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 4일 오후. 평소 폐동맥고혈압을 앓고 있던 김성은 양(당시 나이 12살)은 아버지와 외출 중 호흡곤란을 호소하며 119구급차로 인근 대학병원에 후송됐다.
아버지 김황수 씨는 딸에게 종종 있었던 왔던 증상이었고, 과거 진료에서 고농도 산소공급만 받으면 회복된 경험이 있기에 큰 걱정 없이 병원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것이 성은 양이 다시 돌아오지 못할 ‘비극’의 시작이었다.
2011년 4월 4일 오후 병원 후송 몇 시간 전 외출 당시 찍은 고 김성은 양과 아버지 김황식 씨의 사진. (사진 = 김황식 씨 제공)
■ 폐동맥고혈압 환자에 대한 병원 조치 적절했나
당시 김 양의 호송을 맡았던 119구급대원이 구급일지에 기록한 병원도착 시각은 4월 4일 오후 8시 21분. 구급차에서 미리 환자의 질병과 필요한 산소공급 조치에 대해 병원 측에 말해둔 상태였다.
아버지 김황수 씨는 응급실 도착 직후 병원 측으로부터 어떠한 조치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김황수 씨는 “아무런 응급조치가 없어 직접 평소 휴대하던 가정용 산소호흡장치를 연결해 딸에게 씌웠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10분 정도 지난 뒤에야 여자 의사가 나타났지만, 자가호흡을 하던 딸에게 앰부배깅(수동 호흡 조치) 조치를 해서 상태가 더욱 악화됐다”고 주장했다. ”딸이 평소 호흡곤란으로 종종 응급실 진료를 받아 왔지만 앰부배깅을 시도한 사례는 없었다“는 것이다.
이후 성은 양의 상태가 나빠지자 의료진은 기관삽관을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두 번째 시도 끝에서야 삽관에 성공했다. 하지만 기관삽관 이후 폐혈관확장제인 질소가스가 즉시 공급되지 않았고 잠시 진정되던 성은이의 상태는 더욱 악화됐다. 결국 심폐소생술 끝에 중환자실로 옮겨지고 나서야 질소가스가 공급될 수 있었다.
수동 호흡 장치인 앰부백.
■ 호흡장치 이탈과 두 차례 산소공급기 고장
그러나 다음 날 아침 중환자실에서 회복중이던 성은이에게 치명적인 사고가 발생했다. 인공호흡기로 산소를 공급하던 기도삽관이 이탈한 것이다. 이후 재삽관까지 13분이 소요됐고 사실상 그동안 산소 공급이 중단된 것이나 다름없던 성은이는 준 뇌사 상태에 빠졌다.
비극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성은이의 산소 공급을 돕고 있던 질소발생기에서 4월 9일과 16일, 두 차례에 걸쳐 똑 같은 기계고장이 발생했지만 신속한 조치가 이뤄지지 못했다. 특히 두 번째 고장 때는 심폐소생술까지 가는 위급한 상황이 벌어졌다.
결국 성은이는 6월 4일 새벽, 응급실에 들어간 지 두 달 만에 주검으로 병원을 나서야 했다.
CBS 취재진은 경상대학교병원 측의 설명을 듣기 위해 공식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검찰조사 진행중인 사안이라 답변할 수 없다’고 알려왔다.
경상대학교병원 측의 기계 고장과 관련된 진료기록. (사진 = 의료소비자시민연대 진료기록 분석 캡쳐)
■ 피해자에게 가혹한 ‘의료사고’ 입증 책임
현재 해당 사건은 창원지검 진주지청에서 조사중이다.
진주지청 안병익 공보담당검사는 “해당 사건은 현재 대한의사협회 감정 결과를 바탕으로 불기소 의견으로 접수됐다"며 그러나 "다른 대학병원 증거자료 채택을 요구하는 유가족 요청으로 시한부 기소중지 상태며 해당 자료가 나오면 반영해 처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사고의 경우 입증책임이 환자에게 있고, 관련 자료는 병원 측이 가지고 있는 상태다. 또한, 형사사건의 경우 대한의사협회 감정결과가 절대적이기에 검찰 기소 자체가 힘들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6월 4일 사망한 고 김성은 양 영정사진.
의료시민연대 강태언 사무총장은 “전문성을 이유로 의료사고에 침묵하며 객관성이 결여될 수 있는 대한의사협회 검증 결과는 의료사고 피해자들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강 사무총장은 “성은이의 경우 서너 가지 복합적인 사고가 발생한 것”이라며 "병원측의 조치가 이해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현재 김황수 씨 부부는 딸이 주로 진료 받던 대학병원 측에 진료 재감정을 의뢰한 상태다.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경상대학교병원 앞에서 1인시위 중인 부부는 ‘다시는 성은이와 같은 의료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진실을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하며 눈물을 닦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