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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강효성 ''''죽어도 그곳에서 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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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숙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 뮤지컬 마리아 마리아의 배우, 강효성

강효성

 

힘차게 내지르는 노래, 역동적이고 매혹적인 춤사위, 심연을 울리는 연기. 뮤지컬 배우 강효성의 무대를 보고 있으면 온 몸에 소름이 돋는 듯하다.

관객의 시선을 꽁꽁 묶어두는 배우, 어떤 역이든 내면화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배우, 강효성…. 천생 배우일 수밖에 없는 그녀는 그러나 사실, 자신이 뮤지컬 배우가 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시작한 게 우연히도 뮤지컬이었을 뿐이라고요.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일이 천직이 되었으니, 이 우연은 운명이었으리라.

26년간 뮤지컬 외길을 걸어오면서 실력을 인정받은 배우,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면 돈 한 푼 받지 않아도 행복하다고 말하는 배우, 각기 다른 작품에서 마리아 역할만 세 번을 맡았고그 중 <마리아 마리아>를 통해 ''''한국뮤지컬대상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배우.

뮤지컬 배우는 천직이라고 말하는 강효성 씨를 6월 1일 CBS 손 숙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 (표준FM 98.1Mhz 월~토 오후 4시 5분)에서 만났다.

작품을 향한 열정, 돈 없어도 행복해

▶ 좋은 작품이라면 돈 한 푼 받지 않아도 행복하다고 했는데 정말 그래요?

진심이에요. 옛날부터 어렵게 살았지만 굶어죽지 않을 만큼 꾸준히 도와준다는 느낌을 받아서 돈에 대해서는 욕심이 하나도 없어요. 항상 작품을 할 때 먼저 생각하는 건 어떤 작품인가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그 다음으로 돈을 더 준다면 고맙고요.(웃음)다행히 많은 분들이 뮤지컬을 좋아하시고 대중적으로도 인정을 받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살고 있습니다.

▶ 요즘도 계속 공연 중인가요?

마리아 지방공연을 계속 하고 있고 얼마 전 의정부 공연도 성황리에 마쳤어요. 일상생활처럼 연습 아니면 공연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공연은 현재도 진행 중이에요.

▶ 공연 없는 날은 뭘 하세요?

일단 잤으면 좋겠고요.(웃음) 되도록 쉬려고 하고 있어요. 그리고 제가 출연하지는 않지만 남들이 공연하는 걸 보는 게 굉장히 행복해요. 보면서 배우는 것도 참 많고요. 또 10살짜리 딸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가장 힘든 노동인 것 같아요.(웃음) 물론 행복하기도 하죠. 그러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그 외에 개인적으로 계획이 있어요. 이제는 무대에 설 때마다 부족한 게 많이 보여요. 더 많이 알다 보니까 그런가 봐요. 그래서 빈 부분을 계속 배워나가고 있는데 창을 배우려고 해요. 뮤지컬에서 노래가 차지하는 비중이 많은데 노래의 장르가 굉장히 폭이 넓거든요.그런데 할 때마다 발성을 바꾸는 게 쉬웠으면 좋겠는데 매번 힘든 거예요. 이걸 위해서 노력하고 고민해야 하는데 해결책이 어떤 걸까 생각해 봤을 때 발성 면에서는 어릴 때부터 성가대는 했지만 기초를 다지면서 공부를 하지 못해서 상황마다 맞춰서 하니까 기본이 많이 흔들린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배의 힘과 발성이 멀리까지 힘 있게 갈 수 있는 창이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요.

▶ 따님은 엄마가 뮤지컬 배우라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요?

