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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일간의 민간인 대학살''…전주형무소 참극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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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 발발 직후 군·경 좌익사범 검거활동, 3차례에 걸쳐 민간인 수천 명 총살

 

한국전 당시 전주 형무소에서 발생한 민간인 학살의 진상이 밝혀질 것인가.

지난 2003년 4월 새전북신문은 1950년 7월과 9월 사이에 전주형무소(교도소)에서 약 5천 명의 민간인이 집단 학살됐다고 보도한 바 있다.

취재진은 유골이 묻혔다는 당시 형무소 교도관의 증언을 토대로 전주 효자동 황방산 현장을 발굴, 수많은 유골을 찾아냈다.

이를 계기로 국가진실화해위원회 등 각계 단체가 전주형무소 민간인 살해사건의 진상 규명을 촉구하고 나섰다.

가장 먼저 진상 규명을 촉구한 단체는 ''한국전쟁전후민간인학살진상규명범국민위원회''였다.

당시 전주시도 효자동 현장을 중심으로 진상 조사에 나섰으나 후속 조처에 대한 대책 미흡으로 국가에 그 책임을 미뤘다.

또 본사에 희생자 명단 소유 여부를 묻는 일부 희생자의 가족들의 문의가 이어졌었다.

그리고 4년여가 흘렀다.

국가진실위원회가 26일 한국 전쟁 당시 민간인 집단 희생지 유골 발굴 우선 대상자로 전주형무소 사건을 선정했다.

지난 57년 만에 소문으로만 돌던 전주형무소 학살사건의 진상 규명을 위한 국가의 공식 대응이 이뤄지게 된 것이다.

◇어떤 사건이었나

1950년 6월 25일 한국전 발발부터 인민군이 퇴각하기 시작한 9월 28일까지 전주에서 일어났던 93일간의 사건이었다.

정부는 전쟁 발생 직후 ''''예비검속령''''을 발효시킨다. 이에 따라 전주 지역을 중심으로 보도연맹원과 요시찰 요원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 활동이 이뤄진다. 이로 인해 당시 전주형무소에는 약 1,400명이 수감됐다. 이중에는 여순사건 관계자와 남한의 단독 정부 수립을 거부한 2·7구국투쟁에 관련된 이른바 좌익 사범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은 ''''A, B, C, D'''' 4등급으로 나눠 관리됐다. D급이 핵심 감시 요원이었다.

전쟁 발발 3일 만에 서울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 중이었던 사상범 700명이 전주형무소로 이감된다. 이들은 전주에 도착한 날 형무소 뒤 공동묘지에서 모두 국군에 의해 집단 처형됐다. 곧바로 D급과 C급 수감자의 처형이 이뤄졌다. 제1차 학살이다.

그리고 7월 4일부터 14일까지 10일간 B급과 A급 수감자도 처형됐다. 제2차 학살이고 이때 검경에 의해 처형된 수만 1,600명에 이른다는 증언과 기록이 있다. 이들은 전주 황방산 기슭과 전주농고 언덕, 형무소 뒤 공동묘지, 완주 소양 입구인 소리개재 등 4곳에 분산돼 매장됐다.

국군과 경찰은 이 같은 처형을 단행하고 퇴각했다. 이 과정에서 미군기의 익산역 폭파사건, 전주 한벽루 미군기 폭격 사건 등이 발생했다.

인민군이 전주에 입성한 것은 7월 20일. 전투 한번 없이 무혈입성했다. 국군은 전쟁보다는 내부 민간인만 죽이고 퇴각한 것이다.

전주를 점령한 인민군은 이번에 우익 인사 검거에 나섰다. 검거된 우익인사는 약 1,000명으로 전주형무소에 수감됐다.

인민군은 9월 27일 전주를 철수할 때 이중 우익인사 440명을 학살한다.

정부는 최근까지 전쟁이 끝난 후 인민군의 우익인사 건만 발표했었다. 국군에 의한 학살은 발표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자료에 의해 국군의 민간 학살 진상이 나오기 시작했고 당시 북한 기관지 였던 ''''민주조선''''이 이를 상세히 보도해 그 기록이 남아있다.

한국 전쟁으로 전북에서 희생된 민간인은 약 4,500명에 이른다. 대부분 국군에 의한 학살로 나타나고 있다. 미군기의 폭격도 이에 포함된다.

◇진상규명 어떻게

당시를 증언할 전주형무소 교도관은 현재 3명 정도 살아있다. 새전북신문이 지난 2003년 첫 보도 당시 전주에 살고 있는 이 모(86) 노인을 만나 그때 교도소에서 있었던 일을 직접 들었다.

그는 스스로 총을 쥐고 저항할 수 없는 민간인을 향해 발사해야 하는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국가진실위원회가 이들을 찾아 직접 진술을 들을 예정이다.

학살된 민간인이 매장된 현장 발굴도 매우 중요하다. 당시 진술에 의하면 4곳에 암매장 됐지만 개발로 인해 대부분 사라지고 전주 효자동 황방산 기슭만 흔적이 남아있다. 현재 기독교 계통의납골당이 들어선 곳이 직접 매장된 곳으로 지목되고 있다. 지난 2002년 모기독교 단체에서 이 곳에 납골당을 지을때 수많은 인골이 나왔으나 대충 처리했다는 당시 인부들의 증언도 나온 상태다. 기독교계가 사업을 하면서도 인골을 방치하거나 무시했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현재도 납골당 주변을 조금만 관찰하더라도 쉽게 인골을 발견할 수 있다. 국가 기관이 이 곳에서 본격적인 현장 검증에 들어가면 상상치 못한 인골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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