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정
의과대학 출신이지만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았습니다. 가족과 함께 하는 식사 시간이 행복해서, 남편과 아이들에게 맛 좋은 영양식을 만들어 주고 싶어서…부 엌에서 오랜 시간을 머무는, 솜씨 좋은 주부였습니다.
그녀의 손맛은 동네 아주머니들 사이에서 입 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마침내! 전문적으로 요리를 배워보기로 했죠.
마흔…! 적지 않은 나이에 도전하는 일…이왕이면 제대로 하고 싶어서, 미국, 이탈리아, 중국, 일본 등의 요리학원을 순회하며 각국 정통 요리법을 익혔습니다. 그뿐인가요? 국가중요무형문화재 황혜성 선생께 궁중요리를 사사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를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건, 요리에 대한 철학 때문입니다. 테크닉을 달달 외워 만드는 요리가 아니라, 마음을 배운 후 테크닉을 익혔다는 요리 연구가…….
그래서 ''''몇 큰 술 넣으라''''는 주문 대신, 자신의 입맛에 맞는 요리를 하라고 말하는 사람, 빅마마라는 별명만큼, 손도 크고 마음도 큰 이혜정 씨를 6월 22일 CBS 손 숙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표준FM 98.1Mhz 월~토 오후 4시 5분)에서 만나보았습니다.
◇ Best of Best, 빅마마 요리법▶ 이제 여름인데, 입맛 떨어질 때는 뭘 먹으면 좋을까요?
여름에 삼계탕을 먹는 이유가 있어요. 지방도 가장 작고 단백질이 가장 높기 때문에, 배용준씨가 닭 가슴살 먹고 욘사마를 만들었다고 하잖아요. 소화력도 도움이 돼요. 지금이야말로 닭을 이용한 음식을 많이 드시면 여름을 이기시는데 도움이 되고 또 닭을 고아서 드실 여력이 없으시면 계란을 먹기에도 좋은 시기에요. 대신 너무 익히지 말고 흰자만 익을 정도로 드시면 완전식품이고 보양식의 첫 번째가 되죠.
▶ 한때는 계란에 콜레스테롤이 많다고 꺼려했는데, 계란을 하루에 어느 정도 먹으면 돼요?
계란은 하루에 1개만 드세요. 2개도 너무 많고, 소화를 잘 못하시는 분들은 흰자만 익혀서 1개 정도, 그것도 아침 일찍 드시면 소화시간이 길어지잖아요. 그러면 필수아미노산을 다 드실 수 있는 최고의 식품이에요.우리가 습관처럼 소금을 뿌려서 드시면 소금에 있는 나트륨과 계란에 들어있는 인이라는 성분이 만나서 콜레스테롤을 빨리 만들거든요. 그러니까 소금보다는 간장에 식초를 조금 넣은 초간장을 찍어서 드시면 노른자에 있는 구리, 인마저도 몸에 안 쌓이니까 콜레스테롤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 세 끼를 꼬박꼬박 챙겨 드세요?
그 전에는 정말 그렇게 먹었는데 요즘은 들쑥날쑥해요. 단, 아침에는 절대로 거르지 않아요. 많은 분들이 저한테 충고하시기를 저녁을 덜 먹으면 날씬해질 수 있다고 하셔서 저녁은 가급적 덜 먹으려고 하는데 그래도 보면 챙겨먹고 있더라고요.(웃음)
▶ 이혜정씨 요리 프로그램이 다르다는 말을 듣잖아요. 이건 몇 티스푼하면서 티스푼으로 다 재서 하는데 ''''난 이거 좋으니까 많이 넣을래요.'''' 하는 것들이 옛날 우리 어머니들 요리법 같기도 해요. 초보자들은 요리책 보면서 그 부분에서 부딪히거든요.
다들 그렇게 말씀들 하세요. 제가 ''''적당히 넣으세요'''' ''''지금 내 혀의 상황하고, 내 혀가 뭘 하라고 하는지 의논하세요'''' 이렇게 하는데, 저는 음식이 정형화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지금 어떤 분하고 나눌 것인지, 어떤 마음으로 만드는 것인지 생각하셔서 많이 피곤할 때는 단 게 좋다고 몸이 느끼잖아요. 그럴 때는 그냥 달게 하셔도 돼요. 몸이 헛헛하다고 느낄 때는 버터나 기름이 있는 음식을 먹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그러면 한 번쯤 느글느글하게 먹는 거예요. 그런 다음에 내가 기름을 많이 먹었으니까 산이 많이 들어 있는 시큼한 차 한 잔 먹으면 지방은 몸 밖으로 쫓겨 가거든요. 그런 공부를 조금 하시면 굳이 그렇게 싱거워야 해? 달아야 해? 짜야 해? 하지 않아도 조금 싱거우면 어때요? 기분대로 편안하게 하시고 다음번에 그 음식을 할 때 조금 싱거웠던 기억이 있으면 소금 더 넣으면 돼지요.
◇ 내가 원하는 음식, 몸이 가장 잘 알아▶ 몸이 당기는 대로 하라는 말씀이신가요?
