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김현정의>로마 교황청이 바티칸 은행(IOR)의 새 수장으로 프랑스 금융인 출신 장 밥티스트 드 프랑수(51)를 임명했다. 교황청의 이번 결정은 부정부패 스캔들로 얼룩진 IOR을 개혁해 미래를 바꾸겠다는 의지가 담긴 거라고 해석된다. 드 프랑수 신임 은행장은 기자회견에서 "'IOR의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며 가톨릭교회 윤리에 어긋나지 않는 투자를 통해 자산을 관리하겠다"고 말했다. IOR 예치 자산은 60억 유로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교황청의 바티칸 은행 연례보고서는 "IOR은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 3000여개 계좌와 교황청 관계자와 직접적 관계가 있는 400여개 계좌를 폐쇄했다"고 밝혔다.
장 밥티스트 드 프랑수(사진=유튜브 영상 캡처)
◈ 교황청은 왜 금융업에 뛰어들었을까?바티칸 은행의 공식 명칭은 종교사업기구로 가톨릭 해외 교회와 선교사들을 지원하는 기구이다. 그 역사는 이러하다. 20세기 들어서면서 바티칸은 최악의 상황을 맞이한다. 종교개혁 이후 신자 수는 줄어들고 헌금은 감소하는데 시대에 발맞춘 구조조정에도 실패하고 혁신적인 대책을 마련치 못했다. 개신교의 확대로 가톨릭 국가들이 보내주던 헌금도 끊기기 시작하고, 각 나라에서 가톨릭교회가 갖고 있던 많은 부동산들이 국유화되는 사태도 빚어졌다. 그 결과 겨울에 난방을 못할 만큼 가난했고 비가 새도 지붕 고칠 돈이 없었다.
이때 대전환을 노려 기획한 사업이 오토만 제국 국채에 투자하는 것이었다. (3.1운동이 있던 1919년 교황 베네딕토 15세 때 일이다). 그러나 오토만 제국은 무너졌고 교황청도 덩달아 파산 위기에 놓였다. 이 손실에 대해 교황청은 오토만 제국을 무너뜨린 이탈리아에 일시불로 배상금을 요구했는데 그 대상자는 파시즘을 이끌던 무솔리니였다. 무솔리니는 교황청 땅이 이탈리아 국가 소유로 넘어온 것도 있고 공산당 등 정적들에게 맞서기 위해 교황청이란 배경이 필요하니 이를 수락했다. 그래서 거액의 보상금과 면세를 제공한다. 이것이 1929년의 라테란 조약이고 교황 비오 11세 때 일이다.
교황청은 히틀러에게도 손을 내밀어 1년에 1억 달러씩 받았고 히틀러는 대신 국민에게서 교회세를 거뒀다. 다시는 굶주리고 싶지 않았기에 교황청은 '특별행정처'라는 직속기구를 설립해 독재자들로부터 들어온 돈 등을 글로벌 투자를 통해 불리고자 했다. 이것이 바티칸 은행의 전신이다.
◈ 바티칸 은행의 흑역사처음엔 자금 운용과 투자결정에 교황청 간부들은 개입하지 않았다. 성직자들이 금융 사업에 나서는 것도 부적절해 보이고, 종교적 판단이 개입하면 수익사업을 하는데 방해가 될 수도 있어 접근하지 않도록 했다. 그러다 특별행정처의 영역은 계속 확장되고 결국 바티칸은행이 되었다. 스위스은행과 손을 잡았고 스위스 은행과 연결되자 이탈리아 기업인들의 비자금이 바티칸 은행을 통해 빠져 나갔다. 그리고 마피아도 마약 거래 자금을 숨기기 위해 바티칸 은행에 돈을 넣었고 이 돈은 바티칸 글로벌 루트를 따라 지구촌을 넘나들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에는 '쥐구멍 라인(rat line)'이라는 사업도 있었다 한다. 마피아와 바티칸이 협력해 나치 전범을 아르헨티나 등으로 피신시키는 사업이었다. '리용의 도살자' 클라우스 바르비, 아우슈비츠에서 유태인 생체 실험을 진행한 요제프 멩겔레 등이 이 구멍을 통해 빠져나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피아는 위조여권과 탈출 계획을 준비하고 바티칸이 은신처를 제공했는데 나치 전범들 재산의 40~50%가 수고비로 헌납됐다는 것.
프란치스코 교황 (사진=유튜브 캡처)
◈ 당신의 몸에서는 무슨 냄새가 나는가?이제 새 바람이 불고 있다. 물론 이전에도 바티칸 은행을 개혁하려던 교황과 사제들이 있었고 많은 사건들이 벌어졌지만 이번 프란치스코 교황 하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개혁의지가 강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양을 치는 목자가 몸에서 자신이 기르는 양 냄새가 나지 않으면 그게 양치기 목자일 수 있는가…". 이 말대로라면 돈 냄새 짙은 성직자들은 이제 옷을 갈아입든 나가든 해야 한다.
최근 로마의 성 그레고리오 7세 성당에서는 미사 도중 842명의 이름이 불리어졌다. 이 842명은 1893년부터 지금까지 이탈리아 마피아에 의해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이었다. 이 가운데 82명은 어린이들이다. 이 미사는 반(反)마피아 시민단체인 '리베라(Libera)'가 주관한 미사였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참석했다. (교황이 반마피아 단체의 미사에 참석한 것은 처음). 교황은 이날 미사에서 "마피아는 회개하고 악행을 멈추기 바랍니다. 더러운 범죄로 모은 권력과 돈에는 피가 묻어 있고 그 돈은 천국에 가져갈 수 없습니다…그리고 우리는 좌절하지 않고 부패와 싸울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합시다"라고 당부했다.
여기서 우리는 마피아 대부분이 독실한 가톨릭 신자들임을 간과할 수 없다. 바티칸 은행과 마피아의 관계도 교회와 신도의 관계를 밑에 깔고 있는 셈이다. 교황청의 이 같은 쇄신 노력을 한국 교회는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 교인이면 뭐든 밀어줘야 한다는 맹목적 태도를 그대로 가져가서는 미래가 없다. 장로니까 대통령 시키고, 흠결이 있어도 장관, 국무총리 시켜야 한다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목사가 벌인 일이니 뭐든 적당히 덮어주고 넘어가는 것이 교회의 도리가 아니다. 교회가 먼저 더 아프게 꾸짖고 바로 잡아야 한다. 이 일을 가벼이 여긴다면 한국 교회는 비가 새도 지붕을 고칠 수 없는 날이 곧 도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