너무나 자랑스럽게 생각하는데 한편으로는 그 이면에 거만해질까봐 항상 조심시키고 있어요. 그래서 일부러 학교도 잘 안 찾아가요. 가끔 TV에 나가는데요, 얼굴을 알아보는 아이들이 사인을 해 달라고 오면 우쭐한 느낌을 받을까봐 그게 저는 싫더라고요. 딸아이도 자기도 커서 뮤지컬 배우가 되겠다고 해요. 그래서 가끔 자기한테 공연을 시켜달라고 조르기도 해요. 뮤지컬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마찬가지지만, 본인이 선택하고 공부해서 시험을 치르고 합격하면 그때 하라고 하죠. 다만 보는 것으로 공부를 가르쳐줄 수 있다면 엄마가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할 테니까 네가 보고 배우라고, 도전은 스스로 하라고 말합니다.

▶ 보시기에 소질이 있던가요?(웃음)

자세하게 보지는 못했는데 무엇보다도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굉장히 즐겁게 생각하더라고요. 일단 본인이 재미있어야 하니까 가능성은 있는 것 같아요. 다만 본인이 얼마나 노력하고 잘 견뎌줄지 그 부분은 의문이에요.

3色 마리아, 마리아 작품의 결정판 ''''마리아 마리아''''

▶ 언제 데뷔하셨죠?

1981년 4월 1일에 데뷔했어요. 햇수로 27년 정도 된 것 같아요.

▶ ''''뮤지컬 배우 강효성'''' 하면 마리아가 먼저 떠오르는데 마리아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셨어요?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에서 마리아 역할을 했었고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도 마리아 역할을 했었죠. 그리고 마리아라는 이름의 결정체인 ''''마리아 마리아''''가 있습니다. 마리아라는 이름으로 세 가지 작품을 했었어요.

▶ 어느 마리아가 제일 마음에 드세요?

처음에 했던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는 뭔지 잘 모르고 한 것 같아요. 그래서 가끔 옛날 공연을 들춰보면 창피해서 어디 숨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사운드 오브 뮤직''''은 마리아의 성격과 제 성격이 굉장히 잘 어울렸다고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가족뮤지컬이니까 아이들과의 생활이 즐거워서 엔도르핀이 솟았던 기억이 있어요.''''마리아 마리아''''는 여자로서 가장 살기 힘든 창녀라는 밑바닥 생활부터 가장 존경받는 성녀의 칭호를 받기까지의 일생이기 때문에 20~30대에 그 역할을 했으면 아마도 못했을 것 같아요. 인생의 깊은 맛을 잘 모르니까요. 그런데 40이 넘어서 그 역할을 하면서 무대에서 많이 울고 많이 배우고 그래서 인상에 많이 남아요.

▶ ''''마리아 마리아''''로 큰 상도 받으셨어요.

처음에 마리아를 작업할 때 여러 가지로 힘든 상황이었어요. 작품을 주관해서 하는 단체도 너무 힘들었거든요. 왜냐하면 프로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크리스천 뮤지컬 배우와 스텝들이 뜻을 모아서 좋은 작품으로 사람들에게 문화선교를 해보자는 취지로 모였는데 그러다 보니까 돈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 모인 거예요. 그래서 저한테도 돈이 없다고 하셨는데 작품을 읽어보니까 너무 좋아서 거의 노 개런티로 출연했죠. 공연하는 동안 정말 행복했어요.전혀 생각도 못했는데 시상식에 노미네이트가 되는데 2004년 한국뮤지컬 대상인 최우수작품상, 여우주연상, 음악상, 그리고 극본 상까지 골고루 큰 상을 저희가 받은 거예요. 노미네이트로 올라간 게 하나도 빠짐없이 다 받았어요. 이게 바로 돈보다도 더 귀한 예비된 축복이잖아요. 그리고 돈은 저절로 따라오니까요.(웃음)

▶ ''''돈이 너무 없어서 힘들었지만 하나님께 돈 대신 다른 것을 달라고 기도했다. 가난한 창작 뮤지컬을 많이 후원하게 해 달라고.'''' 수상소감을 이렇게 말했어요.