밥 맛 없을 때 장아찌를 밥에 물 말아서 먹잖아요. 그냥 생각하기에 ''''그게 무슨 영양이 있어? 탄수화물에, 짠 소금인데?'''' 라고 하는데, 몸은 탄수화물에 소금만 받아들이면 되는 거예요. 몸은 ''''지난번에 단백질이 부족했잖아'''' ''''비타민이 부족했잖아'''' 하고 반드시 알려줘요. 그러면 그때는 나물 무쳐서 밥에 고추장 비벼서 드시면 되고요. 요즘에는 너무 웰빙하면서 어떻게 하면 잘 사는 건지 생각하면 버터보기를 원수 보듯 하잖아요. 설탕을 아주 흉물스럽게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모든 영양소는 저한테 다 필요한 거예요. 저는 버터 많이 먹은 날은 줄넘기를 꼭 해요. 이 몸을 갖고도 열심히 뛰는데 그런 식으로 상쇄되는 것을 지혜롭게 가져가면 먹는 것 때문에 기름도 안 돼, 탄 것도 안 돼 할 필요가 없어요. 그 스트레스가 더 힘들게 하거든요.
▶ 예전에 인터뷰를 할 때 뭘 먹느냐는 질문에 아무 거나 먹는다고, 밤에도 일어나서 라면도 끓여먹는다고 했더니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대신 밤에 라면을 먹고 싶을 때는 라면 삶은 국수를 물에 한 번 헹궈내시고 우유를 조금 넣어서 드시면 좋아요. 라면에는 소금함량이 많잖아요. 우리 몸에 나트륨이라는 성분을 우유의 단백이 몰아내줘요. 그렇게 드시면 붓지도 않고 소화도 잘 되요.
▶ 요리연구가이시니까 저울이나 계량컵, 계랑 스푼 등 조리 기구를 쓰시지요?
쓰기는 써요. 그런데 워낙 주부로 살다 보니까 요 정도면 한 큰 술 되겠구나, 요 정도면 작은 술 되겠구나 감으로 알죠. 저는 티스푼을 든 것 자체가 속상해요.왜냐하면 딱 그렇게 정해진 양만 주면 가는 마음이 그냥 그저 그런 것 같아서요. 된장 풀 때도 한 숟가락 푹 푸잖아요. 그렇게 만든 음식이 제일 행복해요. 사람들이 저보고 세련되게 만들어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손으로 만든 것보다는 마음이 가 있는 음식이면 좋겠다 싶어서 무조건 넉넉히 많이 해서 나눠먹고 또 남으면 어때요?
▶ 우리 음식은 계량컵으로 덜어서 하는 음식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럼요, 예전부터 엄마가 된장 항아리에 가서 푹 퍼서 하셨잖아요. 고추장도 한 숟가락 떠서 오이는 물에 씻어서 그냥 먹었던 문화잖아요. 저는 그게 가장 나눌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가장 초보자에게 가르칠 때 ''''한 큰 술이 대강 이 정도니까 연습을 하세요.'''' 이런 건 그냥 일러드리는 거고 그 다음부터는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내가 가장 즐거울 수 있는 방법으로 하시라고 권해요.
▶ 서양음식, 중국음식, 일본음식도 해 보셨으니까 잘 아실 것 같은데, 그 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해요?
나라마다 문화에요. 프랑스 사람들은 정확하게 계량 기구를 쓰라고 가르치고 이태리 사람들은 네 기분이 어때? 네 감정이 너한테 뭘 하라고 그래? 이렇게 가르쳐요. 저도 그 사람들의 즐거움이 너무 좋아서 그렇게 해요. 내 마음이 뭘 원하지? 이렇게 생각을 하지요.중국 사람들은 책 자체에 계량이라는 게 없어요. 그저 센 불에 간장, 설탕, 청주 이렇게 하지 얼마에 얼마, 이런 게 없어요. 일본도 정확하게 계량이 있는데 일본 사람들은 너무 얌체 같아요. 자기들이 하라고 한 레시피 밑에다가 반드시 ''''네가 좋아하는 것에 따라서'''' 이렇게 얌체처럼 애매한 걸 써놔요. 그러니까 저는 아예 계량을 무시하고 좋아하는 것을 따라서 보고 재료도 넣고 싶은 것만 넣지요. 꼭 그렇게 해야만 스키야키(일본전골찌개)가 되고 샤브샤브가 되는 건 아니잖아요.
◇ 우리 음식에서 찾은 ''''禮''''와 ''''道''''▶ 음식은 자기 수양이라고 하셨는데 무슨 의미인가요?
제가 특히나 우리음식을 하면 이건 ''''도(道)''''다, 일본 사람들이 자기들 차를 예(禮)라고 해서 차도, 차례라고 이야기하잖아요. 저는 그것을 우리음식을 하면서 그 말의 뜻을 찾아와요. 정말 세계 어느 나라 음식을 해도, 특히 중국은 음식을 표현하기를 ''''쿠쿠쿠쿡'''' 하잖아요. 우리 음식은 전부 체를 쳐야 하고 전부 거즈에 걸러야 하고 뭐든지 약한 불에서 기름기 없이 가야하는데, 그런 걸 하면서 참 많은 생각과 반성도 하게 되요. 우리 음식은 들뜨면 안 되는 것 같아요.
