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나흘째인 지난달 20일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진도 실내체육관과 진도항(옛 팽목항)에는 수습된 시신의 인상착의 전단지가 처음으로 나붙기 시작했습니다.
확인된 사망자 숫자가 40명을 막 넘어갈 즈음이었습니다.
여학생 신장 161cm, 남색 후드티에 검정색 아디다스 바지, 이마에 여드름이 많음.
남학생 신장 178cm, 검정색 맨투맨티에 청바지, 얼굴이 갸름하고 왼쪽 광대뼈에 점.옷차림과 간략한 신체 특성만으로도 피붙이인 걸 알아챈 학부모들은 오열하며 시신이 들어오는 진도항 검안소로 한걸음에 내달렸습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실종자 가족들의 DNA 샘플을 채취하자는 얘기가 나온 것도 이맘때쯤입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많은 엄마들은 "내 강아지는 살아있다"며 방송에서 나오는 '에어포켓'이란 단어에 귀를 쫑긋 세웠습니다.
그렇게 그렇게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지난한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한줄기 희망은 구조당국을 향한 분노와 절규로, 그리고 체념과 무기력함으로 바뀌었고 이는 다시금 실낱같은 기대로 되살아나곤 했습니다.
세월호 침몰 열여드레째인 3일 확인된 사망자 숫자는 어느덧 230명을 넘어섰습니다.
그동안 보지 못한 인상착의 전단지가 붙은 것은 이날입니다.
232번째 남학생 추정, 앞니 4개 탈락, 4층 선수 중앙 좌현 2번째 격실 발견.
233번째 여학생 추정, 앞니 4개 탈락, 4층 선미 중앙룸 발견.
235번째 남학생 추정, 앞니 2개 탈락, 4층 선수 중앙 좌현 5번째 격실 발견.실종자 가족들과 자원봉사자들은 웅성거렸습니다.
"어떡하며 좋냐, 얼마나 아팠을까" "아마 배 뒤집어지면서 뭐에 크게 부딪쳤나보다" "우리 아이도 저렇게 다쳐서 혹시나 못찾으면 어쩌지?" .
DNA로 신원확인은 가능하지만 치아기록 역시 중요한 신원 판별 수단입니다.
한 학부모는 "그래도 우리 애는 치아 교정기를 껴서 괜찮을거야"라고 스스로를 위안했습니다.
사고 첫날 학부모들과 안산에서 함께 이곳 진도에 내려와 20일 가깝게 취재 중이지만 치아가 빠졌다는 인상착의는 처음 봤습니다.
갑자기 한 어머니의 최근 절규가 머리를 때렸습니다.
"우리 애 머리카락이 다 빠져있다, OO야! 엄마라고 한번만 불러봐 제발...우리 애 상태가 왜 이래! OO야 한번만 엄마라고 불러줘".
"가족의 정신적 고통을 덜고 희생자에 대한 나은 기억을 간직할 수 있도록 희망하는 가족에게 훼손된 시신을 복원하는 서비스를 정부가 지원하기로 했습니다"라는 박승기 범정부 사고대책본부 대변인의 멘트가 나온 것도 이날입니다.
저는 기자이지 의사는 아닙니다. 아이들 앞니가 왜 빠졌는지 모릅니다.
배가 넘어가면서 자판기에 부딪쳤을 수도 있고 원래 치아 상태가 좋지 않았던 학생들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고발생 열여드레만에 15분 간격으로 수습된 아이들의 앞니가 공교롭게도 동시에 빠져있었던 겁니다.
아직도 차가운 바다 속에 66명의 실종자들이 남아 있습니다.
진도항에 남은 한 어머니는 "죽은 것도 억울해 죽겠는데 죽은 애 살려오라는 거 아니잖아요, 제발 죽은 애 건져만 달라는 거잖아요"라며 울부짖고 있습니다.
진도항에 남아있는 가족들의 유일한 희망은 이제 아이들을 찾는 겁니다.
기적이라도 일어나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제발 한번만이라도 안아보고 영원히 떠나보내겠다는 겁니다.
아주 조금만 더 욕심을 부리자면 내 새끼인줄 알아볼 수 있을 때 꽉 품어보고 떠나보내자는 겁니다.
기적은 아니라도 이 작은 바람만큼은 꼭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진도항 방파제에서는 엄마 아빠들이 아이들이 좋아하던 햄과 고기를 숟가락으로 정성스레 담아 바다에 던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