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장애 친구가 해수욕장에서 수영을 하고 싶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는 2013년 총회에서 ‘모두를 위한 접근 가능한 관광(Accessible Tourism For All)’ 실천을 각국에 권고했다. 노인과 장애인이 자유롭게 관광을 즐길 수 있도록 여행정보와 관광시설을 제공하고 직원 교육도 강화하자는 내용이다. 노인·장애인 소비자가 늘어난 관광산업은 그만큼 발전한다. CBS 노컷뉴스는 ‘모두를 위한 관광, 나를 위한 것’이라는 주제로 호주와 일본, 스페인, 독일의 장애인 관광실태를 집중 취재·보도한다. <편집자주>편집자주>| 기사 싣는 순서 |
1. 휠체어 타고 시드니 산으로~ 바다로~ 2. 걷기 좋은 도시가 훌륭한 관광지 3. 축제 즐기는 시드니 장애인 4. 도시, 노인·장애인을 위해 돌계단 성벽을 허물다 5. 걷기 편한 도시는 관광산업도 성장 6. 베를린 관광버스 노인·장애인 태우고 go go 7. 오키나와, 관광지부터 호텔까지 바꿔야 산다 8. 노인·장애인 여행정보 ‘클릭한번으로’ 9. 항공기도 전철도 버스도 모두의 이동수단 |
비비드축제는 장애인관람구역을 만들어 놓았다. 오페라하우스의 조명쇼를 즐기는 휠체어 장애인 브라이든. 사진=줄리 존스 제공
시드니 신년축제, 비비드 축제, 한다 오페라, 마르디 그라 축제, 안작데이 축제…. 세계 3대 미항으로 꼽히는 시드니(호주)는 축제의 도시다. 연중 따뜻한 기후와 청명한 날씨 속에서 1년 내내 축제가 끊이지 않는다. 축제 현장에 모인 사람들은 하나같이 옷차림새가 간편하고, 표정이 여유롭다. 시드니 시민에게 축제는 특별한 행사가 아닌 일상이다. 장애인, 노인, 어린이 같은 사회적 약자도 축제를 즐기는데 예외일 수는 없다.
#1. 5월 23일부터 10일간 시드니에서는 ‘비비드 축제’가 열렸다. ‘비비드 축제’의 주요 이벤트 중 하나는 조명쇼. 오페라하우스, 하버브리지, 현대미술관 등 시드니항의 건축물에 레이저빔을 쏘는데, 시시각각 형형색색의 무늬로 바뀌는 광경은 장관이다. 뇌성마비 휠체어 장애인 브라이든(18)은 오페라하우스 진입로에 마련된 장애인관람구역에서 가족과 함께 화려한 레이저빔 조명쇼를 구경했다. 브라이든의 어머니 줄리 존스 씨는 “워낙 찾는 사람이 많은 축제라서 장애인관람구역이 없었다면 구경하지 못할 뻔했다. 우리 가족에게 특별한 경험이었다”고 했다.
#2.지난 5월 16일 찾은 코카투 섬은 제19회 시드니 비엔날레가 한창이었다. 서큘러키에서 페리로 10분 거리인 이곳은 과거 감옥과 조선소로 쓰였던 버려진 섬이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건물은 낡고 녹이 슬었지만 도시 재생공간을 미술 전시장으로 재활용하는 세계적 추세와 맞물려 지금은 갤러리로 각광받고 있다. 교통약자를 위한 배려도 돋보인다. 가파른 곳은 경사로를 따라 올라갈 수 있게 했고, 안내지도는 각 전시장 별로 휠체어 접근여부를 표시해 놓았다. 주최 측 관계자는 “미리 신청하면 페리에서 휠체어 관련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섬 곳곳에는 유모차를 끌고 구경 온 가족이 눈에 띄었다.