그때 상황이 정말 절실했어요. 제가 어려워서 한 기도라기보다 그 작품을 기획하고 만드는 대표나 모든 분들이 너무 어려운 거예요. 어려운 상황 가운데 좋은 뜻으로 뭉쳐서 시작을 했는데 처음에 열린 무대라고, 허름해서 공연을 잘 안올리는 극장을 인수해서 작품을 올렸어요.그때 작곡하셨던 차경찬 선생님이 반바지에 슬리퍼를 끌고 손에 망치를 들고 무대를 못질하고 계셨고 작가 유혜정 선생님은 고무장갑을 끼고 화장실 청소를 하셨어요. 저는 배우니까 무대에서 잘 하면 그만이잖아요. 본업이 아닌데도 마음을 다 하는 그분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면서 기도를 했어요. ''''어렵게 작품 하나를 붙들고 돈이라는 게 많이 벌리면 좋은 건데 가만히 보니 돈은 못 벌 것 같고 이분들을 위해서라도 돈 대신에 다른 걸 하나 주세요.'''' 꼭 상을 바란 것은 아니었는데 이 작품을 통해서 명예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결과물로 상을 주시더라고요.

▶ 공연 때문에 마이너스 통장에 손을 댔다고 하셨어요.(웃음)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웃음) 본인이 돈을 쓰고 싶을 때 통장에서 꺼내는 건데 이게 제 돈이 아니고 은행에서 무담보로 500만원을 대출해 주는 제도더라고요. 안 쓰면 그만이고 정말 급할 때 썼다가 나중에 채워 넣으면 되는 거예요. 저는 빚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라 빚은 절대로 지지 않고 제 힘으로 살려고 하는 타입인데 처음으로 마이너스 통장에서 200만원이라는 돈을 썼어요. 한 번에 쓴 게 아니고 조금씩 꺼내 쓰다보니까 200만원이 되어 버렸어요. 남의 돈 쓰는 성격도 아니고 그래서 나중에 메우긴 메웠어요.(웃음)지금도 제 통장에 얼마가 있는지 잘 몰라요. 숫자에 약해서 남편한테 제발 맡아달라고 해서 남편이 관리하고 있어요. 가끔 제가 남편한테 우리 재산이 얼마나 있는지 물어봐요.(웃음) 출연료를 받으면 무조건 통장으로 들어가고 쓸 만큼 여비로 비상금으로 갖고 있는 정도에요. 가끔 남편이 저 때문에 속상하다고 해요. 저는 지갑에 달랑 천원이 있어도 돈이 아직 남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정말 급한데 돈이 없어.'''' 그러면 ''''비상금으로 가지고 다닌다면서 왜 돈이 없냐?'''' 물어봐요. ''''비상금 천원이 남았었는데 이제는 없어.''''(웃음)남편이 항상 그렇게 바동바동 급하게 돈을 이야기한다고, 왜 그렇게 개념이 없냐고 할 정도로 돈에 대한 개념이 없어요.

▶ 살림은 잘 하세요?(웃음)

남편이 입이 까다로워서 제가 좋아하는 것은 남편은 다 싫어해요. 입이 상당히 까다로운데 제가 해주는 반찬은 맛있다고 그래요. 본인이 인정하는 거 보면 정말 잘하는 거라고 해요.그리고 엄마가 일을 하셨기 때문에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제가 살림을 했어요. 그래서 제가 봐도 반찬을 잘 해요.(웃음)

돈 벌려고 시작한 뮤지컬, 재주는 노래뿐

▶ 뮤지컬을 시작하게 된 동기가 뭔가요?

동기는 아주 단순해요. 학교를 졸업할 때니까 20살 때에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갔어야 하는데 그때 집이 아주 어려웠어요. 대학을 들어가서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나 자신감이 없었어요. 오빠는 군대에 가 있고 제가 돈을 벌어야 할 상황이었죠.그렇다면 내가 돈을 벌어서 대학을 가자고 생각했었어요. 그러던 중에 아는 분이 소개를 해 주셔서 시립가무단에 시험을 봤는데 처음에는 뮤지컬인 줄 몰랐어요.

▶ 고등학교 때부터 뮤지컬과 관련 있었나요?

