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해상에서 침몰한 여객선 '세월호'에서 승객들이 안간힘을 쓰며 힘겹게 버티는 긴박한 상황에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생존자 김동수씨 제공 동영상 캡쳐)
절체절명의 여객선 침몰현장에서 6살 꼬마 권지연 양의 목숨을 살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주인공은 안산 단원고 2학년 6반 박호진(17)군이었다.
지난 16일 아침 승객과 선원 등 477명을 실은 6천825t급 '세월호'가 갑자기 '와장창' 하는 소리와 함께 선체가 힘없이 기울면서 객실은 일순간 아수라장이 됐다.
배 안으로 갑자기 물이 들이차고 옷장이나 집기들이 한쪽으로 쓰러졌다.
친구들과 함께 수행여행길에 나섰던 박 군은 극도의 공포 속에서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조차 없었다.
가까스로 마음을 가다듬은 박군은 안내방송에 따라 구명조끼를 입고 갑판으로 힘차게 뛰어나가 구명보트 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곳에는 이미 함께 수학여행 온 같은 학교 여학생 친구들이 일렁이는 파도 앞에서 보트에 오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친구들에게 순서를 양보한 박군은 이윽고 자신의 차례가 돼 보트에 오르려는 순간 물에 흠뻑 젖은 채 갑판 위에서 울부짖는 꼬마 한 명을 목격할 수 있었다.
박군은 뒤로 돌아가 아무 생각 없이 아기를 들쳐 안고 구명보트에 뛰어올랐다.
'무조건 얘를 안고 가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찰나였다, 두 사람의 생사를 가르는 순간이었다.
박군은 "아기가 물에 흠뻑 젓은 채 울고 있기에 아무 생각이 없이 안고 구명보트로 뛰어내렸다"며 "섬에 도착해서 구조대원들에게 품에 안고 있던 아이를 건넸다"고 말했다.
박군은 그러나 "지금은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며 악몽을 떠오르기 싫은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박군이 살린 권양은 이날 부모, 오빠(7)와 함께 화물트럭에 이삿짐을 한가득 싣고 제주도 새집으로 이사 가던 길이었다.
하지만, 함께 이삿길에 올랐던 부모와 오빠는 17일 오후까지 연락이 닿지 않고 있어 주변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사고 당시 권 양 어머니와 오빠는 마지막까지도 막내를 구하기 위해 구명조끼를 입히고 등을 떠밀어 탈출을 도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권 양은 간호사들에게 "엄마와 오빠가 조끼를 입혀 위로 밀어 올렸다"며 사고 당시를 설명했다.
권 양의 아버지는 서울 생활을 끝내고 감귤 농사를 지으려고 제주도 귀농을 결정했던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