▶ 우리나라처럼 체를 많이 치는 나라가 있나요?
세계 어디에도 없지요. 그래서 외국 요리사가 자기네는 급이 있어서 별이 다섯 개라고 하면 저는 무조건 그 앞에서 도마 놓고 칼로 ''''탁탁탁탁'''' 체를 쳐요. 그러면 다들 네가 제일이다, 기가 죽어서 ''''와~'''' 하고 온갖 찬사를 다 주거든요. 그걸 보면서 ''''이게 우리 음식이야'''' ''''이게 한국 음식이야'''' 이러면서 자랑을 하지요.
▶ 옛날 우리 어머니나 할머니들이 요리하시는 거 보면 정말 예술이잖아요. 체를 치시는 거 하며, 재는 것도 아닌데 어쩌면 그렇게 정확하신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물론 기술적인 면도 우리음식이 그렇기는 하지만 제가 살아오면서 남편과의 관계에서 이 음식으로 수양을 한다는 생각을 참 많이 해요. 남편하고 싸우고 남편이 출근할 때 뒤에다 대고 소리 빽 지를 때 있잖아요. 저는 분명히 이유가 있어요. 그런데 그걸 차근차근 이야기하지 못하고 소리를 빽 지르는 걸로 다 쏟아내 버리고 나서 남편이 들어올 때쯤 돼서 겁이 나고 두렵기도 하잖아요.미울 때나 그런 마음이 들 때면 그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을 하려고 애를 써요. 뭐를 좋아하는지 생각하면서 된장찌개라도 따끈하게 지져서 내가 미안했던 마음을 전해야지, 아니면 아침에 남편한테 당해서 오늘 들어오면 죽을 줄 알아, 이러면서 아주 맵고 짠 음식을 해 놓잖아요. 그런데 그걸 준비하면서도 결국 남편한테 ''''아, 이 사람은 두부를 잘게 썰어놓은 것을 좋아하지'''' ''''매운 풋고추가 들어가는 걸 좋아해'''' 이러면서 생각을 하게 되지요. 그래도 이렇게 고맙게 해 준 사람, 그래도 내게 없어서는 안 될 사람, 이러면서 저를 자꾸 다스리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요리하는 이런 마음이 없었으면 지금하고는 다른 사연이 있는 사람이 되어 있겠지 하는 생각을 해요.
▶ 부부가 남과 다른 게, 매일 밥상에 앉아서 같이 밥을 먹는다는 거잖아요. 화해의 방법으로 음식만큼 좋은 게 없을 거 같아요.
그러더라고요. 남편도 이제 들어오면서 눈치를 슬슬 보잖아요. 갈 때는 큰소리치고 갔지만 눈치 보면서 밥이라도 주려나? 이러고 앉아있는데 자기 마음을 헤아린 음식을 해 놓으면 그냥 별 얘기 없어도 그게 고마워서 엉뚱한 소리 하면서 화해를 하더라고요.그래서 저는 젊은 분들한테 싸울수록 밥 해주라고 해요. 그러면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아도 되고 고맙다는 말 안 해도 그저 묻어가니까 좋은 방법이라고요.
◇ 엄마 피해 달아난 굴의 호랑이 남편▶ 요리 시작하신 게 좀 늦으셨어요.
24살에 연애결혼을 했는데 제가 결혼할 때 남편과 약속을 했어요. 결혼할 때 남편과 아무런 조건도 없었고 첫 번째 요구가 우리 열심히 살자는 거였는데 큰 소리로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했어요. 두 번째는 좋은 엄마이기를 원했어요. 시어머니께서 산부인과 의사를 하셨는데 남편이 늘 엄마가 그리웠나 봐요. 한 건물에 살았지만 학교 갔다 오면 얼굴 보고 올라가고, 속상했던 건 김치 맛이 이상하다고 하면 아주머니가 바뀌셨대요. 그래서 가슴이 시리도록, 저리도록 엄마가...엄마가...이렇게 했다고 해요.
▶ 남편도 의사시죠?
예, 산부인과 의사입니다.
▶ 결혼할 때 학생이셨어요?
남편이 레지던트 2년차 때 결혼했는데 첫 번째 만난 날 저한테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자기는 누구와 결혼하든 어떤 조건도 없지만 좋은 엄마일 수 있느냐고요. 그래도 내가 눈에 설지 않았구나, 남편 인물이 저보다 낫거든요.(웃음) 한 50점은 맞았나 보다 얼른 생각하고 큰 소리로 ''''그럼요, 저는 엄마 할 거예요.'''' 그때는 사실 일을 좀 해야겠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남편이 너무 괜찮더라고요. 그렇게 할 거라고 해서 만남이 시작이 되었는지, 좋은 인연이 돼서 결혼했어요.
▶ 결혼할 당시 이혜정 선생님은 무슨 일을 했어요?