학교 다닐 때 레슨은 못 받았지만 성악을 했었어요.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니면서 성가대도 했고요. 하지만 교회에서 배운 성가대 실력이라 사실 아무 것도 아니죠. 그러다가 노래로 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하다가 시립가무단이라는 곳에 시험을 봤어요. 그랬는데 덜커덕 붙은 거예요. 그때 첫 월급이 13만원 정도였어요.노래만 하는 줄 알았는데 연기도 시키고 무용도 시키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하게 되었어요. 뭔지도 잘 모르고 시작한 일이 너무 행복하더라고요. 아침에 일찍 나와서 불 키고 저 혼자 연습하고 또 다들 돌아가면 혼자 남아서 연습하는 그 시간이, 제가 무엇인가 땀을 흘리고 애정을 쏟는 느낌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어요.

▶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어서 시작한 게 아니고 돈 벌려고, 재주는 노래밖에 없어서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까 그것이 천직이라고 깨달은 거잖아요.

꼭 해야 되겠다기보다 그 안에서 배역을 정하는데 신단원은 1년 동안 무대에 안 세워줘요. 훈련만 시키고 선배님들 소품만 날라주거든요. 그런데 선배님들 옆에서 하는 걸 보면서 너무 좋은 거예요. 뒤에서 혼자 따라하면서 너무 행복했죠.

▶ 월급을 받으면 꼬박꼬박 어머니께 드렸어요?

꼬박꼬박 드렸는데 일을 하다보니까 화장을 하게 돼요. 처음에 갔을 때 선머슴처럼 머리는 숏 컷에 아무 멋도 안 부리니까 선배님들이 얼굴 좀 가꾸라고 하더라고요. 그러잖아도 무대에 서게 되니까 필요한 것들이 생기는 거예요. 어느 날 월급을 타서 몇 만 원정도 화장품을 샀어요. 그러고 나서 엄마한테 이야기도 안하고 엄마한테 봉투를 갖다 드렸는데 액수가 모자라잖아요. 엄마는 돈 어디다 썼냐고 저한테 화를 내시는데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거예요. 꼭 필요해서 화장품 장사가 와서 샀다고 했더니, 그 월급으로 한 달 치 생활비를 다 짰는데 그걸 쓰면 어떻게 하냐고 하셔서 울었던 적이 있어요.엄마 말씀을 들어보니까 제가 월급을 가져가면 쌀을 사고, 연탄을 사고, 김치를 사고, 가장 기본적인 것들에 충당되는 거였는데 그때는 몰랐던 거죠.

▶ 1년 뒤에 무대에 서신 건가요?

사실 발탁이 되서 무대에 서게 되었어요. 선배들이 앞에서 공연하는데 백 스테이지에서 신단원들이 그림자로 춤을 췄어요. 앞에서 진행이 되는데 백라이트 받고 여러 단원들과 뒷모습만 보이는 춤을 추는데 그 순간이 무대에서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더라고요. 무대에 선 자체가 너무 좋아서 굉장히 열심히 춤을 췄어요.지금은 키 큰 친구들이 많은데 당시에는 제가 꽤 큰 편이었어요. 그림자로 춤을 춘 게 멋있다고 느끼셨나 봐요. 그래서 그 다음에 같은 공연을 하는데 우연하게 펑크 난 자리를 들어갔어요. 역시 대사는 없었고 걸어 다니는 거였는데 그때 출발이 되서 작은 역할을 맡기 시작하고 처음으로 주인공을 맡은 게 성춘향의 춘향이였어요. 이때가 85년, 86년 정도였을 거예요.

그 전에도 비중 있는 역을 맡기는 했는데 메인을 맡기는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이번에도 주인공 역에 어울리는, 예쁘고 실력 있는 춘향이 역의 선배님이 갑자기 집에 일이 생겨서 못 오신 거예요. 리허설은 진행이 되어야 하니 누구든 와서 대타를 하라고 했는데 ''''야 너 그 대사 다 외우고 있잖아!'''' 하시는 거예요. 그럼 너 해봐!'''' 혼자 뒤에서 대사, 노래를 따라하던 결과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걸 다 외웠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했어요. 아마도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 그 역할을 한 후의 반응은 어땠어요?

