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 신도들이 26일 경기도 안성시 금수원에서 신도들을 체포한 검찰에 대한 항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박종민기자
1390억원대 횡령·배임·탈세 혐의를 받고 있는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잠적하면서 검찰과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 사이의 '여론전'에 불이 붙고 있다.
유 전 회장이 구원파 신도들 뒤에 숨어 도피행각을 벌이면서, 검찰수사에 혼선을 주는 전략을 펴고 있다는 분석이다.
도주한 유 전 회장 신병확보에 온 힘을 쏟아야 할 검찰이 때 아닌 여론전에 휘말려 '주춤'하고 있다.
구원파, "검찰 수사는 종교 탄압" 외치며 부담지워
유 전 회장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인천지검 특별수사팀(팀장 김회종 차장검사)은 유 전 회장의 경영비리가 궁극적으로 세월호 참사와 연관이 있다는 전제에서 수사에 착수했다.
수사 초기부터 일관되게 "구원파 등 특정 종교단체를 겨냥한 수사가 아니라 유 전 회장의 경영비리에 대한 수사"라는 점을 강조해왔지만, 구원파 측은 "검찰 수사는 종교탄압"이라고 주장해 왔다.
구원파 측은 유 전 회장이 검찰의 소환통보에 불응하면서 머물렀던 금수원 앞에 '인의 장막'을 치고 수사기관의 진입을 막았다.
유 전 회장이 신도들의 차를 얻어타고 지난 17일 전후로 금수원을 빠져나가기 전까지 구원파 측은 '전면전'까지 언급하며 1000여명이 모여 연일 시위를 벌이는 등 강경 대응했다.
검찰로서는 물리적 충돌을 감수하고 '종교 단체'에 강제진입하는 것에 대해 큰 부담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렇듯 '종교탄압'이란 프레임을 밀고 나가며 검찰의 손발을 묶은 뒤 유 전 회장을 빼돌린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구원파 신도들이 도피를 도운 정황이 발견되면서 이러한 주장은 힘을 얻고 있다. 검찰은 최근 유 전 회장에게 말린 과일과 생수, 휴대전화 등을 제공하며 도피를 도운 혐의로 구원파 신도 4명을 체포해 조사 중이다.
또 구원파 신도로 추정되는 30대 여성도 유 전 회장과 함께 도피한 혐의(범인도피 혐의)로 검찰에 체포돼 조사를 받고 있다.
때아닌 '현수막 회유' 논란.... 檢, 구원파 '작전' 걸려들었나구원파(기독교복음침례회)는 검찰이 '김기춘 실장 갈 데까지 가보자'라는 금수원 현수막을 떼달라고 요청한 사실을 부인한데 대해 26일 해당 검사와의 통화 내역을 공개하며 검찰 측 주장을 다시 반박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수사팀 내부에서 그런 전화를 한 사람이 없고, 통화 내용 자체도 문제될 것이 없다"고 강하게 부인했지만, "수사팀이 아닌 '다른 검찰 관계자'가 통화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이날 구원파 측이 공개한 녹취록에 따르면 검사는 구원파 관계자에게 "그런 현수막을 들고 하지 말라. 윗 분이 안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과 여론이 안 좋다"고 말했다.
이어 "'오대양 사건과 관련해 명예를 회복했고 대한민국의 법질서를 존중하겠다. 유병언 전 회장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내용의 현수막을 써붙이라"고 언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소환일인 16일 오전 인천 남구 인천지방검찰청에서 취재진이 유 전 회장의 출석을 기다리고 있다. 유 전 회장은 10시를 넘긴 시간에도 출석하지 않아 사실상 소환에 불응했다. 박종민기자
검찰 관계자는 "확인해보니 (인천지검) 수사팀 내부에는 누구도 전화로 그런 말을 한 사람이 없었다"면서 "수사팀이 아닌 검찰 관계자가 그런 말을 했을 수는 있지만 (통화내용에) 문제되는 내용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정문 앞에 현수막 걸고 앞에서 신도 수백명이 진입을 방해했다. 금수원 앞 현수막은 그런 상징성이 있기 때문에 제거할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반박했다.
이를 두고 국민적 관심이 쏠린 사건을 수사하며 유 전 회장의 소재파악에 온 힘을 쏟아야 할 검찰이 구원파의 '작전'에 휘말려 힘을 빼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한편 이날 오전 구원파 측이 취재진에 "유 전 회장이 새벽 2시쯤 금수원에 다시 돌아왔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전달해 검찰이 확인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몇 시간이 지난 오후 2시쯤 기자회견을 열어 "유 전 회장은 금수원에 없다"고 못박으면서 검찰 수사에 혼선을 초래했다.
또 검찰이 현상금을 기존 5천만원에서 5억원으로 대폭 상향한 것에 반발하며 세월호 진상규명에 대해 5억원을 걸겠다고 '맞불'을 놓았다.
구원파 측은 취재진에게 금수원을 공개하며 유화적인 제스춰를 취하기도 했지만,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10만 성도를 다 잡아가도 유병언 전 회장은 안된다"며 강경한 입장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러한 모습들은 구원파 측이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사용하며 여론전에서 검찰보다 우위를 차지하려는 시도가 아니냐는 분석이다.
檢, '여론전' 경계하며 강력대응 시사 검찰은 유 전 회장이 금수원을 빠져나간 뒤 머물던 은신처를 급습하고 도피를 도운 구원파 신도들을 체포하는 등 신병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검찰은 26일 구원파 측의 기자회견이 끝난 직후 "복수의 검찰 측 협력자에 따르면 현재 90%의 신도들은 유 전 회장 범죄에 환멸을 느끼고 검찰 수사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있는데, 극소수가 강경대응을 선동해 극심한 내부 갈등이 있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여러가지 사실관계를 왜곡하고 상황을 극한으로 끌고 가는 면이 있어 안타깝고 유감스럽다"며 구원파 측 주장을 비판했다.
또 "유 전 회장 검거에 전국 검찰과 경찰이 총력을 다하고 있고, 현상금을 올린 뒤 제보전화도 증가하고 있다"고 압박했다.
지난 25일에는 김진태 검찰총장이 직접 수사팀을 찾아 격려하며 "유 전 회장이 곧 잡힐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검찰과 구원파 간 '줄다리기'가 더욱 팽팽해지면서, 이번주가 유 전 회장 수사에 큰 고비가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