그때는 의과대학을 다니는 학생이었어요. 그런데 마무리를 다 못하고 시집을 갔지요. 가서 그냥 주저앉았죠.(웃음)
▶ 그렇게 좋으셨어요?(웃음)
그게 아니고 저는 친정어머니가 너무 호된 분이시라서 엄마를 벗어나고 싶었어요. 그런데 세상에, 여우를 피한다고 갔더니 범을 만난 거예요. 어쩌면 남편이 엄마와 그렇게 똑같은지요. 친정 엄마가 원칙론자세요. 어떻게 세상을 허투로 살아, 바르게 살아, 그리고 이건 돼, 안 돼가 너무나 분명하신 분이셨는데 제가 너무 숨이 턱턱 막혔어요. 그래서 빨리 시집가고 싶다고 24살 안에는 아파트 현관문을 나가도 꼭 나갈 거라고 했어요.(웃음)그러니 남편이 결혼하자고 했으니 얼마나 횡재한 거겠어요. 그래서 따라 갔어요.그런데 신혼여행 첫 날부터 저를 엄마의 훈련방식대로 잡기 시작하는데요, 정말 사느라고 죽을 뻔했어요.(웃음)
▶ 예를 들면 어떤 점이 그랬어요?
제가 시장에 가서 생선을 보잖아요. 그러면 정말 생선 눈이 팔딱팔딱 살아있어서 제가 이 생선이 너무 싱싱하다고, 살았다고 하면 옆에서 그래요. 죽은 지가 얼마 안 돼서 싱싱한 거지, 죽은 게 어떻게 살았느냐고. 그런 작은 말 한 마디가 세상으로 하여금 당신을 혼돈스럽게 한다고, 그렇게 말 하지 말라고 이렇게 이야기를 해요. 그러면 너무 속이 상하잖아요.그리고 제가 1시쯤 남편하고 어디를 간다고 하면 그 사람은 10분전에 가스 불 끄고 다 정리를 하죠. 그런데 여자들이 어디 그런가요? 2분만 되면 팔짱을 끼고 지금 그냥 2분이 가버렸다는 거예요. 숨이 너무 막혀서 이건 내 발등, 내가 찍었다에요. 그래도 지금 살고 있어요.(웃음)
▶ 어떻게 극복했어요?
못 견뎠어요. 그래서 제가 아이를 빨리 낳았어요. 처음에는 갈등도 했어요. 고씨네가 이렇게 대단하구나. 그런데 아버님을 보면 남편하고 너무 다르신 거예요. 저렇게 훌륭하신 분을 제가 가족으로 있다는 건 하늘로부터 받은 은혜라고 생각할 만큼 저한테 큰 사랑을 주셨는데 그때는 아버님이 계셨기 때문에 아버님한테 기대서 남편에 대한 어려움을 이겨나가더라고요. 지금도 제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은 우리 시아버님이세요. 지금은 돌아가셔서 너무 그립기도 하고 아버님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미여요. 남편이 미워도 그래도 그 사랑 안에서 태어난 사람이니까 언젠가 살다보면 아버님 같은 흉내라도 내겠지, 지금 이혼하면 그걸 못 보는 건 손해야, 아직까지도 믿어보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조금씩 아버님 닮은 짓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못됐던 기질은 없어지고 저보고도 밥 먹으라고도 하고, 더러는 애썼다고 하기도 해요.
▶ 그런 이야기를 전혀 안했어요?
그런 이야기가 어디 있어요. 똑같다는 거죠. 같이 노력하고 사는 세상이라는 거예요. 그걸 꼭 내가 못 느끼는 건 아니지만 그걸 그렇게 드러내서 당신 기분은 좋을지 모르지만 결과가 뭐가 다르냐는 사람이에요.어떨 때는 남편 자는 걸 보면 ''''진짜 나쁜 놈...''''이라고 생각할 때도 많아요.(웃음) ''''나중에 죽을 줄 알아'''' 이러기도 하고요.(웃음)한 번은 너무 화가 나서 제가 남편한데 ''''웃기고 앉았어'''' 이런 말을 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그 말이 뭐 그렇게 나쁜 말이겠어요. 그랬더니 버르장머리 없다고 막 야단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너무 화가 나서 옆에 있던 베개를 남편 얼굴에가 확 집어던졌는데 순간 큰일 났다 싶어서 옆방으로 막 도망을 갔어요. 한 30분쯤 가만히 들어앉았다가 이제는 설마 없겠지 하고 문을 사악 열고나오니까 그때까지 그 베개를 저한테 던지려고 문 앞에 서 있는 거예요.(웃음) 보는 순간 제가 너무 놀라서 주저앉으면서 얼굴이 하얘지더래요. 남편이 그때 느꼈다고 그래요. 자기를 정말 남편으로 편안한 게 아니었고 저렇게 얼굴이 하얘질 만큼 두려운 존재였구나 생각해서 그때 참 마음이 아팠다고, 그 이후로는 표독스러운 짓은 덜 해요.
◇ 철없는 엄마 덕에 배운 ''''요리 호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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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면 요리는 언제 배우신 거예요?
