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아톤' 배형진 군 18번은 '웃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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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10-12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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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한성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 영화 '말아톤' 주인공 배형진 군의 어머니, 박미경 씨

‘초원이 다리는 백만 불짜리 다리’, ‘비가 주룩주룩 와요’ 등 수많은 유행어를 남겼던 영화 <말아톤>의 주인공 배형진 군은, 자폐증이 있는 정신지체 장애인입니다.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도통 나오지 못하고 있던 그를 장애를 딛고 마라톤을 통해 세상 밖으로 이끌어 준 것은 바로 어머니 박미경 씨였습니다.

2001년 춘천마라톤대회에 출전하여 42.195km를 완주하고 2002년에 철인3종 경기까지 달성한 그의 등 뒤에는 세상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인 어머니가 늘 계셨습니다.

언제나 아들보다 더 먼 길을 달려야 했던 사람. 남들로부터 계모가 아니냐는 따가운 시선에 시달려야 했지만 아들의 달리기를 절대 포기할 수 없었던 사람.

지금도 세상 어딘가 형진이와 같은 조건의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희망의 등불을 나눠주고 있는 어머니 박미경 씨를 10월 11일 CBS 배한성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표준FM 98.1Mhz 월~토 오후 4시 5분)에서 만나봤습니다.

◇ ‘말아톤’ 영화 이후 장애아동들에게 더욱 사명감 느끼게 돼

 

▶ 뭐니뭐니 해도 어머니가 건강하셔야 할 텐데요. 건강은 어떠세요?

그래도 영화 이후에 정신적으로는 더 많이 건강해진 것 같아요. 그 전에는 너무 아이 운동하는 데에 집착하고 목숨 걸고 하다보니 몸과 마음이 너무 많이 지쳐 있었고, 정신적으로도 많이 피폐해 있었거든요. 근데 지금은 정신적으로 여유가 있어진 것 같아요.

▶ 어떤 때 그렇게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것을 느끼셨어요?

제가 살면서 꽃을 보고도 아름답다고 느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만큼 치열하게 아이의 문제행동을 잡아주고자 하는 노력에만 급급했지 저 자신한테는 전혀 눈을 돌려보지 못했던 부분인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우울증까지 와서 2년 정도 치료를 받았어요.

▶ 어머니가 병원에 다니는 것을 형진이는 어떻게 보던가요?

엄마하고는 무언의 대화가 통하니까 그래도 제가 아프면 형진이는 우리 엄마 안 아프게 해달라고 기도를 해요. 그 때 제가 또 힘을 얻죠. 이렇게 천사같은 아이 앞에서 제가 조금이라도 흔들리는 마음이 있었다면 또 그런 시간에 다시 다잡게 되죠.

▶ 요즘 강연 많이 다니시죠?

네. 우선 특수교육에 관련된 분들이나 부모님, 또는 다른 데도 많이 다녔죠.

▶ 강연하시면서 항상 마지막에 결론짓는 메시지는 뭘까요?

형진이 같은 모든 장애인들이 사람 대접을 받으면서 복지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제일 큰 바램이죠.

▶ 어떻게 보면 사회적으로 그런 것을 형진이 어머니가 처음 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힘든 점도 많으시겠어요?

사람들에게 비쳐질 때는 그냥 좋은 모습만 비춰질지 모르지만 형진이와 저는 실은 고통스러운 부분이 너무나 많거든요. 그런데 제가 ‘말아톤’ 영화 이후에 점점 더 사명감이 생기더라고요. 장애인들을 위한 일이라면 또 형진이가 나서서 무슨 일을 해야 된다면 그 일을 우선적으로 해야 되겠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예전에는 운동을 1순위로 두었다면, 지금은 그런 일을 하는데 1순위를 두고 직장생활을 하는데 우선순위를 두고 있죠.

▶ 요즘은 거리 다니시다보면 싸인 해달라거나 같이 사진찍자고 하시는 분들도 많으시죠?

