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미지비트 제공/자료사진)
국내 유명 식품업체들이 생산하는 가공식품의 식재료 가운데 70%이상은 수입산 농축산물이다. 수입산 점유율이 최근 3년 사이에 3배 가까이 증가했다.
우리 땅에서 생산된 농축산물이 값싼 수입산에 밀리면서 국내 농업은 설 땅을 잃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우리 농산물 팔아주기' 정책은 탁상행정에 그쳐 오히려 예산만 낭비하는 사족(蛇足)이 됐다.
◈ 국내 식품업체…가공원료 90% 수입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국내 식품업체가 사용하는 원재료 가운데 수입산 비중은 지난 2009년 23.9%에서 2011년에는 68.4%까지 증가한데 이어, 지난 2012년에는 70.3%까지 급증했다.
수입산 식재료 비중이 불과 3년 사이에 3배 가까이 증가하면서, 국내산 농축산물 비중은 그만큼 줄어든 것이다.
품목별로 보면 소고기는 지난 2009년 수입산 비중이 72.1%에서 2012년에는 90.6%로 국내에서 생산되는 거의 모든 식품이 수입산 소고기로 대체됐다.
콩(대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수입산 비중이 지난 2009년 43.6%에서 2012년에는 81%로 급증했다.
밀은 더욱더 심각하다. 2009년 59.3%에서 2012년은 99.5%로 국내 가공식품에 들어가는 밀은 모두 수입산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박민수 의원(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값이 싸다는 이유만으로 거의 모든 식품원료에서 국산 비중은 줄고 수입산이 급격히 늘고 있다”며 “앞으로 시장개방이 확대되면 이런 현상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 FTA 확대…국내 식재료 시장 붕괴 우려우리나라의 첫 FTA인 한·칠레 FTA는 2004년 4월 1일 발효됐다. 지난해 칠레산 돼지고기 수입은 10년 만에 물량은 2배, 금액은 3.4배나 늘었다.
문제는 FTA가 확대되면서 수입산 농축산물의 가격이 갈수록 떨어져 그만큼 수입물량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11년 7월 발효된 한·EU FTA는 발효 당시 41.8%였던 관세 철폐율이 10년차인 오는 2021년에 85.3%, 15년차인 2026년에는 95.5%로 높아진다.
한·미 FTA도 2012년 3월 발효 당시 관세철폐율이 37.8%였으나 10년차인 오는 2022년에 87.7%까지 상승한다.
특히 소고기는 15년에 걸쳐 관세가 철폐되는 점을 고려하면 2027년에는 EU와 미국 모두에서 무관세로 수입된다.
농촌경제연구원 박기환 연구위원은 "한중 FTA가 발효되면 축산물은 물론 양파와 고추 등 농산물 수입이 크게 늘어나, 일반 소비시장뿐 아니라 가공식품에서도 국내산 농축산물은 철저히 외면 받게 될 것으로 우려된다"고 전망했다.
◈ 겉도는 농식품부…외면하는 식품업체정부는 국내산 농축산물의 판로 확보를 위해 국내산 농축산물을 원자재로 사용하는 식품업체에 대해선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대표적인 식품 관련 예산으로 '우수농식품 구매지원자금'이 있다. 이 사업은 식품 수출업체가 국내산 농축산물을 사용할 경우 연리 4%의 조건으로 전년도 수출금액의 3배, 최대 200억원까지 지원한다.
또, 지원업체 평가결과 최우수업체에 대해선 1%p, 우수업체는 0.5%p 금리 우대까지도 제공한다.
대기업의 경우는 지원받은 금액만큼 국내산 농축산물을 구입해 가공식품으로 만들어 수출하면 되고, 중소업체는 식자재 가운데 국내산 농축산물을 30% 이상 사용하면 된다.
그런데 문제는 국내 식품가공업체들이 이 사업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데 있다.
올해 정부가 지원하는 '우수농식품 구매지원자금' 4,200억 원 가운데 지난 7월말 현재 자금지원 신청 규모는 230개 업체에서 2,165억 원에 지나지 않는다.
국내 최대 식품기업 가운데 하나인 CJ제일제당의 경우 올해 쌀과 배추, 무 구입자금으로 100억 원을 신청하는데 그쳤다.
특히, 베이커리제품과 주류(소주, 막걸리, 맥주), 마요네즈, 커피음료 등 '기타 가공식품'의 경우는 자금신청이 전무한 상태다.
이는 국내에서 생산되는 '기타 가공식품' 원재료를 국내산 농축산물로 사용하는 식품가공업체가 단 한군데도 없다는 얘기다.
실제, 커피와 술주정, 밀 등은 거의 100%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상태에서, 아무리 정부가 예산을 지원한다 해도 국내산을 이용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식품업체 관계자는 "수입산 식재료를 사용할 경우 국내산 보다 50% 이상 원가가 내려가는데, 수출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수입산을 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최근 정부가 일반 대출금리를 인하하고 있는 상황에서 4% 이내의 금리로 일반자금을 얼마든지 대출받을 수 있는데, 굳이 까다로운 절차와 사후 결산 보고까지 해야 하는 정부 지원자금을 이용할 필요성이 떨어지는 것도 주요 원인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정책금리 4%는 너무 높은 게 사실이다"며 "굳이 정부 지원금을 이용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자금 조달이 가능한데 어느 기업이 정부 지원금을 신청하겠냐"고 반문했다.
이는 정부의 정책자금 운용이 처음부터 잘못됐음을 인정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