요리는 세상에 태어나서 제일 잘했던 일이었던 것 같아요. 고3 때 저희는 예비고사였거든요. 예비고사 전날에 엄마가 하필이면 누가 배추를 잔뜩 갖고 오셨다고 김장을 시작하신 거예요. 우리 엄마가 참 철도 없었죠. 엄마가 그때도 자기 할 일은 자기 몫이지, 각자 자기 일을 잘 하는 게 가장 옳은 일이라고 그러셨던 거예요. 그런데 보통 엄마들 같으면 기도하고 그랬을 텐데, 어쩌면 그러실 수가 있어요. 밑에 남동생 둘이 있는데 남동생 예비고사 때 눈 여겨 봤죠. 그때는 교회가시더라고요. 지금도 엄마한테 아들하고 딸이 달랐다고 하면, ''''그땐 나도 철이 없었지 뭐니.'''', 왜 마음이 안 불안했겠냐고 그러니까 그거라도 하신 거라고 변명을 하세요.그런데 제가 더 웃기는 건요, 내일이 시험인데 김장 체를 써는 엄마 옆에 붙어서 옛날에 보면 큰 대야가 있는데 거기에 김장 체를 다 썰어놓고 목욕하고 잤던 생각이 나는데 지금 생각해도 그 많은 체를 어떻게 다 손으로 썰었는지 모르겠어요. 정말 잘 했어요.체를 써는 건 아마 우리나라 요리사 선생님들 중에서 제가 제일이 아닐까 생각해요.
▶ 어릴 때부터 부엌에 들어가는 걸 좋아했어요?
그게 아니고 엄마가 저한테 동기부여를 하신 것 같아요. 그때는 아버지가 미국에 사시다가 한국에 들어오셔서 사업을 시작하실 때인데요, 외국손님도 많으시고 손님이 많으셨어요.그런데 엄마가 꼭 집으로 초대하셔서 진지를 대접하시는데 저를 그렇게 부려먹을 수가 없는 거예요.(웃음) 계모인가 할 정도로 손님만 오면 제가 다 거들어야 했어요. 그때 저한테 호기심에 대한 자극이 되었고요.
▶ 엄마가 요리를 잘 하셨어요?
잘 하셨어요. 그런데 너무 잘난 척 하시면서 잘 하셨고 서양음식을 너무 좋은 것이라고 믿고 있는, 저보다는 마음이 조금 녹록하지 않은 엄마였던 것 같아요. 서양요리도 굉장히 열심히 하셨어요. 단정한 미인이셨는데 너무 잘난 척을 하셨죠.제가 딸을 낳아보니까 딸이 저보다 예쁜데요, 다른 사람이 그렇게 말해주면 기분이 좋잖아요. 그런데 누가 딸이 엄마를 닮았다고 하면 보통 엄마 같으면 ''''딸이 더 예쁘죠, 젊은데'''' 이렇게 말이 나오는데 저희 엄마는 쓰윽 쳐다보고 아무 말도 안 하는 거예요.내가 저렇게 생겼단 말이야? 하는 원망을 저는 아버지한테 하는 거예요. 그래서 참 밉다, 그렇게 생각을 했어요.(웃음) 그런데 연세가 드시니까 제가 젊을 때보다 좀 더 엄마 쪽으로 얼굴이 가는 것 같아요. 엄마가 이제는 ''''닮긴 닮았지, 아무래도 자식인데...'''' 이렇게 말씀을 하세요.
◇ 미인 소박은 있어도 요리 잘 하는 부인 소박은 없어▶ 부모든 자식이든 서로 표현하고 사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아이들한테 표현을 많이 하시나요?
어릴 때는 ''''머리는 크지 않아도 돼, 가슴을 서로 맞대고 살자'''' 제 두 팔 안에는 두 녀석을 끌어안고 있었고 제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제일 잘한 일은 이 두 녀석을 낳은 거지, 이렇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보고 원숭이 엄마라고 했어요. 책을 읽어준 것도 아니고 노래를 해 준 것도 아니고 그냥 앉혀 놓고 이야기하고 정말 할머니처럼 밥도 제가 먹던 거 먹이고 해서 엄마한테 꾸중도 많이 들었어요.그렇게 자랐는데 결국 제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너무 제 품 안에만 자란 아이들이 세상 밖에 나가서 과연 어떻게 할까? 그 힘든 일들을 어떻게 감당할까? 조금 걱정이 됐어요.
제가 가슴이 아팠던 게 항상 남편한테는 분노인 거예요. 분노를 가지고 있는 사랑은 자식이지만 마음 가득히 주지를 못하는 것 같고 특히 딸아이가 남편과 너무 닮은 거예요. 똑같아서 딸에게는 유난히 제가 7살 때까지 오줌을 못 가려도, ''''괜찮아, 난 이게 좋아, 싸도 좋아'''' 이랬는데 4살 때인가? 남편이 막 저한테 퍼붓는 거예요.지금은 이렇게 말을 잘 하는데 그때는 왜 그렇게 당했는지 몰라요. 그렇게 막 퍼붓고 나갔는데 밖에서 딸이 나뭇가지를 하나 들고 ''''엄마~'''' 하면서 딸랑딸랑 들어오는데 정말 저도 모르게 나뭇가지를 확 뺏어서 아이를 한 대 때려줬어요. 그게 지금도 너무 마음이 아파서 지금도 사과를 하죠.
