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기와 이태임의 '내숭 없는(?)' 노출연기로 뒤늦게 화제를 모은 영화 '황제를 위하여'(감독 박상준)는 황제를 꿈꾸는 수컷들의 이야기다.
'비열함은 기술이 되고 배신은 재능이 되는 도박판 같은 세상, 모두가 황제를 꿈꾼다'는 카피에서 드러나듯 뒷골목 세계를 무대로 현란한 도시 불빛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불나방처럼 뛰어든 남자들의 하루살이 같은 인생을 그렸다.
촉망받는 야구선수였지만 승부조작에 연루돼 모든 것을 잃게 된 이환(이민기). 하지만 타고난 승부근성과 배포가 큰 그를 부산의 사채업과 도박판을 주름잡는 황제 캐피탈의 대표 상하(박성웅)는 눈여겨본다.
돈 앞에서는 냉정하지만 부하를 의리와 신뢰로 이끄는 상하는 다른 조직원의 반대에도 이환을 수하로 끌어들인다. 이환은 젊은 혈기와 비상한 두뇌로 자신의 영역을 넓히고 첫눈에 반한 룸살롱 템테이션의 여사장 연수(이태임)와 연인관계로 발전한다.
하지만 상하가 이환의 질주에 제동을 걸고, 이환이 실질적인 권력인 한득 회장(김종구)과 밀담을 나누면서 둘의 관계에 균열이 생긴다.
좁은 모텔복도에서 마치 동물의 왕국처럼 서로 죽고 죽이는 집단 칼부림 장면으로 시작되는 이 영화는 욕망과 폭력이 난무하는 이미지의 향연을 펼친다.
냉혹한 뒷골목 세계를 그린 대다수의 도시 느와르처럼 배신과 음모가 자행되고 비극은 예고돼 있다. 순정과 의리가 불모지에서 싹을 틔우는 듯하나 이야기의 개연성이 떨어지면서 인물들의 감정과 행동은 설득력을 잃는다.
이환은 마치 수컷의 타고난 본능인양 높은 곳을 향해 질주한다. "멈출 수 있었을까"라고 자조하는 순간도 있으나, 애초 그럴 의지가 있었는지 의문이 든다.
상하는 마치 '신세계'의 정청(황정민)처럼 자신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이환에게 형제애를 느끼나 상하의 그런 내면은 드라마가 뒷받침되지 않으면서 제대로 표현되지 않는다.
소위 행동대장에 불과한 두 남자가 거대 권력에 도전장을 던지려고 시도했나? 이 또한 모르겠다. 한마디로 대본이 탄탄하지 않다.
원래 남자들 세계가 그렇다는 듯 배신과 음모, 폭력의 드라마가 구태의연하게 펼쳐진다. 마치 1980년대 만화대본소를 기점으로 대량 소비되던 남자만화를 떠올리게 한다.
드라마가 설득력을 잃으면서 폭력적 장면을 감각적으로 이미지한 방식도 불편하다. 서늘한 칼질 소리가 귓가에 맴돌면서 과연 무엇을 위한 시청각의 향연인지 회의가 든다.
이민기와 이태임의 베드신은 자극적이고 선정적이다. 하지만 이 또한 남성의 시선에서 그려진 관계로 눈길은 끌지만 덧없이 소비되는 이미지로 다가온다.
여성관객에게는 재미보다 불편함을 더 많이 안겨줄 영화가 아닌가. 여성들도 공감할, 남성들의 비정한 세계를 그린 느와르 장르에서 '신세계'(2012)를 뛰어넘을 작품을 만나기란 쉽지 않을 듯하다. 청소년관람불가로 11일 개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