저보다는 제 아들과 항상 같이 다니니까 제 아들한테 그런 제의가 많이 오는데, 일반 사람들은 그런 것을 나름대로 즐길 수가 있잖아요? 저도 형진이가 그것을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을 했었는데 즐긴다는 것이 힘든 것 같더라고요.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형진이 같은 장애 아이들은 스트레스를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 아주 작더라고요. 계속 컨트롤을 해줘요. ‘사람들이 이러는 건 네가 운동도 열심히 잘 하고 직장 생활도 잘 하고 어른들 만나도 인사 잘 하고 네가 행동을 잘 하니까 사람들이 좋아하는 거다. 그러니까 너는 이것을 사람들에게 기쁘게 해야 한다’고 항상 설명을 해주죠.

▶ 배형진 군이 나이가 올해 몇이죠?

25살이에요.

▶ 그러면 장가가고 싶다고 하지 않나요?

어렸을 때 자기가 생각했던 짝꿍이 있었나봐요. 그 이름을 지금도 생각하고 얘기를 하는데 저는 누군지 전혀 기억을 못하거든요. 서로 커뮤니케이션이 되고 감정 교류가 되는 사람이어야 할 것 같은데, 엄마 같은 사람이 있을까요?(웃음)

▶ ‘말아톤’이라는 영화를 통해서 형진 군 뿐만 아니라 어머니도 많은 것이 달라지셨죠? 처음 영화화 하겠다는 제의가 들어왔을 때는 어떠셨는지요?

제가 막연히 아들을 키우면서 사회와 부딪치는 벽, 또 제가 가정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었기 때문에 아이를 교육 시키려고 해도 경제적인 부분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제 몸으로 다 뛰어야 했었거든요. 그래서 그 때 막연하게 ‘이렇게 외모상 멀쩡하게 잘 생긴 아이들도 장애인이 있다는 것을 다른 누군가가 알려줬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막상 영화를 하겠다고 연락이 왔을 때는 망설였어요. 알려지는 부분은 좋기는 하겠지만, 저의 치부가 다 들어나고 그 전에는 자존심 상해서 이야기 하지 않았던 부분도 다 얘기해야 하는 상황이 되잖아요. 그래도 그 때 제가 생각한 것이 내가 해서 조금이라도 알려질 수만 있다면 하자고 생각했죠.

▶ 결과적으로 보면 참 잘했다는 생각하시죠?

네. 그 때는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었는데요. 왜냐하면 제가 인생을 살면서 아이를 키우면서 욕심 부렸던 대로 된 것이 아무것도 없었거든요. 그랬기 때문에 그 영화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인터뷰를 하거나 그럴 때 저의 솔직하고 절절한 염원을 담아서 했었죠. 그래서 그런 개인적인 한 사람의 삶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모여서 ‘말아톤’ 영화가 된 것 같아요.

▶ 영화가 사실과는 다르게 그려져서 섭섭하거나 했던 것은 없으셨죠?

김미숙 씨가 하는 대사 하나하나는 저의 일상적인 모습을 압축시킨 것으로 보면 되시고요, 그런데 저와 같은 장애아를 둔 부모님들은 실제보다 많이 부족하다고 말씀하시기도 해요. 그리고 그 영화에 코치분이 나오시는데요, 형진이는 개인적인 코치는 따로 없었어요. 여러 분들이 조금씩 다 도와 주셨기 때문에 그 코치부분만 복합적인 인물이고 나머지 부분은 다 사실 그대로이죠.

▶ 아까 말씀하시면서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부분을 ‘치부’라고 하셨는데, 어머니는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제가 당당하지 못할 것은 없었지만 너무나 자존심 상하는 부분들이 많았기 때문에요. 제가 10년간 월세를 살았어요. 그렇게 경제적으로도 어렵고 남편이 하는 일이 잘 되지 않다 보니까 지금은 이렇게 자신있게 얘기하지만 그 때는 아들은 장애인이고 남편 일은 되지 않고 이렇게 지하 월세에서 살다보니까 너무나 다른 사람한테 얘기하지 못하고 위축되어 있었던 것도 있죠.

◇ 네 살 무렵 처음 ‘자폐증’ 판정 받아

▶ 아들 둘을 두셨죠?

네. 아들이 둘인데, 형진이 동생이 있어요. 지금 대학교 4학년이에요.