그때를 생각하면 정말 소름끼치고 어디 쥐구멍에라도 숨어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너무 못했는데 그저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강효성

 

24시간의 사투...''''저, 공연하고 올게요.''''

▶ 수술시간을 잡아놓고 공연을 하셨다면서요?

생각해 보면 너무 행복했던 순간이라고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싶은데요. 마리아를 공연할 때인데 새벽 2시에 발병을 했어요. 갑자기 윗배가 아프기 시작하는데, 워낙 배우생활을 하면 무대에서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아서 예민해지는데 신경성 위장병이 있었어요. 그래서 이게 심해졌구나 하는 생각만 했어요. 그런데 밤새도록 앓으니까 안 되겠다,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나 싶어서 아침에 문 열자마자 병원에 갔는데 의사선생님이 여기저기 진찰을 하시는데 오른쪽 배를 눌렀는데 너무 아픈 거예요. ''''맹장인 것 같은데...'''' 맹장이 원래 위부터 아프기 시작한대요. 오늘 공연이 두 번이 있는데 수술해야 한다고 하세요. 그래서 제가 물어봤어요.''''선생님, 몇 시간 안에 수술해야 해요?'''' 그랬더니 24시간 안에는 해야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따져 보니까 공연 2회 마쳐도 24시간은 안될 것 같아서 ''''그럼, 저 공연하고 올게요.'''' 했더니 의사선생님이 정신이 있냐고 펄쩍 뛰시더라고요.''''이건 약속된 거라 당일에 펑크 낼 수는 없습니다. 저를 보고 표를 사신 분들이 계시는데 죽어도 그곳에서 죽겠습니다.'''' 그러고 갔어요.

마리아라는 인물 자체가 굉장히 정신적인 마음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여자를 표현한 거거든요. 그날 굉장한 통증을 이를 악물고 참으면서 공연을 하는데, ''''아, 이렇게 아팠겠구나. 내가 그동안 뭘 연기한 거지? 굉장히 아픈 척을 한 것 같은데, 실제 아픔 속에서 대사를 하다 보니까 표현이 이렇게 나오네?'''' 대사도, 노래도 너무 신기하게 다가오는 거예요.그래서 그날 공연이 개인적으로 너무 행복하고 좋았어요. 끝나고 나서 사인회가 있었는데 이왕 아픈 건데 사인회도 하고 싶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올라갔는데 기획팀에서 빨리 병원 가서 수술하라고 말리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뒷문으로 나가서 엠블런스 타고 밤에 병원으로 갔어요. 그때 관객들이 제가 엠블런스에 타는 걸 보고 문 옆에서 ''''너무 멋있고 감사해요. 영원한 펜이 될 거예요.'''' 이렇게 외치는데 이게 보람이구나 하는 것도 느꼈어요.그래서 그날 수술하고 일주일 후에 다시 무대에 섰어요. 의사 선생님이 한 달은 쉬어야 하는데 일주일 만에 무대에 서면 수술한 곳이 터지면 어떻게 하냐고 걱정하시더라고요. 요령껏 잘 했는데 움직인 덕분에 오히려 빨리 나은 것 같아요.

▶ 노래하고 춤추고, 뮤지컬이라는 게 굉장히 격렬한 연기잖아요. 다친 적은 없었어요?

몸에 드는 멍을 보면서 굉장히 친해졌어요. 지금도 보면 몸에 상처들이 칼자국처럼 죽죽 나있어요. 연습하다가 후배와 부딪히면 아까 세게 부딪혔는데 안 다쳤냐고 걱정해요. ''''부딪히면 멍들기밖에 더하겠어. 괜찮아, 아직 살아있으니까 걱정 마. 멍들지 않게 조심해.''''(웃음)일단은 서로 조심해야 할 문제이니까 이야기는 정확히 해주고 스스로는 제 몸의 아픔과 상처들이 굉장히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내가 어차피 무대에 설 건데 피부가 좀 다쳤다고 크게 드러나는 것도 아니고 약 바르면 되고 옷으로 가리면 된다고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예민해지지 않아요. 다치는 것에 대해서 무뎌진 거죠.

