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의 자산가치의 일정 비율 이하로 대출 규모가 정해지는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이 가계부채의 부실위험을 줄이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LTV 등 주택대출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논의 중인 상황에서 시사점이 큰 대목이다.
한국개발연구원 김영일 연구위원은 "가계부채의 위험에 대한 이해와 위험관리체계의 설계방향" 보고서에서, 가계부채가 임계치에 도달했지만 부채가구의 순자산 여력은 양호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체 가계부채의 50% 정도가 소득 또는 순자산 상위 20% 가구에 분포하고 있고, 가계부채의 75%는 소득 또는 순자산 상위 40% 가구에 몰려있어, 빚을 갚을 능력은 비교적 양호한 편이라는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그나마 가계부채의 상환 여력이 양호한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은 LTV규제 덕분이었다. 우리나라의 LTV 비율은 담보유형과 금융업권 등에 따라 50~70%까지 차이가 나지만 평균 50% 정도를 기록하고 있다. 집 값의 절반 정도까지만 대출을 받았다는 뜻이다.
영국과 미국, 프랑스, 캐나다, 독일 등 주요 선진국의 LTV규제 상한이 80%를 넘어서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의 LTV 비율은 매우 낮은 편이다. 김 위원은 이처럼 자산가치 대비 담보대출 비율이 낮은 덕택에, 주택가격이 하락하더라도 가계부문에서 이를 흡수하는 손실 흡수력이 적지 않다고 평가했다.
또 은행권 금융기관의 대손충당금과 자기자본 여력도 비교적 높은 수준이어서 금융기관의 금융안정성도 크게 나쁘지는 않은 것으로 분석했다.
다만 비은행권의 경우는 소득과 순자산 여력이 열악한 가구를 대상으로 많은 대출을 내줬기 때문에 비은행권 금융기관에 대한 점검이 보다 강화될 필요가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한편, 보고서는 현재 가계부채의 가장 큰 문제는 자산과 부채간의 유동성 불일치 문제라고 강조했다. 자산의 대부분이 부동산에 편중돼 있어서 곧바로 현금화가 어려운 반면, 주택담보대출의 상당수는 만기 일시상환의 형태이기 때문이다.
대출 만기가 되는 시점에 금융시장의 신용경색이 발생하거나, 집값이 급락할 경우 차환위험이 상승하고, 이것이 다시 부채축소 압력 증대와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초래될 수 있다.
보고서는 이에따라 단기·일시 상환대출을 중장기 분할상환대출로 전환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또 대출이 중장기 분할상환 형식으로 전환될 경우 가계부문의 과다 차입 경향을 줄이게돼 가계부채를 줄이는데도 기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