▶ 지금 아버지는 하시는 일이 어떠세요?

지금도 그 전과 비슷한데요. ‘말아톤’ 영화가 다른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고 하기 이전에 우리 가정 개개인의 아픔인 남편은 남편으로서의 자기의 역할, 작은 아들은 작은 아들로서의 그 각자의 자리에서 너무 묵묵히 잘 참아냈다는 것이 ‘말아톤’ 영화로 승화된 것 같아서 가족들도 지금은 너무 많이 감사해 하고 잘 지내고 있어요.

▶ 형진군은 지금도 계속 마라톤을 하나요? 호주 시드니 대회에 참가한 것이 지난달이었나요?

네. 지난 9월 20일에 호주를 가서 장애인 여러 분들과 함께 뛰었어요.

▶ 현지에서 많이 알아보는 분들이 계시지 않았나요?

그 곳에 사는 교민분들이 인터뷰를 오셨더라고요. 그래서 아들 덕분에 제가 해외를 다녀볼 수 있어서 너무나 감사하죠.

▶ 첫 아이로서 남다른 기대도 많았을 텐데, 처음부터 병원에서 자폐를 겸한 정서 장애 판정을 받은 겁니까?

아이가 태어났을 때는 지금보다도 외모가 더 잘 생기고 너무나 귀티나게 생겼었어요. 그래서 저는 ‘너무나 잘 생긴 아들을 낳았구나.’ 생각을 했었어요. 보여지는 장애가 나타났다면 금방 느꼈을 텐데 그 때는 전혀 몰랐죠. 그리고 지금부터 25년 전이니까 지금처럼 많은 정보가 없었어요. 그래서 병원에서 진찰을 받을 때까지 제가 장애아를 낳을 거라는 상상은 전혀 하지 못했어요.

▶ 그럼 장애아라는 것이 밝혀진 것은 몇 살 때인가요?

세 살 무렵 말을 하지 않고 네 살 때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진단을 받고 그렇게 판단을 하시더라고요.

▶ 어떤 것 때문에 의문을 가지셨어요?

말을 전혀 하지 않았고요. 그 때는 제가 첫 아이다보니 돌발적인 행동이 나타나도 왜 그런지를 몰랐죠. 근데 자기 의견이 관철되지 않으면 땅에 구른다거나 하는 행동들을 너무나 많이 했었고, 개념이 없으니까 슈퍼에 가서도 그냥 물건을 갖고 나오고 하는 행동들을 보고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진찰을 받아 본거죠.

▶ 장애 판정을 처음 받았을 때 엄마로서의 느낌은 어떠셨어요?

느낌이 전혀 없었어요. 의사 선생님께서 “그냥 열심히 하면 됩니다.”라고 하셨기 때문에 저는 제가 열심히 최선을 다해주면 아이가 장애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때 만약에 선생님께서 평생을 가는 장애라고 했다면 저는 미리 포기를 했을지도 모르죠.그냥 열심히만 하면 벗어나게 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키우면서 점점 제가 아니다 라는 것을 느낀 거죠.

제가 열심히 앞만 보며 아이 교육에 매달려 왔는데 어느 날 아이를 돌아보니 사회성 부분은 조금 좋아졌을지 몰라도 나머지 부분은 원점인 상태 그대로인거예요. 행동적인 부분은 많이 교정이 되고 같이 다녀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변했지만, 어떤 돌발적인 문제가 일어났을 때 스스로의 혼자 대처능력이 안되니까 누군가 보호자가 있어줘야 하니까 평생 누군가가 있어줘야 하는 거죠.

▶ 그럼 ‘앞으로 많이 좋아져서 사회생활도 하고 행복한 가정도 꾸리는 데 문제가 없겠지.’ 라는 생각은 힘든 일인가요?

그건 사람들이 좋은 면만 보고 싶어 하니까 그런 것일 수도 있고요. 실질적으로 이렇게 같이 부딪쳐서 사는 가족은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교육을 시키지만 그렇게 획기적으로 달라지지 않는다는 거죠.

 


◇ 아이의 돌발적인 행동을 잡아주기 위해 운동 시작

▶ 그 25년 동안 여러 가지 치료법이나 민간요법, 치료제 등에 대한 제의도 많았을 텐데요?