▶ 수많은 세월을 통해서 펜을 거느리고 있는데 ''''강사모'''' 펜클럽도 있어요.

강사모도 있고 강친위대도 있어요.(웃음) 강효성 친위대인데, 이분들은 공연을 보고 너무 좋다고 싸이월드 홈페이지에 클럽을 만드셨어요. 공연할 때 플랜카드도 들고 오시고 해서 가끔은 제가 연예인이 된 것 같아서 놀랬어요. 현재는 100명 정도인데 젊은 분들로 이루어져 있고 굉장히 열심히 와 주세요. 많이 힘이 돼요.마리아 할 때 그런 분들이 많았는데 영혼을 다루고 고통을 다루다 보니까 마음에 상처가 있는 분들이 많이 오세요. 그 중에서 공연을 보시고 이런 메시지를 주셨어요. 남자 분인데, ''''얼마 안 있으면 자살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마리아를 보면서 내가 다시 한 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거예요.

관객이 한 분이건, 두 분이건 제가 공연을 하는 중에 인생의 변화를 가져온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인지, 이 생각을 하니까 제 직업이 얼마나 아름답고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어요.

▶ 제가 어머니라는 연극작품을 공연할 당시의 일인데요,공연을 마치고 분장실에 와 있는데 스텝중의 한분이 어떤 두분의 아주머니께서 연극이 끝 난 뒤에도 객석에 앉아서 울고 계시다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나가봤지요! 왜 이렇게 슬 프게 울고 계십니까? 그랬더니 며칠 전에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는데.. 이 연극을 보니까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나서 눈물을 참을 수 없다는 얘기에요. 그래서 저도 그 두 아주 머니 부둥켜 안고 마구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강효성씨 어머님은 어떤 분이세요?

저는 엄마가 밝게 웃는 모습을 못 뵌 것 같아요. 항상 슬퍼하고 힘들어하셨던 모습만 기억나요. 그래서 엄마한테 가장 행복하고 환하게 웃었던 적이 언제였냐고 물어봤더니 잠시 생각을 하세요. 엄마는 행복한 순간을 생각을 하셔야 되는 거더라고요. 우리들을 낳았을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말씀은 하셨는데 저를 낳으시고 나서도 아빠와 행복하지 않으셨다고 해요.엄마는 아빠한테 늘 매를 맞고 사셨거든요. 생활비도 잘 받지 못하시고... 저희와 함께 같이 죽 같이 사셨는데.. 남동생 집에 개인적인 일이 있어서 그곳에 가셨어요.

요즘 가끔 엄마 방을 쳐다보면 엄마의 공간과 빈자리 때문에 괜히 눈물이 나요. 최근에 우연히 엄마 짐을 정리하다가 엄마의 일기장을 봤어요. 어렸을 때 엄마와 함께 했던, 저에게는 한순간의 기억에 지나지 않는데 그때가 어떤 상황이었는지 쓰여 있는 거예요. 그걸 보고 안에서 펑펑 울었어요. 엄마가 오빠와 저, 그리고 남동생 셋을 데리고 죽으려고 한강 다리 위에 섰던 거예요. 「그날따라 비가 와서 막내 동생은 입을 벌리고 비를 받아먹고 있고 저는 엄마랑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즐거워서 엄마 따라 나오고 오빠는 왠지 기분이 이상해서 손을 자꾸 빼려고 하고...」 그런 내용을 써 놓으셨어요.

