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한 여객선 세월호. (사진=해경 제공)
292명의 목숨을 앗아간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지 꼭 20년이 지난 2014년에도 이런 후진국형 대형 참사가 일어날 수 있는지에 대해 모두가 의아해하고 있다.
신고에서부터 침몰까지 2시간 20분 동안 우린 뭘 했느냐, 그것도 17, 8살 학생 325명이 타고 있었고, 동해바다 같은 망망대해도 아닌 섬으로 둘러싸인 연근해에서 당해버린 어처구니없는 참변이었다.
먼저 세월호 승무원들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선장 이모 씨 등을 포함한 승무원 30명이 승선해 있었으나 이들이 학생들의 탈출과 구조에 무슨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많다.
배가 기울고 있고 선체에 물이 들어오고 있는데도 "선실에 대기하라"는 안내 방송을 무려 10여 차례나 했다.
생존자들은 "밖으로 나오면 위험하니 객실에 앉아 있으라. 구명조끼를 입으라는 안내방송이 나왔지만 구명조끼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선장을 포함한 승무원들의 판단 착오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선장 등이 학생들에게 선실에 머무르지 말고 선실 밖으로 나와 갑판이나 밖이 보이는 곳으로 이동하라고 안내방송을 했다면 구조자가 훨씬 많았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승무원들이 너무 당황한 것 같고 배가 기우는데만 치중했다.
그래서 원래 선장이 휴가를 갔고 대타로 기용된 선장 이모 씨의 역량이 문제가 되고 있다. 선장의 나이는 60세다.
선장이 구조 활동을 하지 않고 대피하는데 급급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세월호는 배가 뭔가에 부딪친 이후 바로 신고를 하지 않았다. 단원고 학생의 학부모가 아들의 연락을 받고 해경에 신고를 했다.
정부도 세월호 침몰 사고 뒤처리와 구조작업에 대해 할 말이 없어 보인다
배 승선자와 실종자 수, 구조자 수, 사망자 등의 정정과 발표를 제쳐두고서라도 초동 대응이 아주 미흡했다.
정부도 초기 상황을 오판하는 바람에 재난 대응시스템을 제대로 가동하지 못했다.
해경과 해군이 신고를 받고 바로 출동했다고 하지만 정부도 사고가 별 것 아닌 것으로 판단을 잘못했다.
사고 헬기를 급파하고 진도군과 조도면, 목포시 등에 적극 지시해 가용 가능한 모든 구조장비를 총출동시켰어야 했지만 해경과 해군에 지시만으로 초기 구조작업에 나섰다.
전라남도와 소방서, 산림청의 헬기를 대거 동원했어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신고가 16일 오전 8시 58분에 있었고, 첫 구조작업이 시작된 시간이 42분이 지난 9시 40분쯤이었다.
해난사고가 발생했을 때 초기 한 시간이 모든 것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데도 42분을 허비해버린 것이다.
목포 해경과 해군의 헬기 도착이 늦었고 헬기의 숫자도 처음엔 한두 대에 그쳤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목포 해경과 전남 영암군 삼호면에 있는 해군 기지에서는 사고 해역까지 직선 거리로 30km가량밖에 되지 않아 10분이면 이동할 수 있는 거리를 무려 42분이나 걸렸다.
삼호면 해군기지에는 평소에도 헬기가 여러 대 경납고에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과연 해군기지 헬기 몇 대가 신고를 접수하자마자 출동했는지 의문이다.
또한 헬기의 구조작업은 한 명씩 구조하는 관계로 시간이 더디게 걸려 구명보트를 침몰 여객선 침몰 바다에 떨어뜨렸다면 구조자들이 더 많았을 것이다.
또한 헬기에서 구조대원들이 배로 뛰어내려 선실에 있는 학생들에게 어떻게든 밖으로 나오라고 했으면 실종.사망자가 이처럼 많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특히 진도군 조도면 부근 민간인 고깃배들이 대거 출동한 뒤에야 해경과 군의 구조 작업이 본격화됐다고 한다.
소형 선박이나 고무 보트 같은 소형 어선들만이 침몰 선박 가까이 댈 수 있어 구조작업을 할 수 있는데도 해경과 해군이 초기에 사고 해역에 보낸 고무 보트는 없었다.
정부가 침몰 사고를 접한 초기에 모든 장비와 인력을 투입하지 않은 것은 두고두고 논란을 빚을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