아이가 저한테 맞은 유일한 일이었기 때문에 지금도 기억하거든요. ''''엄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어? 나는 아빠 닮고 싶었던 거 아니잖아.'''' 그런데 남편은 두상이 참 예쁘고 저는 넓적한데 고맙게도 아이들은 남편의 미운 두상을 닮았어요.(웃음) 밖에서 사람들이 인물 좋다고 하면 딸이 그래요. ''''아빠 닮아서 엄마가 괜찮잖아~'''' 그 이야기를 하면 그래도 아빠의 사랑으로 컸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 남편이 요리 잘 하는 부인을 두신 건 복이 많으신 거예요. 살다 보면 미인 소박은 있어도 요리 잘하는 부인 소박은 없다고 하잖아요.
그것도 속상해요. 며칠 전에 TV토크 쇼에 나간 적이 있는데 어쩌면 거기서 자기 아내가 인물은 별로 없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요? 제가 너무 당황했어요. 자기는 인물 보고 결혼한 거 아니었다고, 그때도 썩 예쁘지 않았다고.(웃음)아, 그래도 자기 아내를 인물 없다고 말할 만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구나 하고 머리 좋게 얼른 돌려서 생각했어요. 그래도 끝날 때는 좋은 점도 많고 단점도 많지만 많은 시청자들께서 좋은 점을 봐 주면 따뜻한 사람이라고 그렇게 칭찬을 해 줘서, 28년 산 동안의 억울함을 그 한 마디에 풀었어요. 눈물이 나더라고요.
◇ 다이아 할래, 요리 할래? ''''나 요리 할래!''''▶ 뒤늦은 나이에 본격적으로 요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으세요?
요리를 늘 집에서 열심히 했어요. 사람들이 보기에는 노래도 잘 하고 술도 잘 먹을 거 같다고 억세게 보인다고 하시는데, 저는 집을 청소해 놓으면 그게 아까워서 밖에 못 나가요. 우리 집에 있는 아주머니에게 ''''제가 밖에 나가 있을 동안 우리 집 좀 잘 봐 주세요. 제가 깨끗하게 해 놓고 나가니까 아무도 못 오게 해 주세요.'''' 주문처럼 하고 나가는 게 버릇이 되어 있는데 얼른 들어와요. 깨끗이 청소해 놓은 게 아까워서.그러다보니까 있는 동안 늘 해먹이게 되고 그랬는데 요리를 하게 된 더 큰 일은 저희 식구가 저한테 다 상전인 거예요. 다녀오면 나가서 문도 열어줘야 하고 왔냐고 웃어줘야 하고 저만 그렇게 해 주죠. 저는 아침에 밤에 안 나가니까 제가 나갈 때는 아무도 저를 배웅도 안 해주고 맞이해 주지도 않더라고요.그래서 제가 열심히 청소했는데 아무도 청소 열심히 했다고 안 해 줘요. 커튼도 달아서 만들어 놓고 아이들 옷도 만들어봤는데 아무도 ''''엄마, 애썼네.'''' 안하더라고요.
그래서 요리를 했어요. 아이들이 돌아올 시간, 남편이 올 시간에 요리를 하니까 제가 문 안 열어줘도 저 있는 곳으로 다 와서 ''''엄마, 오늘 뭐 해?'''' ''''웬 맛있는 냄새야?'''' 냄새를 맡으면서 저한테 오는 거예요. 남편이 미울 때는 ''''여보~'''' 불러도 못들은 척하고 막 볶아요. 그러면 자기가 나한테 와서 툭 치면서 ''''나, 왔어'''' 인사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아, 내가 할 일은 이거다, 우리 식구가 제일 원하는 일이구나 싶어서 진짜 열심히 했죠. 그러다 보니까 다 맛있다고 칭찬하시더라고요.
▶ 요리책을 보고 시작하셨어요?
그건 아니고요, 제가 그때부터 참 엉뚱했나 봐요. 냉장고를 무조건 열어서 재료 갖다 놓고 이건 뭘 할까? 이렇게 생각을 해요. 그래서 찌개를 끓이든지 뭘 하든지 하면 그저 엄마한테 얻어먹어본 그 맛으로, 또 외할머니께서 요리를 잘 하셔서 그 맛으로 요리를 해요. 우리 시어머니는 정말 요리를 못 하셨거든요. 아버님이 제가 만든 음식을 드시면서 정말 이건 특별하다고 하신 것들을 생각하면서 정리하기 시작했죠.
▶ 음식을 만들어서 누군가가 맛있게 먹으면 행복하셨어요?
그럼요, 제 손에 다이아 반지하고 그거 하고 어떤 걸 할래? 하고 물으면 저는 그거 하지요.
▶ 가족들에게 맛있는 것을 먹이는 것과 본격적으로 요리 연구가가 되는 것하고는 다르잖아요?
가족들 덕에 요리연구가가 되어 있었던 거죠. 요리를 해서 내가 선생할 거야, 돈 벌 거야, 이런 게 아니고 어떤 걸 해야 우리 가족이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식탁에서 일어날 때 아주 행복하게 일어날 수 있을까가 제일 첫 번째였고요. 그리고 큰 녀석이 날 때부터 심장에 조그만 구멍이 있어서 어떻게 하면 아들의 건강을 끝까지 지켜주는, 건강할 수 있는 음식을 줄 수 있을까 생각하다 보니까 동의보감도 보게 되고 책에서 많은 학식을 가져오는 거죠.