한강 다리 위에서 혼자 뛰어내릴까, 아이들을 같이 끌어안고 뛰어내릴까 그렇게 생각하셨대요. 그 생각을 하고 있는데 머리 위에서 비가 멈추는 거예요. 머리 위를 들어보니 어느 노 신사분이 우산을 받쳐주고 계셨어요. ''''아주머니,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어린 것들을 생각해서 이러시면 안 되죠. 그리고 낳으실 때는 아주머니의 아이들이지만 태어난 이상 아주머니 것이 아닙니다. 거두어 가시는 것은 아주머니가 아닙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더래요. 이 분이 새벽기도를 마치고 나오는데 이상하게도 한강 다리를 건너가고 싶으셨는데 그때 걷다가 엄마를 만나신 거예요. 그래서 새벽에 다방 문을 두드려서 엄마한테 차를 대접하시고 아이들을 봐서라도 힘내서 사시라고 말씀하시고 가셨대요.

아버지 역시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으리라 생각은 하는데요, 가정에 충실하신 분은 아니었어요. 조금은 이기적이셨던 것 같아요. 하지만 여전히 당당한 스타일이세요.(웃음)아버지와 엄마가 70세가 넘으셔서 황혼이혼을 하셨는데 지금은 80세가 넘으셨어요. 아버지는 지금도 건강하셔서 오토바이도 타고 다니시고 등산과 수영을 다니시는 아주 활발하신 분이에요. 스스로 학원도 하실 정도로 정정하세요. 아버지가 경제적인 도움을 주지 않아서 엄마가 마음으로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 강효성씨는 결혼은 어떻게 하셨어요?

작품을 통해서 만난 친구와 했어요.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을 할 때 같은 뮤지컬 배우였어요. 결혼할 때 사람들이 왜 가난한 연극배우랑 결혼하느냐고(웃음) 많이 말리고 의아해하셨어요. 당시에 뮤지컬 배우로서 인정을 받고 자리를 잘 잡아가는 때라서 선을 봐도 어디 사장님의 아들, 잠수함을 가진 분의 자제였는데 마음이 동하지 않으니까 저는 이상하게 싫더라고요.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저는 계산에 굉장히 약해요. 어릴 때부터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었어요. 남편도 저와 결혼할 때 가난하고 가진 것 없었는데 그냥 제가 결혼하자고 했어요.

결혼당시 200만원 가지고 남편은 결혼했어요. 그런데 사람이 너무 명랑한 거예요.제가 너무 어렵고 힘들게 살다보니까 너무나 웃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이 사람과 결혼하면 돈이야 같이 벌어도 되고 내가 벌어도 되니까 다른 것은 몰라도 재미있겠다, 싶어서 결혼했어요. 그랬는데 살면서 힘든 때도 많았죠. 남편은 굉장히 솔직하고 진솔한 반면에 직선적이라서 그것 때문에 제가 상처도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사람이 살면서 양심을 갖고 양심적으로 산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어요. 남편으로서가 아니라 좋은 인간으로 인정하다 보니까 믿음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지금까지 살고 있어요.(웃음)

그리고 제가 무엇 때문에 믿음을 갖게 되었느냐 하면 신혼 초에 전세 집에 살면서 아무 것도 모를 때였어요. 나이 30이 넘었는데도 연극밖에 몰랐으니까요. 그런데 집을 잘못 계약한 거예요. 주인집이 은행에 뭔가가 저당 잡혀있었는지 전세비가 홀딱 없어졌어요. 그래서 일단 전세금의 반만 받고 집을 나왔어요. 저는 뮤지컬하고 남편은 연극을 하다가 연극만 해서는 생계가 안 되니까 새벽에 우유를 돌리더라고요. 새벽 3~4시쯤 일어나서 우유 돌린 돈을 모아서, 자기 때문에 날린 전세금을 채워 넣더라고요.

