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어플레이 합시다' 플레이오프에서 치열한 지략 대결을 펼치고 있는 염경엽 넥센(오른쪽)과 양상문 LG 감독. 사진은 지난 27일 1차전에 앞서 두 감독이 악수하면서 선전을 다짐하는 모습.(자료사진=넥센)
7점 차로 앞선 9회말 2아웃. 한 타자만 남기고 투수가 바뀐다. 그것도 팀의 마무리가 마운드를 내려온다. 특별히 난조나 부상이 있는 것도 아니다. 상대 3, 4번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기세를 올린 투수다.
야구 통념으로 보자면 오해를 살 만한 장면이다. 28일 넥센-LG의 '2014 한국야쿠르트 세븐 프로야구' 플레이오프(PO) 2차전에서 벌어진 상황이다.
LG는 9-2로 앞선 9회말 마무리 봉중근을 투입했다가 2사에서 내렸다. 이후 김선규가 올라와 안타와 사사구로 만루에 몰렸고, 유원상이 나와 문우람을 파울 뜬공으로 잡아 경기가 마무리됐다.
일반적인 야구 경기에서는 잘 벌어지지 않는 모습이다. 점수 차가 많이 나면 마무리가 잘 나오지 않거니와 만약 나와도 1아웃만 남기고 내려가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넥센, 1차전 교체하자 LG도 2차전 바꿔!자칫 상대팀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는 대목이다. 승부가 이미 기운 가운데 굴욕을 당한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봉중근이 교체되는 순간 염경엽 넥센 감독의 굳어진 얼굴 표정이 마침 중계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이런 장면은 전날 1차전에서도 연출됐다. 넥센은 6-3으로 앞선 9회초 2사 1루에서 마무리 손승락을 내리고 한현희를 투입했다. 손승락은 올해 32세이브로 2년 연속 구원왕에 오른 특급 마무리다.
더군다나 상대 타자는 경기 막판 대수비로 들어온 김영관. 올해 13경기 타율 1할6푼7리, 통산 20경기 타율 1할(20타수 2안타)의 수비 전문 선수였지만 넥센은 투수를 바꿨다. 결국 한현희는 공 1개로 김영관을 유격수 땅볼 처리해 세이브를 올렸다.
1, 2차전 모두 양 팀이 9회 2사에서 마무리를 교체하는 묘한 장면이 벌어진 것이다. 물론 점수 차와 마무리의 투구수 등 상황은 달랐지만 통상적인 야구 경기와 다른 모습인 것만큼은 분명했다. 모두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상황이다.
▲"투구수-컨디션 때문" 그러나 기 싸움 '팽팽'일단 양 팀 감독은 상대팀을 자극할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2차전 뒤 양상문 LG 감독은 "봉중근은 무조건 두 타자만 맡기로 하고 바꿨다"면서 "원래 몸을 풀고 있었는데 (6점이 났던) 8회 공격이 길어지면서 몸이 식을까 봐 넣었다"고 밝혔다. 당초 9회 1사에서 넣을 요량이었지만 뜻밖에 대량득점이 나면서 9회 시작과 함께 투입했다는 것이다.
이어 1차전 상황을 염두에 뒀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손사래를 쳤다. 양 감독은 "전혀 상대 감독이 하는 것에 대해서는 신경을 안 쓴다"면서 "마무리가 적당하게 던져서 대비하는 차원이지 전혀 같이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봉중근은 지난 22일 NC와 준PO 2차전 등판이 마지막이었다. 그러면서도 양 감독은 "김선규가 깔끔하게 마무리하지 못해 죄송하다"고도 덧붙였다.
염 감독은 봉중근 교체에 대해 "그것을 가지고 특별하게 할 얘기는 없다"고 말했다. 전날 손승락의 교체에 대해서 염 감독은 "투구수 조절 때문이었다"고 답했다. 손승락은 물론 조상우와 한현희까지 필승 불펜 3인방은 PO에서 최대 45개까지 연투라면 30개로 끊겠다는 것이다. 이날 손승락은 꼭 30개째 공에서 안타를 맞았다.
하지만 독한 야구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상대 반격의 싹을 원천적으로 봉쇄한 염 감독이다. 아군의 전력을 과시하고 상대 기를 죽이는 효과도 있다. 만약 양 감독의 2차전 투수 교체가 1차전에 대한 설욕의 의미가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염 감독 못지 않은 독한 야구다.
염 감독은 1차전 뒤 "세이브나 홀드가 중요한 게 아니라 승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마운드 보직 파괴는 또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기 싸움은 경기 시작부터 막판까지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