어릴 때는 어떤 분이 아이한테 서각을 먹이면 좋다고 하더라고요. ‘서각’이라는 것이 한약재의 일종인데, 나중에 알고 보니 피를 통하게 하는 약재인가 봐요. 저는 잘 몰랐는데 그 때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많이 비싼 약재였지만 그걸 먹였어요. 보통 부모들은 우리 아이가 좋아질 수만 있다면 다 해주고 싶어 하는데 그걸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죠.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것은 약이 아니라 관심과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길러보니까 관심과 사랑만이 아이가 자신감있게 사람들 앞에 나설 수 있는 것이지 아직까지 특별한 약은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외국에서 약을 개발한다고 하면 어떤 부모님들은 아이를 실험대상이라도 좋으니까 먹여야겠다 하는 경우도 있는데 아직 개발된 것은 없어요.

▶ 그래도 어머니는 기적이 일어나리라는 기대를 가지고는 계시죠?

어렸을 때는 참 많이 그런 기대도 했었어요. 아이가 순간적으로 확 변했으면 좋겠다고 말이죠. 그런데 계속 지내오다 보니까 정말 좋은 약이 개발돼서 그 약을 먹이면 좋아질 수 있다는 경우가 아닌 이상은 지금은 없거든요. 그래서 실생활에서 아이가 행복하며 살아갈 수 있게,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나름대로 운동도 하고 즐거움을 찾을 수 있게 제 2의 도전을 위해서 하려고 지금 준비중이예요.

▶ 지금도 직장생활 하고 있죠?

아니요. ‘말아톤’ 영화가 나오기 이전인 2003년부터 4년 정도 직장생활을 했거든요. 제가 아이를 키우면서 궁극적으로 목표를 세웠던 부분이 단순한 일이라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었어요. 그 과정에 운동을 하면서 아이가 문제 행동을 줄이는 것을 보이다 보니까 제가 운동에 집착하게 된 것이고요. 목적은 단순한 일이라도 할 수 있게 만들자 해서 직장생활을 했는데, 아직 우리나라의 제도적인 문제라든지 고용의 문제라든지 여러 가지 복합적인 문제가 있어서 5월 달에 그만 뒀어요. 지금은 집에서 쉬고 있어요.

▶ 사회성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직장생활이 꼭 필요할 텐데요.

그렇죠. 그래서 다음 주부터는 제가 같이 아이와 함께 배우면서 일할 수 있는 곳을 추진중이예요. ‘말아톤’ 영화 이후에 ‘말아톤 복지재단’이 생겼어요. 그래서 그 재단에서 ‘희망일터 만들기 프로젝트’라고 그 전부터 시작을 했었는데 형진이가 홍보대사 역할을 해야 되니까 홍보대사만 하려고 하다가 저도 같이 난을 키우는 농장에서 형진이와 같이 배우면서 일을 하게 될 예정이에요. 잘 되어야 형진이 후배 아이들한테도 그런 기회가 많이 생길 것 같아요.

▶ 혹시 형진이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자꾸 이용만 하려고 한다는 그런 피해의식은 없으셨는지요?

제가 성격적으로 복잡한 것을 많이 힘들어 해서 아닌 부분은 빨리 빨리 정리를 하는 편이예요. 형진이한테 아무 의미도 없고 ‘이 부분은 아니다’ 싶은 부분을 사람들이 형진이한테 요구를 할 때는 저는 거절을 해요. 그래서 제가 생각하기에는 나쁜 일은 많이 없었던 것 같아요.

▶ 형진이한테 운동을 시켰던 이유는 어떤 겁니까?

어릴 때는 아이의 머리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면 공부를 시켜야 하지 않을까 해서 나름대로 공부를 시키려고 앉혀봤는데 앉아 있는 것조차 안돼요. 그러다 보면 아이를 때리게 되잖아요. 저는 나름대로 설명을 하면서 아이를 앉혀 보려고 하는데 아이는 행동이 안되니까요. 그런 것을 계속 반복을 하다가 이건 아니다 라고 느끼게 돼서 밖에 데리고 나가 운동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게 되었죠.

