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취임 초부터 야당과의 연정을 부르짖으며 상호 간의 '신뢰'를 강조해왔다. 거슬러 올라가 국회의원 시절에도 당내 개혁 소장파의 핵심 인사로 부상하며 국민들로부터 '할 말은 하는 정치인'이라는 신뢰를 얻었다.
그가 그토록 쌓으려 노력했고, 목소리를 높였던 그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 육군 헌병대에서 후임병 폭행 및 성추행 혐의로 조사받고 있는 한 병사가 남 지사의 장남으로 밝혀지면서 그의 '공든 탑'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단순히 "아들 잘못 키운 죄"로 끝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들의 죄를 사과를 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그의 행동들은 '진정성'을 상실했다.
남 지사는 아들의 후임병 가혹행위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 지난 17일 오후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피해 병사와 가족들, 그리고 국민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거듭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 그는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13일이라고 했다. 사실을 알고부터 사과까지 나흘이 걸렸다.
그의 '석고대죄'에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그가 보낸 나흘간의 행적 때문이다.
남 지사는 아들의 소식을 접한 이틀 뒤인 15일 저녁 수원의 한 호프집에서 지인들과 함께 술을 마셨다.
그러나 이 술자리는 아들의 잘못을 함께 뉘우치며 신세를 한탄하는 자리는 아니었다. 남 지사는 이날 밤 술자리의 분위기를 '짱~ '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수원 나혜석 거리에서 호프 한잔하고 있습니다. 날씨도 선선하고 분위기 짱~입니다. 아이스께끼 파는 훈남 기타리스트가 분위기 업 시키고 있네요"라는 글을 올렸다.
남경필 경기도지사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이에 대해 경기도는 "합당한 처벌이 있을 것으로 생각해 일상생활을 그대로 이어간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남 지사의 몇몇 지인들의 말은 다르다. 남 지사는 당시 이미 헌병대로부터 '아들이 기소유예 정도로 처리될 것'이라는 말을 들은 상태였다고 전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때까지만해도 피해 병사나 가족들은 안중에도 없었던 남 지사가 이틀 뒤 사건이 만천하에 알려지고 부랴부랴 한 사과를 진심으로 받아들일 사람은 많지 않을 듯 싶다.
남 지사의 진정성을 믿기 어려운 대목은 또 있다. 남 지사는 사건을 알기 하루 전인 12일 한 일간지에 군에 간 두 아들을 걱정하는 마음을 담은 기고문을 보냈다.
그는 기고문에서 "아들 둘을 군대에 보내놓고 선임병사에게 매는 맞지 않는지 전전긍긍했다. 병장이 된 지금은 오히려 가해자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닌지 여전히 좌불안석이다."라고 썼다.
이 기고문이 논란이 되자 경기도는 "사건을 알기 전에 작성된 것"이라는 해명을 내놨다. 하지만 이 기고문의 게재 예정 날짜는 15일. 기고문을 철회할 수 있는 시간은 충분했다.
남 지사가 자신이 쓴 글이 피해병사와 가족들에게 얼마나 큰 기만과 상처를 줄 수 있는지를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기고문은 철회했어야 한다.
피해자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한 채 아들의 잘못만을 덮고 가려 했던 남 지사의 사과가 '악어의 눈물'로 비쳐지는 이유다.
결국, 19일 남 지사의 아들은 군 검찰에 의해 후임병 폭행과 모욕, 강제추행, 가혹행위와 강요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