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 이틀째인 17일 오후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있는 전남 진도실내체육관을 찾은 박근혜 대통령이 피해 가족들의 요구사항을 들은 후 관계자들에게 조치를 내리고 있다. (사진=윤성호 기자)
박근혜 대통령은 17일 오후 여객선 침몰사고 실종자 가족들이 머물고 있는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체육관을 찾아 가족들을 위로했다.
박 대통령은 진도 앞바다 사고 해역을 방문해 군·경·민간인의 수색·구조활동을 독려한 뒤 진도체육관으로 이동, 실종된 가족 소식에 애를 태우고 있는 가족들을 위로했다.
청와대는 실종자 가족들이 감정이 격해지면서 불상사가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못해 제3의 장소를 방문하는 방안을 고려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가족들을 찾아 위로해야 한다는 뜻을 굽히지 않으면서 체육관 방문이 성사됐다.
박 대통령이 오후 4시 20분쯤 가족들이 모여있는 진도체육관에 입장하자 기다리던 학부모들은 울음을 터뜨리며 오열했고, 일부에서는 고성이 터져나왔다.
취재진들이 사진을 찍느라 박 대통령의 입장이 지체되자 성난 가족들이 취재진들에게 물병을 던지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 과정에서 학부모들과 취재진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박 대통령이 분노와 오열, 혼란을 뚫고 체육관 한켠에 마련된 단상에 오르자 학부모들은 박수로 맞이하며 기대를 나타냈다.
박 대통령은 먼저 "한 잠도 못주무셨을텐데 얼마나 걱정이 크셨습니까?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들에게 무슨 말을 해도 답답하고 애가 탈 것입니다"라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이어 수색·구조현장에 다녀온 소식을 전하면서 "지금 어떤 위로도 될 수 없을 정도로 참담하겠지만 희망을 잃지 말고 구조 소식을 모두 함께 기다려 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있을 수 없는 일이 발생한 것에 대해 철저한 조사와 원인 규명을 해서 책임질 사람은 엄벌하겠다"고 책임자 처벌 의지를 분명히 나타냈다.
하지만 가족들은 '구조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경찰들이 말을 듣지 않고 있다'는 등의 불만을 나타내며 거세게 항의해 한때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가족 대표들은 실시간으로 구조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상황판을 만들어 줄 것과 아무리 물살이 세고 캄캄하더라도 잠수부를 투입해서 식당칸이나 오락칸 등에 갇힌 생존자들을 구조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에 박 대통령이 '상황이 어떻하더라도 계속 작업을 시도'하겠다고 약속하자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이 "현장에서 구조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어떤 여건에서도 잠수사 500여명을 투입하고 있다"고 말을 받았다.
그러자 실종자 가족들이 고성을 지르며 "거짓말 하지 마라"고 거세게 항의했고, 그제서야 김 청장은 "한번에 500명이 들어갈 수 없고 나눠서 들어간다. 최고의 민간업체를 동원해 오늘도 수색하고 있다"고 말을 바꿨다.
하지만 가족들은 "현장 구조 상황을 낮이건 밤이건 볼 수 있도록 화면 조치해 달라. 그래야 거짓말인지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정부 당국에 대한 불신을 여전히 드러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던 박 대통령은 "(현장에 투입된 인력들은) 천안함 구조했던 사람들이다. 그런 경험도 있어서 자신들이 모든 걸 동원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현장에서 만났다"고 가족들을 안심시켰다.
이에 가족들은 다소 안도한 듯 현재의 생존자, 배 안에 승선했던 승객들의 분명한 명단을 달라고 요구했지만, 박 대통령을 수행한 이주영 해양수산부장관은 정확도가 떨어지고 명단공개를 꺼리는 가족도 있다며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가족들이 원하면 신속하게 알려줄 수 있도록 할 것과 구조 상황이 어떤지 가족들에게 실시간으로 알려줄 것을 지시했다.
특히 "내일 새벽에 크레인이 도착한다고 들었는데 크레인이 선박을 묶어 힘으로 다 들어올리지 못한다 해도 어느 정도 들어올리면 잠수부가 들어가기 수월하다. 이런 세세한 얘기를 가족들이 들어야 한다"고 말한 부분에서는 학부모들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학부모들은 경찰에 대해서는 불신감을 좀처럼 가라앉히지 못했다. 김 해경청장이 "잠수부가 배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진입로 확보가 필요하다"고 말하자, 학부모들은 "사람 다 죽고 난 다음에 넣을래!"라고 고성을 질렀다.
학부모들은 "경찰들이 말을 안듣는다"고 했고, 박 대통령은 "그럴 리가 없다. 지금 여러분과 얘기한 게 지켜지지 않으면 여기 있는 사람 모두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가족들의 격앙된 감정을 가라앉히기 위해 노력했다. 이런 박 대통령의 모습에 학부모들은 다시 한번 박수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