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물을 자랑해 홍천9경가운데 하나로 지정된 용소계곡에 흙탕물이 흐르고 있다.
맑은 물과 수려한 계곡을 자랑하며 홍천 9경 가운데 7경으로 선정돼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홍천 백우산 자락의 용소계곡,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광암리에서 발원해 두촌면 괘석리를 거쳐 천현리까지 10㎞에 이르는 계곡으로 내설악에 버금가는 아름다운 계곡이라 칭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비경을 간직했던 용소계곡이 최근 그 모습을 잃어가며 신음하고 있다. 지난 4월 중순부터 시뻘건 흙탕물이 계곡을 뒤덮으며 경관을 훼손하고 주민들의 생업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 용소계곡이 앓고 있다.육군과학화전투훈련단은 현재 인제지역에 운영 중인 과학화 전투훈련장을 확장하기로 하고 인접한 홍천군 내촌면과 두촌면, 그리고 인제군 일대를 중심으로 전술도로 설치공사를 진행 중에 있다.
전술도로 설치공사는 올 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으며 내년 봄까지 계속될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과학화 전투훈련장이 확장돼 전술도로가 개설되는 곳이 바로 용소계곡의 최상류로 발원지라는 데서 비롯된다.
전술도로 확장이 시작되는 마을 입구에서 기존의 인제군 지역 전술도로까지 맞닿는 고개 정상까지 수 ㎞ 구간에서는 계곡 물줄기 등을 따라 굴착기 등 중장비가 동원돼 도로 개설작업이 한창이다.
용소계곡 상류에서 다리 건설공사가 진행중에 있다.
이 때문에 계곡 상류는 이리저리 파헤쳐진 데다 다리 개설과 도로 확장 작업에서 발생한 토사들이 계곡으로 유입되며 뻘건 황토물이 하류로 흐르고 있다.
광암리 이장인 이모 씨는 "군 당국이 침전 저류조를 설치해 흙탕물 발생을 최소화한다고 했지만 제대로 설치되지 않아 토사물이 계곡에 그대로 들어오고 있다"고 성토했다.
또한 "민간이 하는 도로개설 작업이라면 이같이 방치되지 않았을 것이고 요즘 장마철이라 비라도 내리는 날에는 용소계곡이 핏물로 물들여진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흙탕물이 내려오고 있다"며 울분을 참지 못했다.
작전도로 건설현장에서 발생되고 있는 흙탕물
주민 박모 씨는 "군 작전상 도로를 만드는 것으로 알았는데 이렇게까지 훼손하겠다는 것은 아닐 것으로 생각했다며 용소계곡은 대한민국에 몇 남지 않은 생태계가 잘 보존된 곳인데 처참하게 훼손됐고 대한민국에 이런 사례는 없다"고 강조했다.
주민들은 군 당국이 지난 2011년 환경영향평가에 대한 주민설명회에서 "비가 내릴 때는 우수와 토사 유출량은 있겠으나 부유 토사 발생으로 인한 영향은 적을 것이라고 알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사가 본격화되자마자 굽이굽이 물길을 따라 투명한 물이 흘렀던 계곡에는 거품을 머금은 시뻘건 흙탕물이 내려오고 있어 군 당국이 주민을 속였다"며 분개했다.
▼ 주민들의 생계도 타격홍천군 내촌면 광암리와 두촌면 괘석리를 가로지르는 용소계곡 주변에는 60여 가구가 계곡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으며 생활하고 있다. 계곡 하류 일부 주민들은 용소계곡 물을 식수로 사용하고 있고 계곡을 따라 10여 가구가 펜션을 운영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계곡 물이 흙탕물로 변하면서 주민들은 생업에도 타격을 받기 시작했다.
A 펜션을 운영하는 이장 이 씨는 "요즘 생명줄인 계곡을 바라보면 밤잠이 오지 않는다며 여름 한 철 용소계곡을 찾는 관광객들로 1년을 먹고 사는데 올여름 어떻게 버텨날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용소계곡 물이 거품을 머금은 흙탕물로 변해 있는 펜션 물놀이장
펜션 예약을 위해 사전 답사를 온 관광객들은 계곡의 흙탕물을 보자 예약 의사를 접고 있고 이미 예약했던 관광객들로부터는 환불 요청이 잇따르고 위약금까지 물 처지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B 펜션 주인 김모 씨는 "지난 주말 펜션을 찾은 손님 6명이 계곡이 흙탕물이라며 환불을 요구해 엄청나게 손해를 봤는데 이 상항이 계속되면 장사할 집 없고 망한다고 봐야 한다"며 분개했다.
▼ 주민들 군 당국 상대로 강하게 반발주민들이 군 당국의 작전도로 공사를 원천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주민들은 공사로 발생하는 피해 정도가 주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고 강한 어조로 말하고 있다.
공사로 인한 훼손, 또는 흙탕물 정도가 웬만하면 참겠는데 현재 상황은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는 실정이라 그대로 참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주민들은 군 당국에 흙탕물 발생 억제를 촉구하고 영업 손실에 따른 보상 요구를 검토하는 등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장 이 씨는 "주민회의를 거쳐 피해 보는 부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와 국가를 상대로 한 공사중지 가처분신청 등 생존권 유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검토하고 대응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국방부에 다시 건의해 용소계곡에 맑은 물이 흐르도록 강력한 조치를 요구하는 한편 공사 차량 진입을 물리적으로 막는 실력행사도 고려하고 있다"고 압박했다.
전술도로 공사현장에서 5km 하류의 계곡 물도 여전히 흙탕물이다.
▼ 군 당국의 입장은?군 당국도 주민들의 불만과 요구사항에 대해 알고 있었다.
작전도로 개설공사를 총괄하는 국방시설본부의 한 관계자는 "흙탕물이 발생하는 것에 대해 주민들의 민원이 제기되고 있어 대책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주민들의 강경 대응 방침에 현장에서는 공사가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
현장 사무소 측은 군당국과 협의를 거쳐 최근 이틀 정도 현장 공사를 중단하고 상류에서 흘러내려 오는 흙탕물을 저장하는 물 저장소 2개를 현장 주변에 만들고 있다.
이에 대해 주민들은 책임 면피용이라며 군 당국의 대응책에 신뢰를 보내지 않고 있다.
주민 김모 씨는 "설치되는 물 저장소 개수도 적을뿐더러 장마철이고 계곡이라 비가 오게 되면 다 넘쳐 효과가 없을 것이라며 여름 성수기 공사 중단 등 공사 시기와 작업 강도를 조정하는 등의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용소계곡을 홍천 9경 가운데 홍천 7경으로 지정해 운영하고 있는 홍천군도 흙탕물 발생으로 인한 주민들의 민원에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해 원성을 사고 있다.
이장 이 씨 등 주민들은 "군부대의 막무가내 공사로 인해 홍천군민이 피해를 보는데 군청이 뒷짐만 지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홍천군 관계자는 이에 대해 "군부대의 작전부대 개설공사 사업은 홍천군의 직접적인 인허가가 없는 사업으로 행정처분 대상도 아니어서 주민들의 입장을 대변할 입장이 못 된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