그렇게 해서 가져온 지식으로 만든 음식들이 맛은 없었어도 아들의 몸에 들어가면 약이 될 거라고 생각하면 제 마음이 너무 따뜻해지잖아요.그런 마음을 느꼈던 음식들을 가지고 요렇게, 요렇게 조리를 만드세요, 이렇게 하니까 탔어요, 굳어졌어요, 정말 맛있게 만들어졌어요, 이거 한 번 해보실래요? 이러면서 나름대로 혼자 책을 쓰고 있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에세이를 써 놓은 것을 책으로 쓰게 됐어요.
▶ 의대 졸업을 못하셨어도 그것 역시 도움이 되셨겠어요.
뉴트리션이라고 하는 영양학적인 면을 생각하게 되는데 저는 의과대학 공부를 꼴등으로 근근이 남편이 구제를 해 준 거예요.
▶ 지금이 더 행복하시잖아요.
그럼요, 흰 가운 입고 주사기 들고 그랬으면 저의 나쁜 점이 다 나왔겠죠. 그런데 요리라는 게 저의 좋은 점만 드러낼 수 있고 누구든지 요리 앞에서, 밥상 앞에서 싸우는 사람 없잖아요. 늘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제가 하늘로부터 이런 특혜를 받을 수 있을까 너무 감사해요.
◇ 이웃과 나를 연결한 ''''맛있는 냄새''''▶ 아예 요리연구가로 나서겠다고 선언한 때는 언제에요?
40살쯤 되니까 그때 아이 나이가 16살, 고등학교 1학년 가을이었어요. 이제 곧 고3이 될 테고 작은 아이는 중학생이 될 테니까 이 아이들이 학교에 있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잖아요. 내가 이렇게 가다가 그렇게 푸근하지도 넉넉하지도 않은 남편한테 짐이 되면 저 사람이 나를 쓰레기처럼 갖다 버리면 어떻게 하나...이런 마음이 서글퍼지기 시작하는 게 우울증 같은 게 오더라고요.
그래서 어느 날 밤에 벌떡 깨서 종이에 죽 적어봤어요. 내가 과연 잘 할 수 있는 것들이 어떤 게 있을까, 가장 장점은 어떤 것이 있을까 적었는데 가장 첫 번째가 음식 만들기였어요. 요리가 아닌 음식 만들기요.그런데 제가 할 수 있는 장점도 너무 많은 거예요. 이렇게 장점도 많이 갖고 있는 내가 이렇게 시간을 힘들어하고 아까워하면 내가 너무 나를 학대하는 거지, 내가 너무 가엾어지는 거지, 그럼 뭘 할까? 나 요리 할 거야!
매번 옆 집 아줌마가 쿠키 어떻게 만들었냐고 하고 매일 그 집에서 맛있는 냄새난다고, 그때는 돈을 번다는 생각도 없었고 오라고 해서 장 봐서 가르쳐 줘야겠다, 그때까지는 제 식구가 너무 소중해서 바깥공기는 박테리아라고 생각해서 문을 꼭 닫고 우리끼리만 살았어요. 그런데 문을 열었더니 제가 우리 아버님 이후로는 평생 못 받아본 칭찬들을 우리 이웃 분들이 주시는 거예요. 그리고 저한테도 맛은 없지만...하면서 뭘 나눠주시고요. 꽃도 주시고.진짜 나 잘하나 봐, 그랬더니 재료비도 드는데 돈을 내면 마음이 편하겠다고 하세요. 그러면 돈 벌 수 있어? 그럼, 돈 주세요. 하고 시작한 게 35만원을 첫 달에 벌었어요.
저는 남편한테 생활비를 탔었는데 생활비를 얻으려면 매번 ''''고맙습니다''''를 해야 했는데 돈을 받고 보니까 가슴이 뛰는 거예요. 그래서 재료비 5만원을 떼고 30만원을 줄까 하다가 더 많이 번 척을 하려고 남편한테 다 줬어요. 그랬더니 너무 놀라워하는 거예요.그 전에 제가 보니까 17만원이 들어있어요. 30만원만 빌려주면 내가 요리선생해서 당신 돈 벌어줄게, 남편한테 그랬더니 그냥 돌아다니지 말고 집에 있어, 이러는 거예요.너무 화가 나잖아요. 17만원으로 장을 봤는데 그래도 1만 8천원이 남더라고요. 그래서 이 정도로 시작해도 되겠구나 싶어서 저희 먹는 식탁에서 저희 먹는 수저로 엄마들을 가르쳤는데 거짓말 안 하고 한 달에 8팀이 되는 거예요. 5명씩 8팀으로.한 사람 당 7만원씩 받았거든요. 그게 8팀이 되면 35만원 곱하기 8하면 계산이 금방 나오죠. 남편이 그때 150만원 월급을 줬는데요, 제 까짓 거 아무 것도 아니잖아요.(웃음)그래서 돈을 벌어서 줬죠. 그랬더니 남자들 참 치사한 게 보는 눈이 달라져요. 그 다음부터는 물줄까? 피곤했어? 이러더라고요. 이후부터 제 팔자가 달라졌지요.
▶ 집에서 하는 정도는 이해가 되는데 미국, 영국, 이태리도 가셨잖아요. 어떻게 해서 가게 된 거예요?
