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시내 한산한 도로/ 사진=권민철기자
평양을 다녀온 남한 사람만 4만 여명에 이르고 있다. 이렇게 평양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CBS노컷뉴스는 5월 4일부터 7일까지 평양에서 열렸던 남북장관급 회담 취재차 3박 4일간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온 정치부 권민철기자의 눈에 비친 평양 풍경을 연재한다.평양은 버드나무의 도시다. 대로변의 가로수부터 대동강변에 이르기까지 버드나무가 도시 전체를 뒤덮고 있다. 그래서 평양을 버드나무 柳자, 유경이라고도 부른다.
평양은 강의 도시이기도 하다. 평양의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대동강과, 평양서쪽에서 대동강으로 합류하는 보통강이 평양 이 곳 저 곳을 소용돌이치며 흐르고 있다. 이들 강에서는 숭어, 잉어, 붕어, 뱀장어 낚시가 가능하다. 평양 방문 첫날 인민문화궁전에서 박봉주 내각총리가 베푼 환영만찬의 메인 메뉴로 바로 대동강에서 잡은 숭어회와 잉어회가 올라와 남측 대표단의 입맛을 달궜다.
 평양 시가지에 펼쳐진 버들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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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사람들은 보통강에 대해서도 유별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보통강은 서울로 치면 청계천을 많이 닮았다. 우선 지리적으로 청계천이 본류인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듯 보통강도 대동강과 맏닿아 서해로 뻗어 있다. 과거의 모습도 비슷하다. 청계천이 복개되기 전 큰 비가 오면 물난리가 나거나 각종 수질병이 넘쳐났던 것처럼 보통강도 수해와 수질병의 보고였다. 그러나 두 강의 지금의 모습은 판이하게 다르다. 서울이 청계천을 복개해 감췄다면 평양은 보통강 강변을 파 9km 의 운하를 건설해 오늘의 모습을 다시 탄생시켰다.
이 같은 사회주의의 힘은 평양 리모델링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3년간의 한국전쟁으로 평양은 42만개의 포탄세례를 받아 초토화가 됐다고 한다. 당시 평양 인구가 40만이었으니 그야말로 융단폭격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조선화보사가 펴낸 <공원속의 도시 평양>이라는 책자에 따르면 "김일성은 전쟁이 한창이던 51년 평양시복구건설 총계획도를 작성하도록 하고, 전후에는 직접 평양시복구위원회 위원장으로 평양 재건에 선두에 섰다"고 한다. 다시 말해 "김일성의 각별한 평양 재건 노력으로 이 죽음의 도시는 산, 강, 언덕 등 자연 지리적 조건에 잘 어울리게 현대적인 신흥도시로 다시 일어서게 됐다"는 것이다.
70년대 이후 초고층빌딩이 평양 시내를 메우기 시작해 지금 평양의 스카이라인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훌륭하다. 고층 빌딩이 워낙 많고 계획도시답게 울창한 숲을 이루는 곳도 풍부하기 때문이다. 또 초고층 빌딩사이로 간간이 보이는 전통 기와지붕을 한 웅장한 건물들도 평양의 스카이라인에 액센트를 불어넣고 있다.
특히 평양의 스카이라인에서 눈길을 끄는 것이 아파트다. 대부분 초고층인 아파트에는 한결같이 베란다에 화초가 내놓여있다는 점이다. 한 평양 시민은 이에 대해 평양 시민들이 기질적으로 식물을 좋아해서라고 설명했다. 대부분의 아파트 베란다에 놓여진 천연색의 화초는 분명 세련된 모습이었다. 그러나 아파트 외벽은 어느 것 하나 페인트가 칠해진 것이 없었다. 아파트 뿐 아니라 대부분의 고층 건물들이 시멘트색 파스텔풍이다.
그래서인지 평양의 스카이라인은 분명 현대적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딘지 모르게 후진적인 모습이다. 이를 두고 남측 대표단 관계자는 평양을 ''곱게 늙은 중년 여성''으로 표현했다. 곱고 화려했던 처녀시절의 모습은 오간데없이 지금은 젊음도 생기도 몽땅 잃어버린 중년 여성의 모습. 그러고 보니 평양은 영락없이 ''유경''이었다. 너무나 지쳐 늘어진 버드나무 같은 도시였다.
CBS정치부 권민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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