아이가 그냥 있는 상태에서는 괴성을 지른다거나 혼자 웃는다든가 정신없이 왔다갔다 하는 행동을 계속 하니까 그걸 보고 있는 부모로서는 너무나 괴로운 거예요. 그래서 그런 행동을 잡아줄 수 있는 것이 뭐가 없을까 고민을 했죠. 그 때 제가 30대였는데 그 때 생각한 것이 10년 후에도 아이가 계속 이런 모습으로 있다는 것이 너무나 끔찍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러면 학습적인 부분은 접자고 해서 그 때부터 아이에게 안 되는 것은 빨리 빨리 접고 비우게 되었죠. 그렇게 해서 아이가 혼자 있는 시간을 만들지 않고 운동을 하다보니까 점점 그 운동의 강도도 세지고 시간도 많아지고요. 운동을 할 때는 거의 등산을 두 세 시간 하고, 수영도 한 시간 하고 거의 하루에 여섯 시간을 했던 것 같아요.

▶ 언뜻 ‘포레스트 검프’ 라는 영화가 생각나는데요. 혹시 어머니가 그 영화를 보시고 마라톤을 시켜야겠다 하신 것은 아닌가요?

그건 아니고요. 제가 아이한테 주입시킨 것은 단순한 것이었지 복잡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거의 10년간을 운동 하면서 장애인 수영대회에도 나가서 메달을 받고 달리기 대회도 나가고 한 이후에 가정적으로 어려워져서 지하 월세로 이사를 가게 되었어요. 형진이가 초등학교 2-3학년 무렵이었는데, 남편은 너무나 힘들어 하고 저도 숨이 막혀 죽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돌파구가 없을까, 우리 가정에 뭔가 힘이 되는 일이 없을까 고민 끝에 영화에서 아이가 100바퀴를 뛰는 장면이 있어요. 제가 아이의 상태를 실험해 보려고 아이를 운동장에 데려 가서 한 바퀴, 두 바퀴 뛰게 했어요. 저는 바닥에다가 ‘바를 정(正)’자를 긋고 아이는 힘들어서 못 하겠다는 표현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제가 아이의 얼굴 상태를 보고 더 뛰게 할 것인가 멈출 것인가를 결정해야 했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한 시간이 지나고, 100바퀴 넘게 뛰었는데도 아이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어요. 그래서 ‘그럼 마라톤에 도전을 해야겠구나. 한 번 도전해보자.’ 해서 시작하게 된 거죠.

▶ 아이에게 너무 혹사 시킨 것은 아닌가요?

제가 만약에 기댈 곳이 있었다면, 남편이 경제적으로 저를 여유있게 해주고 아이의 장래에 돈이라도 물려 줄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면 그렇게 거기에 매달리지는 않았겠죠. 그런데 저는 그런 것도 안 되다보니까 이 아이를 홀로 서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었어요.

제가 만약에 없더라도 아이가 사람들에게 피해 주지 않으면서 조그만 일이나 역할이라도 할 수 있게 만들어놔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다 보니까 너무 많이 혹사를 시키게 된 거죠.

◇ 등산을 통해 몸의 균형을 잡는 능력이 많이 좋아져

▶ 교육도 중요하기 때문에 특수학교를 보내는 경우도 많은데, 어머님은 어떻게 하셨나요?

저도 용인에서 일반학교를 2학년까지 보내다가 형진이한테 맞는 특수학교가 생긴다고 해서 3학년부터 서울로 이사 와서 보냈죠. 저는 학교를 그 때 옮긴 것을 잘했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일반학교를 제가 계속 고집을 했었다면 아이가 정서적으로 더 힘들어졌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 아이와 같은 장애아들이 표현은 하지 못하지만 감성적으로 느끼는 것은 일반 사람들보다 백 배, 이백 배 더 빠르게 느끼는 것 같아요. 제가 깜짝 놀란 것이 사람의 마음을 꿰뚫고 있다는 것을 어느 순간 느꼈어요. 형진이 같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사람은 진짜 좋은 사람이라고 제 나름대로 결론을 냈어요.

