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지난달 12일 변사체를 발견해 수습하고 보고하는 과정에서 변사체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임을 시사하는 핵심적인 내용을 줄줄이 놓친 것으로 드러났다.
발견 직후 시신을 부검한 민간 의사는 유씨의 신체 특징 중 하나인 '절단된 손가락'의 모습을 기록해 놓았지만 경찰이나 검찰은 이를 통해 시신이 유씨일 것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한 셈이다.
24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정청래 의원은 "유씨 시신을 처음 확인한 부검의가 작성한 문서에는 '시신의 네 번째 왼쪽 손가락 일부가 절단돼 있다'고 적혀 있다"며 "당시 경찰도 입회해 있었는데 이것을 어떻게 모를 수 있느냐"고 추궁했다.
유씨 시신이 발견된 것은 지난달 12일이며, 경찰이 민간 의사에 위탁해 시신을 부검한 것은 그 다음 날이다.
그날 부검의가 소견서에 시신 왼손의 네 번째 손가락의 특징을 기록해 놓은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경찰청은 그날 "유씨의 지문 기록을 조회한 결과 왼손의 두 번째 손가락이 절단돼 지문정보가 아예 없고, 네 번째 손가락은 상처 때문에 지문 일부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경찰청은 이어 "6월 3일 이 지문 정보를 일선 경찰관이 보는 내부용 수배전단에 반영했다"며 "오늘 전국적으로 열리는 임시 반상회를 통해 이런 정보를 일반 국민에게도 공개하기로 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검찰과 경찰이 이미 유씨의 손가락 특징을 파악하고 있었지만 순천에서 그러한 특징을 지닌 변사체가 발견됐음에도 이를 놓친 것이다
이와 함께 경찰이 중요 유류품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사실도 드러났다.
경찰은 전남 순천에서 발견된 변사체가 유씨로 확인됐다는 사실을 발표한 22일 브리핑에서 "시신을 부검한 지난달 13일 유전자 분석을 위해 시신에서 머리카락과 대퇴부 뼈를 떼어내 분석을 의뢰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날 통합진보당 김재연 의원은 "당초 유전자 분석이 의뢰된 것은 대퇴부 뼈이며, 머리카락은 의뢰가 이뤄지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머리카락은 뼈보다 유전자 분석이 훨씬 빨리 이뤄진다.
이에 대해 서중석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원장은 "국과수가 22일 시신에 대한 부검이 끝났을 때 현장에서 머리카락을 발견해 자체적으로 유전자 분석을 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또 유씨 시신과 함께 발견된 천가방도 23일에야 국과수에 분석 의뢰가 들어왔다고 공개했다.
김 의원은 "시신을 발견한 직후 당연히 시신에 대한 약물, 독물 조사가 이뤄져야 함에도 당시 조사 의뢰가 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김 의원이 "유씨가 쓰던 지팡이는 시신 현장 사진에도 있었지만 잃어버리고 없어 현재도 유류품 목록에 없다"고 지적하자 이 청장은 "당시 지팡이라는 생각을 못하고 나무로 생각하고 놓친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추궁이 이어지자 이성한 청장은 "초동수사에 미흡함이 있었던 점을 인정한다"고 실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