제가 대구에서 살았는데 대구 MBC에서 동네 솜씨 있는 아줌마들 한 번 나오라는 거예요. 그때는 방송국 가니까 조명이 위에서 막 비취는데 깜짝 놀라겠더라고요. 저 앞서서 그 프로그램을 오랫동안 하고 계신 대구에서 유명한 요리 선생님이 요리를 하시는데 PD가 저를 보고 저기 앉아서 보라고 해요. 그 분이 그때 뭘 하셨냐 하면 애탕국이라는 것을 끓이시는데, 이렇게 하면 구신 맛이 납니다. 이러시는 거예요.
그래도 방송을 하면 표준말을 써야 하는데 구신 맛이 뭐야? 아, 나도 저 정도면 할 수 있어!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그 분이 가시고, 한 번을 제가 하는 건데 어떤 카메라가 저를 보고 있는지 모르잖아요. 그때 생각에 기계가 아닌 우리 아이들이 여기에 있어, 우리 아이들하고 하는 거야, 하면서 캘리포니아 롤을 만드는데 정말 아이들하고 만들었을 때의 기분이 드는 거예요.그렇게 즐겁게 만드는데 사람의 운이라는 게, 길이 열려지는 때가 있나 봐요. 그야말로 대박이 난 거예요. 주조에 계시던 부장님이 막 뛰어 내려오셔서 그날로 그 프로그램을 하자고 하시는 거예요. 지금 생각하니까 그때 오래하셨던 선생님이 제가 얼마나 괘씸하셨겠어요.지금은 방송의 생리를 아니까 저도 짤려 봤지만(웃음) 그 선생님께는 송구스런 마음을 갖고 있는데 그렇게 해서 대구 MBC방송국에서 시작한 요리 선생님을 7년 동안 했어요.
그때는 저한테 다 오시는 거예요. 그래서 제 평생에 돈을 가장 많이 벌은 것 같아요. 그 다음은 제가 전공하지 않았다는 불안감, 정말 제 마음이고 제 사랑이기는 하지만 과연 이게 근거 있는 이야기일까 하는 불안감이 그만큼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남편한테 돈 달라고 안할 테니 기회만 달라고 하는 사이에 큰 아들이 대학에 들어갔어요.그러니까 남편이 공부를 하자 그러면서 너무 열심히 밀어주는 거예요. 새벽마다 시장도 꼭 같이 가주고 물심양면 도와주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도 미운 마음이야 이만큼 들다가도 그때의 고마움을 생각하면 미운 마음을 내려놓게 돼요. 그래서 이태리 유학을 가게 되었어요.
◇ ''''빅마마 오픈키친'''' 철학과 사람을 선보일 터 ▶ 그래서 빅마마 요리가 이혜정 선생님이 탄생하셨는데, 따님도 요리를 해요?
딸 준영이가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했어요. 남편은 딸아이가 성격도 차분하고 하니까 졸업하면 의사가 되었으면 바랐겠죠. 그런데 대학을 졸업하기 두 달 전에 엄마하고 이야기를 하자고 해요. 자기는 요리를 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그 전에 방학 때면 이 녀석을 케이크를 공부하러 일본의 선생님께 보내기도 했는데 굉장히 창조적이더라고요. 열정도 있고요. 그리고 이 녀석의 마음에는 엄마만 잘 해? 나도 잘 하지 그런 마음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요리를 하면 참 잘 하겠구나 했는데, 제 손 마디가 점점 굵어지는 걸 보면서 여자로서는 좀 억울하더라고요. 내 딸이 그러면 싫다 싶어서 마음으로만 그러고 있었죠.
그런데 본인이 결심을 하기에 이런 일들이 힘들 텐데 할 수 있겠니? 그랬더니 자신 있게 할 수 있다고, 자기가 2년 정도 생각한 일이라고 해서 그렇게 하자고, 또 남편도 아쉽지만 일단 해 보자고 해서 너무 재미있게 잘 하고 있고요. 그래서 어떤 학교를 갈까 생각했는데 제가 다니는 학교들이 기술적인 면에서는 아주 좋은 학교들인데, 요리를 하면서 가져야 할 철학이 뭔지, 내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는 가르쳐 주지 않더라고요. 그런 것을 줄 수 있는 학교를 찾아보니까 ''''존슨 앤 웰슨''''이라는 학교를 찾았어요. 잘 다니고 이번에 졸업했어요.
▶ 아드님은 기자가 되셨다고요?
저는 제가 그 녀석의 어미라는 게 정말 자랑스러운데요. 가슴이 아주 따뜻한 아이이고 다행히 아들딸 모두 남편과 저를 너무 사랑해 줘서 정말 감사하죠.
▶ 요리 스튜디오를 만들 계획을 갖고 계시다면서요?
지금 짓고 있어요. 친정 부모님이 사시던 집을 저에게 주셨어요. 열심히 사시던 집을 저에게 주셔서 밑에다가 좋은 스튜디오를 짓고 있어요. 이 방송국 스튜디오보다 더 좋을 것 같은데요.(웃음) 제가 가질 수 있는 전문 요리 스튜디오를 좀 넣고 위에는 저희가 같이 살 거예요. 9월이 되면 다 완공이 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