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김무성 신임 당 대표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윤창원기자
김무성 새누리당 신임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를 향해 “할 말을 하겠다”고 발언, 정치권은 물론이고 여론 주도층으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다.
김 대표가 박 대통령의 인사 실패와 독선적 국정운영을 바로잡는 ‘직언’을 서슴지 않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할 말을 한다”는 발언은 김무성 대표(김무성 대장-무대)를 향한 국민의 기대감을 한껏 올리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는 김 대표의 앞날에 긍정적 자산임과 동시에 부정적 부담으로도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가 제때에 청와대의 독선과 독주, 인사 실패를 시정하도록 나선다면 근래에 보기 드문 여당 대표로서 자리매김할 것이다.
정치적 포부이자 꿈(?)을 실현시킬 절호의 기회를 얻음과 동시에 성공한 여당 대표라는 수식어가 붙을 수 있다. 토론을 즐기고 주변의 얘기를 경청하는 그의 방식으로 볼 때 김 대표는 그럴 가능성이 다분한 정치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청와대의 잘못을 시정하고 정책을 주도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그동안 정치 역정에서 보여준 그의 성향과 특성으로 볼 때 당의 중심, 주류로 섰을 때와 소외된 비주류가 됐을 때의 움직임이 달랐기 때문이다.
◈ "할 말 하겠다"와 "잘 모시겠다"는 어울리지 않아당 대표가 된 이후 첫 상견례인 만큼 덕담의 자리였다고 할지라도, 15일 청와대 오찬에서의 “대통령을 잘 모시고 잘 하겠다"란 발언은 당정이 엄연히 분리된 집권 여당의 대표로서 다소 낯 뜨거운 발언으로 들린다.
여당 대표로서 정치적 수사라거나 의례적인 발언이었다고 항변할지라도, 일반 회사에서 부하 직원이 상사를 잘 모시겠다는 표현에 다름 아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을 잘 모시고 잘 하겠다는 발언은 일종의 굴종”이라며 “오히려 성공한 대통령이 되도록 여당 대표로서 나름의 역할을 다하겠다고 발언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대통령을 잘 모시고 잘 하겠다”는 발언을 당 대표 경선 기간 동안 내내 ‘박근혜 지킴이’를 주창해온 서청원 최고위원이 했다면 그냥 넘어갈 수 있다.
그렇지만 김무성 의원은 ‘대통령 지킴이’, ‘청와대 거수기’로서의 당 대표 역할을 부여받은 게 아니라, 수평적 당청관계를 재정립해 당당한 당을 만들라는 민심과 당심의 명령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도 초장부터 저런 발언을 늘어놓는다면, 청와대가 아예 민심과 동떨어진다거나 독주할 경우에만 "할 말을 하겠다"는 것으로 김 대표의 의중이 해석될 수 있다.
김 대표는 16일 아침까지 거짓말에 8가지 범법을 한 정성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임명을 강행하겠다는 청와대의 움직임에 대해 그 어떤 제동을 걸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 8-90%는 朴에 협력…1-20%만 할 말박근혜 정부의 성공이 곧 자신의 정치적 미래를 담보한다고 믿기에, 80~90%는 청와대에 협력하되 10~20%만 자신의 목소리를 낼 것이라는 '예고'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다.
서청원 최고위원을 비롯한 친박 주류가 버티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대화와 타협을 강조하는 김 대표의 정치 역정으로 볼 때 청와대와 대립각을 세우는 방식의 정치는 하지 않을 개연성이 높다.
김 대표는 청와대 오찬회동에서 “수락연설에서 말씀드렸지만 우리 모두는 풍우동주(風雨同舟)"라고도 했다. "어떤 비바람 속에서도 한 배를 탄 공동운명체”라는 언급의 방점은 '직언'이 아닌 '협조'에 있다.
실제로 김 대표는 정치적 사안이 벌어졌을 때 비공개적으로 은밀하게 입장을 밝히는 스타일이다. 경선 승리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김명수, 정성근, 정종섭 장관 후보자 처리 문제에 대해 "아직 현안에 대한 파악이 잘 안 된 상태"라고 즉답을 피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 대표는 15일 박근혜 대통령과의 오찬에서 장관 후보자들의 문제와 관련해 "일부 후보자에 대한 안 좋은 여론이 있다"는 정도로만 언급했을 뿐 3명의 장관 후보자 임명을 강행해선 안 된다는 발언을 하지 않았다.
김기춘 비서실장의 인사 실패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져 사퇴 문제가 나왔을 때도 “청와대에 책임이 있다”고만 언급했을 뿐, 직접 공격을 하진 않았다. 문창극 총리 후보자 파문 때도 '선 해명, 후 사퇴'라는 논리를 끝까지 고수했다.
김 대표가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소수자가 권력을 독점한 데 대해 비분강개한다”고 밝혔으나,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소수 측근 인사들을 내치라고 요구할 것 같지 않다.
◈ 무대, '기춘대원군'과 '4인방'을 내치라는 요구 못할 듯 그의 발언대로라면 국정 농간의 중심에 김기춘 실장과 3인방, 4인방이 있지만 그들에 대한 처리를 박 대통령에게 요구할 것 같지도 않다.
물론 ‘때’를 볼 수도 있다. 일단은 지켜보다가 안 되겠다고 판단되면 청와대와 정면 승부를 펼칠 수도 있다. 실제로 ‘무대(무성대장군)’의 성격으로 볼 때 그럴 공산이 크다.
그럴지라도 박근혜 정권이 실패하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김 대표가 덤터기를 쓴다. 또 박근혜 정부가 성공한다고 무대의 공으로 돌아가거나 그의 정치적 자산으로 남지도 않을 것이다. 박 대통령의 성공일 뿐이다.
국민으로부터 이명박 정권이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기에 정권을 재창출했고, 박근혜 대통령이 탄생했는가. 김 대표가 지금 고민해야 할 것은 '여부'가 아니라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