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당국의 2017년 행정장관 선거안에 반대하는 홍콩 민주화 시위대가 1일(현지시간) 새벽 정부청사 주변 도로를 점거한 채 휴대전화 불빛을 밝히며 "힘내자" 등을 연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의 2017년 홍콩 행정장관(행정수반) 선거 안에 반대하는 홍콩시민의 도심점거 시위가 신중국 건국 65주년 기념일(국경절)인 1일로 나흘째 이어졌다.
시위대는 이날 렁춘잉(梁振英) 홍콩 행정장관이 사임하지 않으면 정부건물 점거에 돌입하겠다며 경고했고, 이에 대해 중국정부는 '홍콩 기본법' 등을 강조하며 사실상 시위대의 요구를 묵살했다.
◇국경절 연휴 맞아 시위세력 확대 = 중고교 단체인 학민사조(學民思潮)를 이끄는 조슈아 웡(黃之鋒) 등 시위대 수백 명은 이날 오전 국경일 국기게양식이 거행된 완차이 골든 보히니아 광장으로 이동해 국기게양대에서 등을 돌린 채 노란 리본을 묶은 손을 들고 엑스(X)자 표시를 만들어 보이는 등 침묵시위를 벌였다.
시위 참가자 20여 명이 행사장 진입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평화시위를 원하는 다른 시위 참가자들의 만류로 경찰과의 충돌은 빚어지지 않았다고 현지매체가 전했다. 골든 보히니아 광장에는 이날 경찰 수백 명이 배치됐다.
렁 장관이 행사장에 나타나자 일부 시위대는 홍콩에서 사용하는 광둥화(廣東話) 대신 중국 표준말인 푸퉁화(普通話)로 "퇴진 689"라고 외쳤다.
689는 간접선거로 진행된 2012년 행정장관 선거에서 렁 장관이 1천200명의 선거위원으로부터 받은 표를 의미한다.
범민주파 입법회(한국 국회격) 의원 중 장발(長髮)로 유명한 량궈슝(梁國雄) 의원은 렁 장관의 퇴진과 진정한 보통선거를 요구하다가 30초 만에 행사장 밖으로 쫓겨나기도 했다.
렁 장관은 행사장에서 "중국의 꿈이 실현되도록 손에 손을 잡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시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일부 친(親) 중국 성향 군중은 "렁춘잉을 지지한다"고 외치기도 했다.
시위대 점거지역은 전날 이미 까우룽(九龍)반도 침사추이(尖沙咀) 등으로 확대됐고 국경절 연휴 첫날을 맞은 이날 시위 참가자는 더욱 확대됐다.
시위에는 케이 체(謝安琪)와 안토니 웡(黃秋生) 등 홍콩 연예인들도 모습을 드러냈다. 외신들은 시위대 규모가 10만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전했다.
◇"행정장관 퇴진" 요구 = 홍콩 민주화 시위에 참여한 학생 지도부가 이날 렁 장관이 2일까지 사임하지 않으면 주요 정부건물을 점거하겠다며 경고했다고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홍콩 8개 대학학생회 연합체인 홍콩전상학생연회(香港專上學生聯會)의 레스터 셤(岑敖暉) 부비서장은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밝히며 렁 장관이 아닌 중국 중앙 정부 당국자와 대화할 기회를 환영한다고 말했다.
홍콩 시민의 시위를 지지하는 국제여론도 점점 고조되고 있다.
마잉주((馬英九) 대만 총통은 전날 발표한 성명에서 "홍콩이 '보통선거'를 실현한다면 이는 홍콩과 중국 본토에 '윈-윈'이 될 것이며 또한 양안(중국-대만) 사이의 정신적 격차를 좁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렇지 않으면 대만 대중의 (중국에 대한) 반감을 심화시킬 것이고 양측(양안) 관계에 상처를 입히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양안 관계를 담당하는 대만 행정원 대륙위원회도 같은 날 발표한 성명에서 "그것('보통선거')은 홍콩의 장기적 안정을 보장할 뿐 아니라 양안 관계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서도 심오한 의미가 담겨 있다"며 시위 지지를 선언했다.
1일 타이베이에서는 대학생을 중심으로 시민 수천명이 모여 홍콩 시민의 시위를 지지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홍콩에서 민주주의 원칙이 존중돼야 한다"며 평화적 해결을 촉구했고,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도 민주주의를 믿는 모든 이가 홍콩 시민을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정부, 시위대 요구 일축 = 홍콩당국과 중국정부는 그러나 시위대의 선거 안 철회 요구를 일축하며 강경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완차이 국경일 행사에 참석한 장샤오밍(張曉明) 홍콩 주재 중국연락판공실 주임은 기자들의 쏟아지는 질문에 "태양은 평소처럼 떠오른다"며 답을 피했다.
이는 지속적인 시위에도 전인대가 지난 8월 말 의결한 선거 안을 변경할 의사가 없음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됐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국경절을 하루 앞둔 전날 밤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기념연회에 참석해 "흔들림 없이 '일국양제' 방침과 기본법을 관철하고 홍콩, 마카오의 장기적 번영과 안정을 수호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사실상 시위 주도 세력에 보내는 '경고성 메시지'로 해석됐다.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AI)는 중국에서 홍콩의 진정한 보통선거를 지지하던 인권운동가 20명이 중국 경찰에 구금됐으며 60여 명은 신문을 받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