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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표적 '권력기관'인 국정원 직원들의 출생지(고향)가 정권의 인사방침에 따라 실제로 '왔다갔다'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권력과 정권에 따라 국정원 직원들의 승진인사가 차별적으로 운용되며 '출생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세간의 소문이 크게 틀리지 않은 것이다.
고 노무현 대통령 정권 시절인 2007년 12월. 17대 대통령 선거를 불과 1주일도 남기지 않고 국정원에서는 4급 승진 인사가 실시됐다.
국정원 전 인사과장이었던 김모 씨는 2007년 12월 당시 김만복 국정원장으로부터 '4급 승진은 영남과 호남 출신을 각각 40% 미만과 20%대 비율로 하라'는 인사 방침을 받았다.
당시 고 노무현 대통령은 국회 등지에서 국정원의 출신 지역 편중 문제가 제기되자 국정원 승진 인사에서 출신 지역이 편중되지 않도록 지시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따라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은 인사팀에 4급 승진자의 경우, "영남출신은 40% 미만으로 선출하고 호남 출신은 20% 이상 뽑으라"고 지시 했다.
이 지시에 따라 국정원은 실제 인사대상자를 취합했고 그 결과, 승진대상자 46명 가운데 영남 출신은 60.9%인 반면 호남 출신은 8.6%로 나타났다. 영남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이다.
인사팀장 김모 씨는 원장의 요구대로 지역 비율을 맞추기 위해 조정된 승진안을 마련했다.
그 결과 김 씨는 승진 대상자인 직원 문모 씨의 출생지가 '경북 영일'로 인사파일에 적시돼 있었지만 실제 출생지는 '전남 해남'이라고 국정원장에게 설명한 뒤 문 씨의 인사자료상 출생지를 전남으로 바꿔치기 했다.
호남출신 대상자가 20%에 훨씬 못미치자 지역 바꿔치기를 한 것이다.
실제로 문 씨는 출신지가 바뀐 탓인지 호남출생으로 된 뒤 승진을 했다.
문 씨는 국정원 조사 과정에서 "자신의 본가는 조부가 거주하는 경북 영일이지만 아버지가 군인으로 월남에 파병중이어서 어머니가 친정인 전남 해남에서 본인을 낳았다"고 주장했으나, 1심 법정에서는 "어머니가 출산을 전후해 3개월여간 전남 해남군에 머물렀고 그 무렵에는 아버지가 월남에 있지 않았다"고 진술을 번복했다.
하지만 당시 국정원 인사팀은 2007년 12월 10일 4급 승진인사가 종료되자마자 만 하루 만에 원장과 기조실장, 총무 관리국장의 승인을 받아 문 씨의 출생지를 '경북 영일'로 다시 환원시켰다.
국정원의 이같은 석연치 않은 조치는 정권교체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당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기 불과 1주일 전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문 씨의 출생지는 환원됐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국정원은 자체조사를 벌인 뒤 인사과장 김모 씨를 파면시켰다.
직원의 출생지를 수정한 것이 '허위 정보'를 입력한 것(공전자기록 변작 및 그 행사죄)이고 원장의 지시를 받아 출생지를 수정한 행위는 '권한 남용 행위'(국가공무원법, 국정원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이유였다.
김 씨는 그러나 "원장의 지시에 따라 인사자료 변경에 가담했고 평소 승진한 문 씨와 별다른 이해관계가 없다"는 점 등을 들어 파면 처분이 부당하다고 국정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1심 법원은 "인사과장 김 씨가 영남 출신인 다른 특정 직원의 승진을 고집하는 바람에 결국 문 씨의 출생지를 변작하는 사태에 이르렀고, 인사가 종료된 지 하루 만에 서둘러 원상복구를 지시한 점에 비춰 재량권 일탈·남용이 맞다"며 파면처분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대법원 3부(주심 이인복 대법관)는 '김 씨에 대한 파면조치를 취소하라'는 항소심 재판부의 의견을 받아들여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문모 씨의 출생지가 호적에는 경북으로 돼 있으나 실제 태어난 곳은 전남인 만큼 출생지를 전남으로 바꾼 것이 허위라고 볼 수 없고, 국정원장의 지시에 따라 출생지를 변경한 점을 고려할 때 해임처분은 지나치다고 판단한 원심은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또 "출생지는 실제로 태어난 곳이나 호적상 출생지 등 여러 의미로 사용되고 있고, 국정원이 과거에도 본적지나 원적지를 기준으로 출생지를 변경하도록 한 점을 고려할 때 김 씨가 인사 후 문 씨의 출생지를 다시 경북으로 바꾼 것도 허위 정보를 입력한 것으로는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김만복 전 국정원장은 "국정원에 김대중 전 대통령 이전의 지역출신, 김대중 정부 이후의 지역 출신간 주도권 차이가 있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