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
지난 2004년 2월, 늦은 밤 부산 기장군을 지나던 통일호 열차가 갑자기 시야로 들어온 승용차와 부딪쳤다.
승용차는 100m나 밀려나갔고, 사고 현장에는 승용차를 몰던 권모(60)씨가 오른쪽 발목을 잘린 채 고통스러워했다.
권씨는 병원으로 옮겨져 접합수술을 받았지만 끝내 발목을 절단해야 했고, 이를 이유로 미리 가입한 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했다.
권씨가 요구한 보험금은 모두 3억 8천만여 원. 하지만 보험사는 3개월에 걸쳐 6개의 상해보험을 집중 가입했던 권씨의 주장을 선뜻 믿기 어려웠다. 또 조사 결과 권씨는 이미 다른 사고들로 10차례에 걸쳐 모두 1억 3천만원 남짓한 보험금을 타낸 터였다.
보험사는 이러한 사실과 사고 당시 정황을 들어 보험금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양측의 다툼은 법정으로 이어졌다. 권씨가 우연한 사고로 발을 다쳤는지, 아니면 일부러 발을 철로 위에 올려놓아 발을 잘리게 했는지 여부가 관건이었다.
권씨는 철로 건널목을 지나던 승용차 바퀴가 철로 사이 틈에 빠져 차가 움직이지 못하게 됐고, 달려오는 열차를 피해 차에서 내려 건널목을 건너는 도중 넘어졌다고 주장했다.
넘어진 상태에서 열차 바퀴가 자신의 발목을 절단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험사 측은 이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사고 당시 권씨는 열차가 진행하는 철로를 기준으로 10시 방향에 엎드려 누워 있었고, 오른쪽 발목 아래가 절단된 상황이었다. 이대로라면 엄지발가락 아래쪽부터 손상을 입어야 했지만 상처는 새끼발까락 아래쪽부터 손상이 나 있었다.
또한 발바닥 부위가 더 심하게 다쳐야 했지만 상처는 발등 부분이 더 심했고, 보험사는 이러한 이유를 들어 권씨의 주장이 거짓이라고 논박했다.
열띤 법정 다툼 끝에 법원도 권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0부는 권씨가 M보험사를 상대로 낸 보험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변론에 나타난 제반 사정을 종합하면 권씨는 철도 건널목에서 열차를 피하다가 넘어쳐 사고를 당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권씨는 오히려 보험금을 노려 사고를 낸 것으로 보인다"며 "이에 따라 이 사건은 보험약관상의 보험금 지급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결국 권씨는 거액의 보험금을 타내려다 자신의 발 한쪽만을 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