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연예인들이 연루돼 물의를 일으켰던 불법 스포츠 도박에 10대 청소년들도 많이 빠져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학생들이 열광하는 '스포츠'에다, 친구들끼리 흔히 하는 '내기'를 접목한 터라 '불법'이라는 인식이 적었다. 더구나 성인인증도 필요 없고 회원 가입 절차도 단순해 학생들에게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었다.
# 2년 전, 친구 따라 불법 스포츠 도박을 시작했다는 김 모(18) 군. 스포츠 경기를 보며 돈도 버는 친구의 모습을 본 이후로 그의 일상은 달라졌다. 주머니 사정과 경기 일정에 따라 빈도가 달라지기는 하지만 적어도 일주일에 두 번은 '책상 위 검은 창'을 연다.
한 번 할 때마다 베팅 금액은 3~5만 원 정도. 한 달에 15만 원 용돈이 전부인 김 군에게 스포츠 도박은 용돈 벌이 수단이다.
"한 달에 40~50만 원은 번다"는 김 군은 "5만 원 투자해 한 번에 40만 원 번 적도 있다"며 으스대기도 했다.
물론 잃은 적도 있다. 15만 원이 순식간에 사라지기도 했다. 그래서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고, "못 하면 정말 망한다"며 스포츠 도박의 위험성을 말해주기도 했다. 스포츠 도박을 하기 위해 20만 원을 빌렸는데 그걸 다 잃어서, 돈을 갚기 위해 도박을 계속하고 있다는 같은 반 친구를 그 예로 들었다.
그래도 "나는 잃는 것보다 따는 게 많다"는 김 군은 자신이 '경기 분석'과 '승패 맞추기'에 꽤 소질이 있다는 투로 말했다.
# 최모(18) 군은 주말마다 '웨딩홀 서빙 알바'를 한다. 종일 음식을 나르고 치우고 받은 주급 12만 원은 고스란히 스포츠 도박에 들어간다.
고 1이 되던 해 "호기심에 시작했다가 용돈 벌이 되니까 계속 하게 된다"는 최 군. 이는 또래 친구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최 군의 학교는 스포츠 도박으로 아침부터 난리다. 미국 농구 중계가 우리나라 시간으로 오전 9시 무렵부터 중계된다는 것. 한국 농구가 시작되는 오후 6시부터 학생들은 끼니도 거른 채 경기에 집중한다.
"선생님은 그냥 스포츠 좋아하는 애들이 경기 보는 걸로 알아요" 최 군 반 학생은 모두 40명.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교실에서 함께 도박을 한다.
미성년자인 최 군이 가입한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는 모두 세 곳. "휴대전화 번호와 계좌번호만 있으면 돼요" 어린 학생들이 쉽게 불법 사이트에 드나들 수 있는 이유다.
◈ 인터넷·스마트폰으로 어디서든… 성인 여부 확인 無 무방비 노출 2012년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가 불법 도박을 한 16~69세 남녀 1,53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만 18세 이하가 10.8%를 차지했다.
이 가운데 불법 스포츠 도박은 10대 청소년들이 최초로 시작한 불법 도박의 유형으로 가장 많이 선택됐다. 또 청소년들의 스포츠 도박 연간 평균 참여일수는 91일로, 4일에 한 번꼴로 도박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다른 도박에 비해 스포츠 도박은 부정적인 인식이 떨어지고 청소년들에게도 접근이 너무 쉬운 것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한국 도박문제관리센터 관계자는 "상담받은 학생 대부분은 스포츠를 좋아하는 남학생들로, 스포츠 경기를 보면서 돈 내기하는 것을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100% 운에 맡기는 로또 같은 도박과 달리, 스포츠 도박에서 돈을 따는 것은 온전히 경기를 분석하고 승률을 맞추는 '자신의 능력'에 따른 것으로 믿고 친구들에게 이를 뽐내기 위해 계속 하는 경우도 많았다.
또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보편화로, 학생들은 경기가 있는 시간이면 등굣길, 화장실, 침대 위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스포츠 도박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청소년들이 도박에 쉽게 빠지는 원인으로 꼽았다.
자신을 숨길 수 있는 '익명성'도 문제다. 어른들의 눈치를 보고 다른 사람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청소년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스템인 것이다.
더구나 사이트 가입 시 신분은커녕 성인 여부도 확인하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단 4가지. 아이디와 비밀번호, 휴대전화 번호 그리고 계좌번호뿐이다.
일산경찰서 사이버팀 김선겸 경감은 "무엇보다 청소년들 일상에 불법 사이트가 너무나도 많이 노출돼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를 소개하는 스팸 문자나 메일이 하루에도 수십 개씩 쏟아지고, 실시간 스포츠 중계 사이트에서도 불법 도박 사이트를 소개하는 브로커들이 무작위로 쪽지를 보내 아직 판단력과 절제력이 부족한 학생들을 유혹하기 때문이다.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 운영하는 사이트만 합법이고 나머지는 모두 불법이지만 사이트 이름만 가지고 불법인지 공인된 것인지 청소년들이 먼저 판단하고 도박을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이다.
단속과 규제 역시 힘들다. 인터넷 특성상 개인의 신분을 확인하는 데 한계가 있고, 해외에 서버를 두고 개설한 사이트 운영자들을 잡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재미삼아 돈 내기를 시작하는 초·중학생 때부터 도박의 특성, 위험성에 대한 예방교육이 이뤄지지 않고서는 청소년의 불법 도박을 막을 수는 없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