자존심도 상하고 하니까 그 돈을 채워 넣는 것을 보면서 그 정도면 됐다 싶어서 저도 함께 따라 나갔어요. 같이 따라 나가서 이틀 정도 우유를 돌렸는데 오히려 제가 있으니까 힘만 든다고, 차에서 자꾸 자니까 도움이 안 된다고 저보고 가래요.(웃음) 정말 이렇게 어려울 때에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어디에 내 놓아도 굶어죽지 않을 사람을 본 거예요. 인간을 본 거죠. 아무리 어려워도 굶어죽게 놔둘 사람은 아니라는 확신이 생긴 거예요. 그래서 그 믿음을 갖고 좋아하는 거 하면서 살자고. 누가 많이 벌든, 누가 벌든 그게 중요한 건 아니라고 그렇게 말했고 지금도 지키면서 살고 있어요.

80의 고별무대...인생의 정점을 나눠주고 싶어

▶ 학교에도 출강하시죠?

딸아이한테 당당하게 자신감을 가져라, 어떤 상황에서도 굴하지 말고 남한테 피해를 주지 않는 한에서 당당 하라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그런데 상대적으로 제가 못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아요.학교 강의도 전부터 조금씩 맡아달라고 부탁하시는 분들이 계셨는데 그때마다 못한다고 했어요. 왜냐하면 뭘 가르쳐야 할지 모르겠어요. 무대에 서면서 하는 것도 급급하고 고민하는 것도 많은데 내가 뭘 가르쳐야 하나? 그래서 정말 못한다고 했는데 재작년에 윤복희 선생님과 마리아 공연을 같이 하면서, 강의를 맡아달라고 하는데 정말 못하겠다고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너, 거만 떠는구나. 그건 거만이야!'''' 하시는 거예요. ''''26년 동안 무대에서 익히고 느꼈던 그 많은 것들이 뭐니? 그걸 나눠주는 거지, 학교 가서 그걸 가르쳐주는 거지. 네가 가서 숫자 계산을 할 거야? 뭘 할 거야?''''

그 말씀을 듣고 이것이 순서인가 보다 생각했어요. 사람이 살아가는 인생의 여정에서 어느 정도 무대에서 공연하고 배운 것을 나 혼자만 꽁꽁 묶고 가는 것이 아니라 풀어서 그 다음 세대에게 가르쳐주는 것이 아름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그래서 서울종합예술학교에서 뮤지컬 전공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저는 몰랐어요. 가르쳐 주는 것 외에 제가 배우게 되더라고요. 아이들이 하는 것을 보고 배우고 소리를 들을 때도 내가 하면 저런 소리가 들리겠지, 말을 하다 보니 책을 보게 되면서 몰랐던 것을 많이 배우게 된 거예요.

▶ 80세가 되면 은퇴한다고 하셨다면서요.

''''무대에서 가장 멋진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 봤는데 우리나라의 백성희 선생님을 보면서 배웠어요. 머리가 하얀 할머니가 노래를 하시는데 그게 너무 멋진 거예요. 연극배우들은 오래 가는데 뮤지컬 배우들은 생명이 그리 길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까 작품도 줄어들고 다른 직업으로 전환하는데 외국에서는 연세 많으신 분들이 머리 하얘가지고 작품 활동을 해요.우리가 젊어서 무대에서 즐겁게 뛰고 판타지를 보여주는 것이 미래지향적이고 좋지만, 80까지 오는 인생의 여정 속에서 그 길을 오지 않은 젊은 친구들한테 인생의 80에 서서 이렇게 보니까 인생이 이렇더라는 이야기를 해 주는 게 배우로서 가장 정점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80이 되면 하얀 머리로 무대에서 내 마지막 고별 무대를 하면 너무 멋있겠다고 상상만 했었는데 얼마 전 백성희 선생님이 공연하시는 것을 보면서 백성희 선생님이 연세가 많이 드셨는데도 무대에서 자태가 너무 고우신 거예요. 공연 끝나고 뵙는데 82세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꿈은 실현될 수 있다는 생각이 번적 스치는 거예요. 그래서 감히 그런 꿈을 가져보는 거죠.

▶ 그 꿈 꼭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좋은 작품으로 관객들과 계속 만나기를 바라구요. 오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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