그러니까 표현을 하지 못했을 뿐이지 진짜 상대방이 나를 진심으로 대하고 있다는 것을 그 아이들은 우리보다 더 빨리 느낀다는 거예요.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은 그 아이들은 느끼는 것 같아요.

일반학교에 다닐 때는 제가 항상 의자 옆에 앉아 있었어요. 그런데 특수학교에 다니면서 뒤에 있는 애가 형진이를 때렸는데 그 전에는 표현을 하지 못했던 아이가 그 때는 막 우는 거예요. 왜 우냐고 했더니 어떤 아이 이름을 대면서 자기를 때렸다고 불완전하게 단어를 말하면 제가 짜깁기 식으로 이해를 했죠.

그렇게 키우면서 제가 느낀 것이 아이에게 함부로 하면 안된다, 기독교를 믿으시는 분이라면 하나님이라고 생각을 해야 하고, 불교를 믿으시는 분이라면 부처님이라고 생각해야 된다고 느꼈어요. 처음엔 저도 함부로 대한 적도 많았는데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이러면 안되겠구나 느끼게 되더라고요. 아이가 제 스승인거죠.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좋은 모습이 비춰질 수 있는 것은 제 아들 덕분인 것 같아요.

▶ 어머니도 힘든 순간도 많겠지만 행복하고 좋으실 때도 많으시죠?

그렇죠.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저런 아이 데리고 뭐가 행복할까?’ 싶으실 지도 모르지만 나름대로 주변에 보면 아이를 통해서 행복해 하고 감사해 하시는 분들이 너무나 많아요. 제가 생각할 때는 일단 그 영화가 복합적인 의미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현재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너무나 많은 것을 갖으려고 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영화를 보면서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니까 나름대로 그 영화를 통해서 사람들마다 다 감정들이 틀린 것 같더라고요.

▶ 지금도 등산 계속 하고 있나요?

제. 등산은 어릴 때부터 제일 선택을 잘 한 것 중에 하나거든요. 아이가 문제 행동이 많았을 때는 겨울 산행을 하게 되면 제가 밑에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미끄러운데 올라갈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하다가 다시 올라가면, 제 생각에는 이 아이가 미끄러워서 넘어질 것 같은데 나름대로 나무를 잡고 중심을 잡더라고요. 몸의 균형을 잡기가 힘든데 나름대로 그렇게 중심을 잡으면서 올라가면 땀에 흠뻑 젖더라고요.

저는 그런 효과를 너무 많이 본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더 욕심을 내서 나중에는 맨발로 산행도 시켰어요. 제가 생각할 때는 발바닥에 자극을 주면 머리에도 영향을 주지 않을까 해서 했는데, 그 때는 제가 너무 무리한 것을 시킨 것 같아요.

▶ 혹시 형진이를 홀로 독립적으로 두신 적은 없으세요?

그랬던 적은 학교에서 캠프를 간다거나 하는 일 외에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인 것 같아요.

▶ 그렇게 홀로 있을 때는 어떻다고 그래요?

엄마하고 떨어져 있어본 적이 없으니까 아이가 너무 많이 자기가 어떤 일을 해야할지를 모르더라고요. 자기가 자발적으로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그런 부분도 지금 많이 시키려고 하고 있어요. 계속 엄마와 같이 활동을 하다보니까 그런 부분이 많이 안돼죠.

그래서 남편이 저한테 아이가 완전히 로봇화됐다고 비난을 한 적도 있어요. 제가 나름대로는 이것이 최선은 아니라는 생각은 했었어요. 그것이 차선이라고 생각을 하고 한 것이었는데 그런 문제점도 있더라고요.

▶ 이런 특수교육을 가정에만 맡기는 것은 힘든 점이 많은데, 교육기관이나 선생님들이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부분은 없던가요?

아직까지는 이런 발달장애 자폐아동들의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 국가적인 제도적으로 안 되어 있어서요. 선생님이 함께 병행을 해주고 한다면 정말 좋겠죠. 그런데 아직까지는 그런 것이 개인적인 몫인 거죠.

만약에 개인선생님을 두어야 한다면 그런 비용을 그 가정에서 부담을 해야 되니까 그런 부분이 너무나 많이 어렵고요. 그리고, 특수학교에 계신 선생님들조차도 그 아이들이 아무리 교육을 해도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많이 지치고 힘들어 하죠.