‘모두가 즐기는 축제’의 출발점은 사회적 약자의 문화 향유권을 중시하는 정부의 정책이다. 2008년 수립된 도시 발전계획 ‘시드니 2030’의 열쇳말은 ‘그린·글로벌·소통’ 세 가지다. 이중 소통은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도시생활을 누리는 것’에 방점을 둔다. 이 같은 방침을 실천하기 위해 시드니시청은 4~5년 주기로 ‘장애인 접근 실행계획’을 수립한다. 클로버 무어 시드니 시장은 “장애인이 다양한 축제를 즐기고, 스포츠 활동에 참여하면서 도시의 삶에 녹아들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디 존스 NYE 접근 담당 코디네이터와 폴 누나리 NSW 이벤트 접근 담당 매니저. 사진=문수경 기자
시드니 시의 정책과 맞물려 뉴사우스웨일스주(이상 NSW)는 2012년 2월부터 ‘NSW 장애인 이벤트 접근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있다. 휠체어 장애인인 폴 누나리 NSW 이벤트 접근 담당 매니저는 “프로젝트를 시작한 후 축제 주최 측이 장애인의 접근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한다. 덕분에 장애인의 축제 참여도가 높아졌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매해 마지막날 열리는 불꽃축제 ‘시드니 신년축제’(New Year’s Eve, 이상 NYE)는 관람객이 160만명에 이른다. 주최 측은, 엄청난 인파 때문에 축제 구경은 엄두조차 못내는 장애인을 위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먼저 4군데를 장애인관람구역(정원 270명)으로 지정해 놓았다. 맹인을 위한 오디오 디스크립션 서비스도 준비돼 있다.
‘NYE 장애인 접근 실행계획’을 총괄하는 디 존스 시드니 NYE 프로젝트 코디네이터는 “장애인관람구역은 매년 장애인 가족으로 꽉 찬다”고 했다. 줄리 존스 씨는 “가족 중 12살 이하 장애인이 있으면 추첨을 해서 가족 전체를 초청하고, 행사장에서는 아이에게 파티까지 열어준다”고 웃었다.
NYE 안내지도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계단이 없는 곳을 표시해 놓았고, 또 하나는 장애인이 이용 가능한 공공시설의 위치를 알려준다. 작년부터 ‘장애 알기’라는 소책자도 발행하고 있다. 소책자에는 ‘장애인을 존중하고 예의 있게 대할 것’, ‘맹인안내견에게 말을 걸거나 만지지 말 것’ 같은 9가지 에티켓이 적혀 있다. 디 존스 씨는 “안내지도를 제작할 때 장애인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한다”며 “비장애인은 장애인과 소통하는 방법을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소책자가 두 집단의 심리적 거리를 좁히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각 축제는 장애인이 축제현장을 편하게 오가도록 다양한 이동 서비스를 제공한다. NYE는 장애인 승하차 구역 5군데를 별도 지정해 놓았다. 시드니 비엔날레는 필수 이동수단인 페리에 휠체어석을 마련해 놓았고, 오페라하우스는 혼자 이동하기 힘든 중증장애인에게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무료 지원한다.
버스, 지하철 등 대중교통 시스템 자체가 장애인 친화적이다. 시드니 시내 지하철은 뮤지엄역을 제외하면 모두 장애인이 접근할 수 있다. 저상버스 비율은 65%다. 저상버스는 일반버스 보다 조명이 밝고, 출입문도 넓다. 출입문 바닥에 고정된 발판이 경사로 역할을 해서 휠체어 장애인도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다.
지난 5월 15일 출근시간대에 만난 휠체어 장애인 할머니. 할머니가 버스에 오르려고하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도움을 주고 있다. 사진=문수경 기자
특히 휠체어 장애인이 탑승할 때 버스정류장에 서있던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돕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지하철의 경우, 장애인석 의자가 접이식이라서 휠체어를 위한 공간이 넓다. 비상벨 위치와 차량번호는 점자로 표시돼 있다.
야경이 아름다운 달링하버 지역은 매주 토요일 저녁 8시 불꽃놀이를 펼친다. 5월 17일 불꽃놀이 행사장을 찾았다. 행사 몇 시간 전부터 주변 레스토랑은 가족 나들이객과 데이트하는 연인으로 북적였다. 보행자 전용지역이라서 그런지 휠체어 장애인과 유모차도 제법 많았다. 탁탁탁! 불꽃이 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사람들은 불꽃처럼 환하게 웃었다. 이들은 그렇게 도시의 삶에 녹아들었다.
