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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를 잡는 전국의 근해 트롤어선 59척이 4일째 출어를 못하고 발이 묶였다. 선장과 선원들이 고유가와 어획량 감소로 생계비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며 단체로 하선해 버렸기 때문이다.
채산성 악화에 시달리는 선주들도 뾰족한 해법이 내놓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선원직을 포기하고 육상으로 이탈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29일 부산 남항 방파제. 제주도·울릉도 어장을 누비고 있어야 할 근해트롤 어선들이 일제히 닻을 내리고 정박 중이었다. 선원들이 모두 철수한 탓에 낚시꾼을 빼고는 인적조차 드물었다. 국내 오징어 성수기는 10월~이듬해 1월. 황금어장을 버려두고 배가 서버린 것이다.
선장 A 씨는 "출어해도 생계비를 못 받는데 왜 나가느냐"면서 "지난 26일 모든 트롤어선들이 어장에서 철수했다"고 말했다. 벌써 4일째 조업을 중단한 것이다.
선장과 선주들이 낮은 보수 때문에 단체로 하선한 것은 근해어업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이례적이다. 트롤 선원의 임금체계는 기본급(96만 원)과 어획량에 따른 상여금을 받는 보합제 방식.
그런데 최근 어획량 감소·어가 하락·고유가라는 3중고가 지속되면서 상여금이 사라져 버렸다. 특히 고기를 많이 잡아도 어가가 하락한 탓에 선원들에게 돌아갈 몫도 그만큼 줄어들었다.
대형기선저인망수협에 따르면 올해 1~10월 오징어 생산량은 174만1416상자(1상자는 20㎏)로 지난해(259만2986상자)에 비해 67% 감소했다. 판매금액 역시 지난 해 585억 원에서 올해 341억 원으로 58% 하락했다.
포클랜드 원양 오징어의 대풍과 소비 둔화의 영향으로 생산량이 줄었는데도 가격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어업용 면세유 가격이 올해 1월보다 20~26% 정도 인상돼 채산성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어선의 총 경비에서 연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26~30%에 달하는 점을 감안하면 어업인들의 부담이 크게 증가한 것이다.
선원 B씨는 "10월 임금이 기본급과 성과금을 모두 합쳐 130만 원에 불과하다"면서 "최소 월 200 만원을 보장해 주지 않으면 육상직으로 전환하는 것이 낫다"고 푸념했다. 실제로 요즘 트롤어선은 정원(15명)보다 2~3명 적은 12~13명으로 운영되고 있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선주들이다. 본격적인 조업기를 놓쳐 버리면 파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선주와 노동조합 대표는 29일 선장들이 요구한 ''월 200만 원''을 놓고 협상을 벌였지만 합의를 도출하는데는 실패했다. 배가 다시 출어할 수 있을 지 현재로서는 기약하기 힘들다.
안응모 근해트롤협회장은 "기름값은 오르는데 어가는 떨어져 선원들에게 많은 상여금을 줄 형편이 안된다"면서 "선원들의 심정도 이해가 되지만 선주들도 골병이 들고 있다"고 하소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