▶ 제도적으로 잘 되어 있는 나라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제가 작년에 일본에 갈 기회가 있어서요. 형진이와 같은 아이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기관을 돌아본 적이 있는데요. 일본은 선진국이다보니 그런 부분이 아주 잘 되어 있더라고요. 우리나라는 영화로 알려졌을 뿐이지 근본적으로 제도적인 문제는 전무한 상태이지만, 일본은 그런 부분이 부모, 전문가, 국회의원 분들이 체계적으로 해서 준비는 다 되어 있는 상태더라고요. 그래서 참 많이 부러웠어요.

▶ 같은 입장의 어머니들끼리 동병상련으로 정보도 나누고 하는 모임은 우리나라도 되어 있지 않나요?

말아톤 복지재단이 생기면서 ‘자폐인 사랑협회’라고 새로 생겼어요. 부모와 전문가들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은 생겼는데 앞으로 해야 될 일들이 많이 있죠.

◇ 형진이는 ‘웃어요’ 라는 노래를 잘 불러요.

▶ ‘말아톤’을 보면 기록을 하시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일기를 쓰신 건가요?

제가 성격적으로 무엇을 하면 다 메모를 해놔요. 오늘 하루의 일과에 대해서 기억력이 없어서 그런 경우도 있지만 형진이가 해야 될 일을 빠뜨릴 경우에 대비해서 다 메모를 해두죠.

▶ 그럼 형진이가 ‘엄마가 저렇게 애쓰고 있구나’ 라고 느끼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은 드세요?

그 부분은 통하는 것 같아요. 제가 항상 행복해야 된다는 이유가 제가 행복해야 형진이도 행복하더라고요. 제가 만약에 우울한 기분을 갖고 있거나 어디가 아플 때 “엄마, 어디 아파?” 하고 물어봐요. 그러면서 자기가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하더라고요. 그런 걸 보면 제 마음이 통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항상 제 머릿속으로 좋은 생각을 하고 좋은 말, 좋은 행동을 해야 형진이가 보고 배운다는 생각이 들어요.

야단을 치거나 한 적도 많이 있는데, 그러면 아이가 너무 많이 불안해 하니까 제가 혼자 삭혀야 하는 경우도 많았어요. 그래서 어느 순간에는 가슴이 막막하고 숨이 막힐 것 같은 경우도 있죠. 제가 조절을 하는데도 순간순간 그럴 때가 있어요.

▶ 형진이가 제일 관심 있어 하는 것은 어떤 건가요?

우선 노래하는 것을 좋아해요. 요즘 노래보다는 엄마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더 좋아해요. 노래방도 많이 가요. 왜냐하면 제가 어릴 때부터 말이 잘 안되니까 언어치료 삼아 동요를 불러주고 노래방을 데려가고 했거든요. 나름대로 그렇게 하다보니까 나름대로 음감이 있어서 노래를 잘 해요. 조용필 씨 노래를 좋아하고, 이문세 씨 노래도 좋아해요.

그런데 제가 그 노래를 많이 좋아했던 것도 아닌데 한 번 자기가 들어서 느낌이 좋다 싶은 노래를 노래방에 가서 하더라고요. 요즘에는 오석준의 ‘웃어요’라는 노래를 좋아하는데, 제가 그 노래를 들려준 적이 없는데 그 노래를 좋아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노래 가사를 보니까 너무나 의미가 있더라고요. 좋아하는 노래들이 다 가사에 의미가 있는 것을 보면 참 풀 수 없는 수수께끼다 싶은 생각이 들어요.

▶ 형진이가 좋아하는 연예인은 누가 있나요?

조승우 씨 좋아하고, 송일국 씨 좋아하고, 조용필 씨를 좋아해요. 여자 보다는 남자 연예인을 더 좋아하더라고요.

▶ 이성에 대한 관심도 있을 것 같은데, 다른가요?

