날 걸로 봤다. 하지만 학부모들이 경찰 소환에 불응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학부모들의 계좌를 추적해서 찬조금의 모금 과정과 규모를 확인하려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검찰이 발목을 잡았다.
경찰 수사를 지휘하던 서울동부지검이 경찰이 신청한 네 차례의 계좌추적 영장 신청을 모두 반려한 것이다. 검찰은 "참고인 자격인 학부모들의 계좌를 압수수색하는 건 과잉수사"라는 이유를 제시했다
당시의 상황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다리만 건너면 바로 목적지가 보이는데 수문장이 다리의 문을 걸어 잠그니 손을 쓸 수 있겠냐"며 참담함을 나타냈다.
경찰 수사가 5개월째 접어들던 지난 9월 1일, 급기야 검찰이 사건을 송치할 것을 명령했다. 검찰에서 '보강 수사'를 하겠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면서 5개월가량 진행된 경찰의 수사에 대해 '기소' 혹은 '불기소' 의견을 달지 말고 '무의견'으로 송치하라고 명령했다.
경찰이 수사한 내용을 의견 없이 검찰에 송치하는 일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당시 경찰은 학교 교장과 이사장에 대해 찬조금을 집행한 만큼 찬조금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으니 배임 혐의로 기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었다.
검찰이 "사건 전체를 처음부터 다시 철저하게 수사할 계획"이라며 사건을 넘겨받은 지 2개월이 지난 현재 수사는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다.
그러는 사이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았던 교장과 퇴임했던 이사장은 슬그머니 현직으로 복귀했다.
그러자 참다못한 학부모들이 일어섰다. 참교육학부모연대 등은 지난 27일 "사정당국이 진정으로 교육 비리를 척결할 의사가 있는지 의심하게 하는 상황"이라며 비난했다.
경찰은 매우 억울한 표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법조계 고위층 가운데 대원외고 학부모들이 적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다"며 "결국 학부모들이 뒤에서 수사를 지휘한 셈"이라며 불쾌한 심사를 감추지 않았다.
다른 경찰관은 "경찰이 검찰의 지휘를 받는 한 이런 문제는 언제든지 재발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검찰대로 할 말이 많은 것 같다.
서울동부지검 관계자는 "경찰로부터 사건을 송치 받을 당시 의견 없음으로 보내라고 한 것도 수사가 다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기소·불기소를 결정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대응했다.
검찰은 또 수사가 지지부진한 이유가 법조계에 포진한 대원외고 학부모 때문이라는 의혹에 대해서도 "일방적인 시각"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러는 사이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이 경찰의 수사권 독립 논쟁을 지피는 불쏘시개가 될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내놓고 있어 그 향배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