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 이틀째인 17일 오전 전남 진도군 관매도 인근 사고 해상에서 군.경 합동 구조팀이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윤성호기자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공직사회를 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그 어느 때보다 차갑다. 공무원과 산하단체, 이익단체, 사기업 사이에 얽히고설킨 유착 관계가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사고의 발단이 됐고 촉각을 다투는 구조현장에서조차 공직사회의 부처이기주의와 제 밥그릇 챙기기, 복지부동이 여실히 드러났다. 썩어가는 공직사회의 민낯을 지켜본 국민들 사이에서는 더 이상 공직사회를 이대로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CBS 노컷뉴스는 6차례에 걸쳐 공직사회 개혁의 필요성과 그 방향을 살펴보는 연속기획을 마련했다.[편집자주]
(관련기사: CBS노컷뉴스 2014. 5. 5 업자들의 회사 운영 제1원칙은 '공무원 관리')세월호 참사가 빚어진 지난 16일 오후 6시 35분, 해군 최정예 잠수요원인 특수전전단(SSU) 대원 4명이 거친 물살을 뚫고 해상과 선체를 연결하는 하잠색(잠수부용 인도선)을 최초로 설치했다. 하지만 SSU 대원들은 기껏 설치한 하잠색을 이용해 선체 수색을 하지 못하고 그동안 하잠색 설치에 실패를 거듭한 해경 잠수요원들에게 그 자리를 내줘야 했다. 해군은 “탐색구조를 주도하고 있는 해경에서 잠수작업 통제로 해경 잠수팀 우선 입수”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부처이기주의’ 망령이 세월호 참사에서도 여실히 드러난 순간이었다.
수색.구조현장 지휘의 책임은 해경이 맡고 해군은 해경을 지원한다는 원칙은 사고가 발생한 직후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휘라인을 일원화해 현장의 혼란을 줄인다는 이런 원칙은 일면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천안함 선체 수색과 은하3호의 추진체 인양 등을 통해 쌓은 해군 잠수요원들의 전문성과 노하우는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해경은 한번 잡은 주도권을 내려놓기 싫고 해군은 수색작업 책임론을 피해갈 수 있어 안도의 한숨을 쉰다.
박근혜 대통령이 각 부처와 소속 공무원들에게 가장 강조한 부분이 바로 ‘부처이기주의 타파’와 ‘부처 간 협업’이었다. 하지만 소중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촉각을 다투는 시간에도 부처 간 협업은 커녕 부처이기주의가 보다 큰 힘을 발휘했다. 비단 구조.수색 현장뿐만 아니라 사고 현황 파악과 대응책 마련 등 사고 이후 전 과정에서 부처 간 협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오히려 혼돈 속에 우왕좌왕 하는 모습을 전 국민은 지켜봐야 했다.
세월호 여객선 침몰 사고 11일째인 26일 오후 전남 진도 관매도 인근 사고 해역 수색작업을 위해 정박한 언딘 리베로 바지선에 해군 해난구조대(SSU) 잠수사가 수색을 마친 뒤 선박에 오르고 있다. 황진환기자
역대 정권마다 부처이기주의는 존재했다. 특히 현 정권이 부처이기주의 타파를 외쳐온 만큼 부처이기주의의 폐해가 더욱 부각됐다. 박 대통령은 당선인 신분이었던 지난해 1월 각 부처가 정부조직개편안과 관련한 업무배분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자 “부처이기주의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이제는 그런 식으로 해서는 결코 어떤 일 하나 제대로 할 수 없다”고 첫 경고장을 날렸다.
취임 이후에도 박 대통령은 낙동강 녹조 현상과 관련한 환경부와 국토교통부의 공방, 취득세 인하를 둘러싼 국토부와 안정행정부가 불협화음, 공항 입국장 면세점 설치를 둘러싼 국토부와 기획재정부간 힘겨루기, 다문화 정책을 둘러싼 여성가족부와 법무부, 고용노동부, 문화체육관광부의 밥그릇 싸움 등 부처이기주의에 대해 수차례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이번 참사에서 드러났듯이 변한 것은 없었다.
부처이기주의는 자신의 일이 아닌 것에는 절대 관여하지 않는다는 공무원들의 복지부동, 무사안일 문화에서 기인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행정연구원은 지난해 4월~5월 사이 중앙과 지방공무원 1,000명을 상대로 공무원의 복지부동과 무사안일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다. 이 조사에서 “공무원의 복지부동과 무사안일의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35.4%는 “공연히 일을 만들었다가 잘못하면 책임지게 되므로”라고 응답했다. 또 “열심히 일해도 보상이 미흡해서”(15.1%), “합법성 위주의 감사 때문에”(14.5%), “새로운 것을 싫어하는 보수성 때문에”(8.2%) 등이 그 뒤를 이었다.
한 중앙부처 고위공무원 김 모 씨는 “민간기업과 달리 공직사회는 성과에 대한 신상필벌 시스템이 거의 작동하지 않는다”면서 “그런데 부처이기주이를 타파하라고 해서 굳이 안 해도 되는 일을 떠맡았다가 행여나 잘못되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자신이 져야 되기 때문에 차라리 가만 있는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전직 장관 정책보좌관 출신인 이 모 씨 역시 “세월호 침몰 당시 진주VTS와 세월호간 교신 내용을 보면 담당자는 ‘승객을 빨리 선체 밖으로 대피시켜라’고 하지 않고 계속 ‘대피시킬지 말지 판단을 해서 결정을 해라’고 하지 않느냐”고 반문한 뒤 “상황 판단이 안 된 부분도 있겠지만 혹시나 선체 밖으로 대피시키라고 지시했다가 잘못돼 피해가 더 생기면 그 책임을 고스란히 그 담당자가 져야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씨는 “정권이 바뀌고 신임장관이 취임하면 이런 복지부동이나 무사안일 문화를 바꾸기 위해 독려도 해보고, 질책도 해보지만 공무원들은 꿈쩍도 하지 않더라”면서 “이미 오랫동안 고착화돼 있어 이를 깬다는 것이 5년 단임 대통령제에서는 불가능한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