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10명 가운데 3명은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다. 청소년 대부분은 앞으로도 수십 년간 노동자로서 땀 흘려 일해야 한다. 그런데 왜 학교에서는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대학에 들어가면, 직장에 취업하면 알아서 배운다'고만 말할까? 우리는 지금껏 '노동 인권'이라는 말 한 번 들어보지 못한 채 사회에 나서왔다. CBS노컷뉴스는 노동 조기 교육이 없는 현 교육의 문제와 대안을 탐색해본다.[편집자 주]흔히 "사회생활 겪어보면 다 알게 된다"지만, 정확히 배우지 않으면 권리를 찾지 못하는 건 청소년 시절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 무심코 작성한 서류 한 장… 아무도 나에게 '노동'을 가르쳐주지 않았다사회초년생이었던 박모(24·여) 씨는 2012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ㅇ에스테틱 지점에 경락 마사지사로 취직했다.
업계 유명 가맹점에 취직한 기쁨도 잠시, 아침 10시에 일을 시작해 밤 11시에 퇴근하는 것도 모자라 매주 월요일이면 교육 명목으로 새벽 2~4시까지 야근이 이어졌다.
지친 박 씨가 한 달 만에 일을 그만두려 하자 점장은 '일을 시작한 지 45일 안에 그만두면 업소에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내용의 근로계약서를 내밀었다.
답답한 박 씨는 소송까지 제기했지만, 사본조차 챙기지 못한 채 까맣게 잊고 있던 근로계약서의 문구 한 줄 때문에 끝내 회사에 80만 원을 물어줘야 했다.
박 씨는 "첫날 가자마자 근로계약서에 서명하라고 했는데, 읽어봐도 어려워서 내용도 모르겠고 설명도 듣지 못했다"며 "궁금한 걸 물어봐도 빨리 서명하라고 다그쳐서 일단 서명했는데 일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고 하소연했다.
사회경험이 쌓여도 억울한 일을 당하기는 마찬가지다. 1979년부터 택시 운전대를 잡았던 베테랑 택시기사 김모(56) 씨는 병가를 내려다 사직서까지 쓰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겪었다.
질병 치료차 40일 병가를 내려던 김 씨는 '우리는 누구나 아예 퇴직해서 푹 쉬다 온다. 돌아오면 언제든 다시 채용하겠다'는 사측의 설득에 그 자리에서 덜컥 사직서를 제출했다.
며칠 뒤 노조위원장에게 "회사가 비용을 아끼려 꼼수를 부린 것"이라는 설명을 듣고 부랴부랴 회사로 찾아갔지만, 이미 퇴직 처리가 끝난 뒤였다.
6개월 이상 일해야 매달 9만원씩 받을 수 있는 부가요금도, 병가를 내기 전 일한 9개월 어치의 퇴직금도 모두 허공으로 사라졌다.
김 씨는 "다행히 회사에 복직했지만, 그때 일을 생각하면 너무 억울해서 견딜 수 없다"며 "내가 못 배웠으니까 모든 것을 손해 보는 것 같아 답답할 뿐"이라고 한숨만 내쉬었다.
중형 건설사에서 3년 동안 일했던 조모(33) 씨의 경우는 회사를 그만둔 2011년부터 1년 넘게 퇴직금을 받지 못한 '흔한' 사례다.
회사에 돈이 없으니 기다리라는 변명을 믿었지만, 막상 조 씨가 회사를 상대로 소송까지 불사하겠다고 전하자 곧장 퇴직금에 위로금까지 입금됐다.
조 씨는 "돈을 받아도 그동안 마이너스 통장에 기대 생활하느라 피해가 막심하다"며 "1년 동안 혼자 끙끙 앓았는데 노무사를 통해 회사 물품을 압류하겠다고 하니 회사 태도가 대번에 바뀌었다"고 황당해했다.
이들은 한결같이 "뭐가 중요한 서류인지, 누가 잘못인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며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억울해도 참는 게 사회생활이라며 말리기만 했다"고 입을 모았다.
◈ 노동법만큼 시급한 노동감수성 교육… 노사 모두 윈윈하는 지름길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청소년 시기부터 노동법은 물론, 노사관계에서 무엇이 잘못됐는지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노동 감수성'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전교조 실업교육위원회 하인호 부위원장은 "청소년 시기는 사회를 배우는 첫걸음을 떼는 시기"라며 "이 시기에 노동은 무엇이고, 권리를 지키는 건 어떤 일인지 올바른 첫인상을 가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초등학교부터 단계별로 노동자의 권리가 무엇인지, 이것을 침해받을 때 어떻게 해결하는지 등을 배워야 한다"며 "인터넷만 검색해도 알 수 있는 단순히 법적 지식만이 아니라 현장에서 즉각 반응할 수 있도록 '노동 감수성'을 익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 감수성' 교육이 비단 노동자만을 위한 '좌편향 교육'이라는 일부 비판에 대해 오히려 노사 화해를 위한 지름길이라는 지적도 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인 정의당 정진후 의원은 "모든 청소년이 임금노동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편의점이나 가게 주인 같은 자영업자가 되기도 할 것"이라며 "이들 역시 고용주 입장에서 노동권에 대한 배움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영업자의 비중이 높은 한국에서 대기업처럼 전문적인 노무 관리를 받지 못하는 자영업자들은 스스로 노동법에 대한 이해와 노동 감수성을 갖출 필요가 있다는 것.
정 의원은 "고용주의 불법적인 노동 지시를 예방할 뿐 아니라 노사 간의 불필요한 갈등을 막을 것"이라며 "노동법 교육이 갈등을 부르는 게 아니라 오히려 사회적 비용도 줄이는 상생의 길"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노동법 조기 교육은 청소년뿐만 아니라 모든 일 하는 사람들의 권리 보장을 위한 기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관된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