그런 부분은 더 빠르다는 얘기는 들었어요. 어느 날 전철을 타고 가는데 예쁜 여자를 좋아하더라고요. 아이의 눈을 보니까 스타킹을 신은 예쁜 여자의 다리를 보고 있더라고요. 또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예쁘게 차려입은 여자를 보고 처음 보는데도 “어디 가요?” 라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 ‘아, 이 아이도 예쁜 사람에게 관심이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 물론 그 상대방이 “왜 물어봐?” 그러지는 않았겠죠?

그래도 워낙 형진이를 알아보는 분들이 많으셔서요. 만약에 모르는 상태에서 그런 행동을 한다면 무안을 주거나 할 텐데 어느 정도 사람들이 많이 아시니까 친근하게 대해 주세요.

◇ 힘들 때마다 아이와 함께 “백만불 짜리 다리, 몸매는 끝내줘요.” 외친 것이 긍정의 힘 된 것 같아

▶ 아버지나 형진이 동생도 같은 가족인데 얼마나 많이 힘들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제가 결과론적으로는 사람들에게 알려져서 좋은 부분이 결과로 나왔으니까 다행이지만 제가 아이에게 그렇게 집착을 해서 교육을 시킨 부분은 실은 잘한 것이 아니예요. 왜냐하면 다른 가족은 각자 알아서 해야 했고 다 소외됐으니까요. 그러다보니까 각자가 다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거예요.

그래서 아이를 그렇게 기른 것은 잘한 것이 아니라고 다른 곳에 가서는 얘기를 해요. 병행을 했어야 했는데, 그 때 제 생각으로는 남편과 작은 아이가 정신적으로 건강하니까 혼자 헤쳐 나갈 수 있다고 생각을 했고 큰 아이에게만 매달린 거예요. 그러다 보니 여러 가지 문제점이 많이 있었죠.

▶ 어떻게 보면 어머니에게도 지난 25년은 개인적으로 굉장히 귀한 시간인데, 오로지 ‘형진이와의 삶’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어머니도 원래 직장 생활 하시지 않으셨나요?

직장 생활도 했었죠. 근데 살면서 제가 잘 한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해 봤어요. 근데 잘한 건 아무 것도 없더라고요. 그런데 딱 한 가지 ‘참는 것’만 잘했더라고요.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잘 살았고 칭찬해 주시는데, 제가 가정적으로 봤을 때는 그렇게 잘 산 삶은 아니었더라고요.

그런데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을 참아내는 것은 너무나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런 생활이 너무나 싫어하면서 피하고 도망을 가고 했다면 지금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제가 잘한 건 참아내는 것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 어머니 개인의 삶이 없었다는 것에 대해 억울했던 적은 없으셨나요?

억울한 적도 너무나 많았는데, 제가 아들을 통해서 또 다른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되고 하면서 나름대로 보상을 받는 거예요. 그리고 제가 ‘내 인생은 너무나 불행하고 지겹지?’ 라고 말할 수 없었던 이유가 지겹다는 말을 하는 것조차 두렵더라고요. 지금도 너무나 지겨운 인생인데 더 지겨운 인생이 될 것 같은 두려운 마음 때문에 지겹다는 얘기를 마음속으로 참았어요.

그래서 제가 아이하고 힘들 때 좋은 말이 없을까 생각해서 만들어 낸 말이 “백만불 짜리 다리, 몸매는 끝내줘요”인데, 그것을 저와 제 아이가 같이 했었어요. 제가 어디 가서 강연을 할 때 그 말이 10년 후에 긍정의 힘이 되어 현실로 나타났다고 한 적이 있어요. 그 때는 너무나 지겨워서 좋은 말로 “백만불 짜리 다리”라고 의도적으로 했지만, 그 말이 지금은 정말 ‘백만불 짜리 다리’가 된 거죠.

▶ 지금까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기억하신다면요?

행복했던 순간은 이번에 호주 시드니 마라톤에 가서 제가 한 시각장애인 분의 자원봉사자를 했어요. 제 아들을 키우면서 제 아들만 보고 주변의 다른 사람을 볼 여유가 없었는데, 이번 여행에서 그 시각장애인 분의 도우미를 하면서 제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감사했고, 그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행복했어요.

(표준 FM 98.1MHz 월~토 오후 4시 5분, 정리=김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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