달링하버 불꽃놀이 모습. 사진=문수경 기자
그렇다면 축제에서 ‘무장애’(Barrier Free)는 왜 중요할까. 폴 누나리 씨는 “호주정부는 UN의 장애인권리협약을 이행하기 위해 장애인권 향상에 애쓰고 있다.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동등한 권리를 갖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선택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 제니 스피니악 오페라하우스 접근 담당 매니저는 “장애인 역시 모든 종류의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인권이다”고 강조했다.
| [인터뷰] 제니 스피니악 오페라하우스 접근 담당 매니저 |
오페라하우스 접근 담당 매니저 제니 스피니악. 사진=문수경 기자
오페라하우스는 매년 1800회 이상 공연을 하고, 820만명이 관람하는 시드니의 대표적인 문화예술 시설이다. 특히 2012년부터 장애인이 관람할 수 있는 ‘접근 가능한 공연’(Accessible Performance)을 시작했는데, 올해는 30회 이상 잡혀 있다. 장애 유형에 따라 공연을 고를 수 있는 것도 특징.
‘피노키오’는 7세 이상 시각 및 청각 장애아를 위한 공연이다. 시각장애아를 위해서는 전문가가 즉석에서 연극의 시각적인 부분을 설명하면 그것을 FM 라디오 리시버로 듣는 오디오 디스크립션 서비스를 제공한다. 맹인안내견도 공연장 안까지 들어갈 수 있다. 또 청각장애아를 위해 수화 통역은 물론, 대사를 스크린 자막으로 보는 캡션 서비스를 한다. 접근 가능한 공연을 준비하는데 드는 비용은 모두 오페라하우스가 부담한다.
‘애스톤의 돌’(Aston’s Stones)은 3세 이상 자폐아를 위한 연극이다. 자폐아는 특성상 돌발행동이 잦기 때문에 가족 중 자폐아가 있으면 다른 사람과 함께 공연을 보기가 어렵다. 하지만 이 연극은 자폐아가 편안한 분위기에서 관람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조명을 조절해서 공연장 내부를 밝게 유지하고, 좌석 옆에는 장난감을 준비해 놓는다. 공연 전에는 극중 등장인물의 의상을 만져보고, 노래를 따라 부르는 ‘터치 투어’도 한다.
제니 스피니악 오페라하우스 접근 담당 매니저는 “공연 중 아이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도 주변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고, 공연을 보기 싫으면 공연장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도 된다. 옆에 휴식공간도 만들어놨다”며 “‘가족 모두가 공연을 즐길 수 있어서 좋다’는 피드백이 많다”고 했다.
매일 오전 12시에는 장애인을 위한 ‘엑세스 투어’(Access Tour)를 진행한다. 1시간 동안 가이드와 함께 오페라하우스의 유명 공연장을 둘러보는 프로그램이다. 휠체어 대여는 물론, 수화와 오디오 디스크립션 서비스 등이 마련돼 있다.
나아가 장애를 가진 대학 졸업반 학생에게 인턴십 기회를 주고, 장애인 아티스트가 오페라하우스 쇼케이스 무대에 설 수 있도록 지원한다. 직원 교육에도 열심이다. 제니 스피니악 매니저는 “신입사원 오리엔테이션에서 장애 유형별 특징, 장애인 고객을 대할 때의 에티켓 등을 가르친다. 휠체어는 직접 타보면서 사용법을 익힌다”고 했다.
오페라하우스 접근 가능 정책의 최종목표는 다음과 같다. “한 학생이 접근 가능한 공연을 관람한 후 오페라하우스 그림을 보내왔어요. 이 학생이 ‘오페라 홈’이라고 표현한 그림에는 창문과 커튼, 활짝 열린 문이 그려져 있었죠. 이 학생처럼 장애인이 오페라하우스를 자기 집처럼 편하게 느꼈으면 좋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